“오늘 밤 한 문명 전체가 사라져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2026년 4월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이렇게 올렸다. 꽁꽁 언 땅이 녹기도 전에, 미국은 핵무기 개발 저지를 명분으로 선전포고도 없이 이란을 공격했다. 그렇게 봄과 여름이 지나고 이제 가을이 다가온다.
미국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개봉 삼 주 만에 팔백만 관객을 돌파했다. 고대 그리스의 대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감독만의 철학으로 풀었고, 그것은 관객들의 심장을 관통했다. 특히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되어서 아이맥스 상영관은 연일 매진에 가깝다. 개봉하자마자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오디세이』를 보았다. 나름 스스로 호메로스에 정통하다는 생각에 기대가 컸다. 너무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바랬는지, 원작과 비교하느라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전체적인 흐름은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호메로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들은 영화에서 모두 빠졌다. 나중에야 놀란의 의도를 생각했고, 다시 보았다. 영화를 두 번 보고 얻은 결론은 호메로스 시대에는 호메로스가 옳았고, 지금의 시대에는 놀란이 옳다는 것이다.
호메로스가 살았던 시대는 그리스의 암흑기이다. 찬란한 그리스 신화를 꽃피우던 그리스에 이민족이 침입하면서 문자도 사라지고 청동기 문명도 파괴되었다. 호메로스는 지나간 영웅들을 찬양하는 서사시를 노래했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서 강조한 미덕은 ‘용기’와 ‘지혜(계략)’였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귀족들의 환영을 받았고, 궁중에서 많이 불리어졌다. 사 백여 년 만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고, 도시국가들이 형성되었다. 특히 아테나이의 참주였던 페이시스트라토스는 「판(Pan 모든) 아테나이 축제」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낭송하게 했다. 그 덕분에 우리에게 온전한 서사시가 전해졌다.
그로부터 이천 팔백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전쟁의 공포에 휩싸였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국 ‧ 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세계의 물가는 휘청거린다. 더 이상 전쟁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 지도자들의 광기 어린 탐욕에서 벌어진 전쟁들은 무고한 사람들만 죽이고 있다. 놀란의 『오디세이』에서는 ‘바다에서 온 사람들’이 문명을 파괴할 것이라는 소문에 두려워한다. 그래서 강력한 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쟁을 통해 권력을 잡으려 하거나 유지하는 논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공포를 내세워 도시를 부수고 사람을 죽이는 영웅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놀란의 생각이다. 그래서 놀란의 『오디세이』는 철저히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의 영웅성을 지웠다. 그는 한 도시를, 한 문명을 파괴한 계략을 세운 자신을 바카라망하였다. 트로이아 성은 약탈되고 불타고 무너지고 사람들은 죽었다. 아테네 여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던 목마는 불타고, 여신상의 목이 떨어졌다. 한 문명의 완전한 파괴였다. 사실 영화의 중심 이야기인 트로이아의 멸망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 나오지 않는다. 트로이아인에게 목마를 소개하는 시논과 불타는 트로이아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트로이아의 유민인 아이네아스(아이네이아스)의 설명으로 등장한다.
트로이아를 출발하면서 당당하게 약탈을 일삼는 오뒷세우스와 부하들은 점점 그들보다 강력한 적들을 상대하면서 위축되었고, 끝내는 오뒷세우스만 남고는 모두 죽었다. 어쩌면 세이렌의 노래에 오뒷세우스가 울부짖고 괴로워하는 장면을 그의 죄를 상기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바다에서 폭풍우로 칼립소의 섬에 떠밀려 내려왔을 때 그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스스로 기억을 지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서사시 『오뒷세이아』에서는 목마를 고안한 오뒷세우스를 끊임없이 찬양하고 영화에는 생략된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에서 엄청난 선물을 받아 금의환향한다. 하지만 영화 『오디세이』에서는 걸인과 같은 처지가 되어 넝마를 입고 집으로 돌아온다. 서사시에서 그의 뒤를 돌봐주던 아테네 여신은 영화에서는 그의 죄바카라감을 상기시키는 역할이다. 오뒷세우스가 페넬로페에게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나서야 아테네 여신은 그의 곁을 떠난다. 시종일관 어둡고 우울하던 오뒷세우스는 죄를 고백하고 스스로 정화한 후에 밝아진다. 텔레마코스에게 이타케의 왕위를 물려주고, 페넬로페와 함께 죽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해가 지는 서쪽으로 향한다. 석양은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이십 년 만에 해후한 부부는 활짝 웃으며 함께 나아간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작은 『오펜하이머』이다. 원자폭탄을 만든 과학자 오펜하이머의 이야기이다. 놀란은 세계가 전쟁으로 반목한다면 언젠가 다시 원자폭탄이 터지는 날이 올 것이고, 트로이아 문명이 멸망했던 것처럼 우리의 문명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생각을 증명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문명파괴를 예고했다. 심지어는 우방인 캐나다와의 접경지대인 온타리오(‘빛나는 물의 호수’라는 인디언 말) 호수의 이름도 ‘아메리카 호수’라고 바꾸었다.
그리스 연합군은 아르고스의 헬레네를 명분 삼아 트로이아를 약탈하고 역사에서 지웠다. 그들이 승리의 축제를 채 마치기 전에 북쪽에서 도리아족이 밀고 내려와 미케네와 스파르테의 청동기 문명을 철저히 파괴하였다. 아가멤논의 미케네와 메넬라오스의 스파르테를 말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래서 그리스 신들은 ‘필멸의 인간’이라며 인간들을 불쌍하게 여긴다. 놀란의 『오디세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의 이야기이다. 우리의 문명이 노래로만 남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라도 계략이 아닌 신의를 통해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