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간지 <여기> 가을호
어린 시절에 소나기를 맞고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가던 기억이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줄줄 흐르던 빗물은 마음 스펀지가 흠뻑 빨아들였다. 점점 더 스펀지는 눅눅해졌고, 비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축축한 스펀지는 오아시스가 되었다. 비에 얽힌 소소한 추억들은 물을 가득 머금은 오아시스에 꽂혀 꽃을 가득 피웠다. 소나기가 내리면 아이들을 데리러 우산을 가지고 학교에 갔고, 아이들을 기다리던 설레는 마음은 차갑던 비를 점차 따뜻하게 바꿔갔다. 최근에 포근한 우산의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활기차게 자라는 오월에, 연세대학교로 문학기행을 떠났다. 가장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연희전문학교와 『윤동주 기념관』으로 바뀐 기숙사를 방문하는 일정이다. 학교를 나오려는 참에, 맑았던 하늘은 갑자기 비를 쏟아낼 것 같은 잿빛이 되더니 일기예보보다 이르게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정문으로 향했다. 젊은 대학생들이 주로 있는 교정에 사십여 명의 아줌마, 할머니들의 늘어진 행렬은 눈에 띄었을 것이다. 다른 일행들은 미리 챙긴 우산을 쓰거나, 모자를 써서 어떻게든 비를 피했는데, 나만 맨머리에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걸었다. 이제는 소나기가 꼭 피해야 하는 나쁜 기억 속 축축한 것이 아니고 보슬보슬 내리는 오월의 비는 포근했다. 최근에 몸이 아파 치료를 받는 분에게 좋은 경과를 들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한 남학생이 우산을 내밀며 “저는 하나 더 있으니 이것 쓰고 가세요.”라고 한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바로 앞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학생은 기어이 우산을 내 손에 쥐어 주고 갔다. 얼결에 우산을 받아 고맙다고 큰소리로 인사하니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펴고 학교를 향해 묵묵히 걸어갔다.
별처럼 맑은 영혼으로 진솔한 시를 쓰던 윤동주가 거닐던 교정에서 윤동주의 후배를 만나 세심한 배려를 받으니 라디오 사연에나 나올법한 아름다운 하루가 되었다. 목소리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상황은 단편영화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마 촉촉한 봄비가 내리던 연세대학교의 교정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로 남을 것이다. 밤하늘처럼 까만 우산은 비 오는 날에 비를 피하는 도구를 넘어, 따뜻함의 상징이 되었다. 아마 윤동주를 한 폭의 풍경으로 그린다면, 가랑비 내리는 어스름한 저녁 길에 우산을 들고 수줍게 웃으며 걸어가는 청년일 것 같다.
윤동주의 시는 얼핏 보면 깨끗하고 고요한 서정시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식민지 젊은이의 고뇌가 치열하게 담겨 있다. 그가 자주 쓰던 시어는 밤, 하늘, 별, 바람, 우물, 가을, 길… 이다. 「자화상」에서 우물에 비친 자신을 미워하고, 「투르게네프의 언덕」에서 두툼한 지갑과 시계와 손수건을 가진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일제의 탄압과 만행이 가장 심했던 시기에 그는 시를 쓰지 못했고, 일 년 만에 겨우 쓴 시는 「병원」과 「위로」였다. 스스로 돌아보고 참회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쓴 시인의 시들은 시대를 넘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의 후배가 건네준 우산처럼 시인도 우리에게‘우산’을 씌워준다. 우산은 위로이고 동감이면서 한편으로는, 비를 이기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라는 용기이고 의지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소리 없이 봄비가 계속 내렸다. 까만 우산을 받쳐 들고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에 도착했다.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윤동주는 후배 정병욱과 하숙 생활했고, 「십자가」, 「자화상」 등을 썼다. 『윤동주 문학관』은 오래전에 쓰임이 다한 물 저장소를 재생시켜 윤동주의 장소로 재탄생한 곳이다. 그에 걸맞게 윤동주의 고향인 간도 명동촌에서 우물 목판을 가져와 전시하였다. 기실 윤동주와 상관없던 이 건물은 생명이 불어넣어지면서 윤동주와 닮아갔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도 물 저장소이다. 두 개 중 첫 번째 물 저장소는 천장을 뜯어 열린 우물이 되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의 시구를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네모난 우물 천장 너머로 파아란 바람이 부는 하늘이 보인다. 청운동(靑雲洞)의 의미와도 잘 어울린다. 두 번째 물 저장소는 닫힌 우물이 되어 윤동주가 최후를 맞이한 후쿠오카 형무소 독방의 모습으로, 그의 짧은 생애를 돌아보게 하였다. 영상에 흐르는 한 구절…“우리말로 시를 썼다.” 일본 교토 도시샤 대학에 다니면서 묵묵히 우리말로 시를 쓰던 조선 청년은 ‘조선어로 시를 쓰며 불온한 사상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일 년 반 만에 세상을 떠났다. 외래어와 신조어와 줄임말이 난립하는 요즘이기에 순수한 우리말로 쓴 윤동주의 시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나는, 본시 별보다 달을 더 좋아한다. 깜깜한 밤에 세상을 밝혀주는 빛은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이었다. 둘째를 보름달 언저리에 낳았고, 달항아리같이 둥그런 아이의 머리통을 볼 때마다 달은 더 친숙하다. 달이 점점 이지러지는 때이다. 달빛이 옅어질수록 짙어지는 것은 별빛이다. 쪽빛 하늘에 머문 별 하나, 누군가의 그리움이 전해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