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돌아보며

by방수미

뜨거운 여름이다. 매미는 맴맴 울고, 태양은 이글이글 불타고, 가만히 있어도 주룩주룩 땀이 흐른다. 개도 더워 엎드리는 이 여름에, 날씨만큼 뜨거운 관심거리가 있고 뜨거운 관심만큼 뜨거운 논란이 있다.

제작 발표부터 몇 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미국 영화 『오디세이』 개봉이 팔월로 확정되었다. 놀란 감독의 영화는 『인터스텔라』 밖에 보지 않았고, 흥행몰이를 하던 그 영화도 과학 문외한인 나에게는 긴 상영 시간만큼 길고 지루했다. 그럼에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인셉션』, 『오펜하이머』 등 대작을 만들어 명성이 자자한 감독이 제작한다니 날씨만큼 뜨거운 관심이 쏟아진다.

최근 영화계에 논란거리가 있다. PC(Political Correctness)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 해석하면 ‘정치적 올바름’이다. PC는 피부색, 성별, 성적 지향, 장애, 종교 등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비하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이를 적용하는 범위가 너무 넓고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특히 월트 디즈니사가 실사판 공주 시리즈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공주를 내세워 논란이 증폭되었다. 『인어 공주』의 에리얼 공주를 흑인인 할리 베일리에게 맡기고, 『백설 공주』는 라틴계열인 레이첼 지글러가 연기했다. 유색인에 대한 차별을 줄이려는 노력은 인권 운동가들의 호평은 받았지만, 관객들은 외면했고, 흥행에도 참패했다. 어쩌면 어린 시절에 보았던 디즈니 만화영화의 공주들 피부색이 머리에 남아있어서 그런 거 같다.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나도 배우들의 피부색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되었고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오디세이』 개봉을 앞두고 놀란 감독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놀란 감독은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딸이며 최고 미인으로 태어났고, 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인하여 십 년간 트로이아 전쟁이 벌어진 헬레네에 흑인 루피다 뇽오를 내세웠다. 원작을 모르고 본다면 모를까마는, 그리스 신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왜 굳이 헬레네에 흑인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는 유럽 화가들의 단골 소재였고, 헬레네가 우윳빛 뽀얀 피부로 그려진 명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이십여 년 전에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우스로 나온 영화 『트로이』에서 헬레네를 연기한 다이앤 크루거를 기억하는 이들까지 모두 흰 피부색의 최고 미녀 배우를 기대했을 것이다. PC 논란과 몇 가지 허술한 고증 등을 이유로 인터넷 동아리에서도 보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도 친구들과 같이 보기로 했는데, 벌써 한 친구가 안 보겠다고 한다.

러그르네

오늘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는 아들이 『오디세이』를 언제 보러 갈 거냐고 묻는다. 팔월에 개봉하는데 헬레네와 고증 등 여러 이유로 논란이 많아서 보고 싶은 마음이 꺾였다고 했다. 듣고 있던 남편이 말한다. 『오디세이』에서 헬레네가 그리 비중이 높은 역할도 아니니까 그냥 보면 되지 않냐고. 그래서 보기로 했다. 이왕 볼 거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되어 영상 미학의 정점을 볼 수 있다니, 아이맥스 카메라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재미있게 보자고 마무리되었다.


『오디세이』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갑자기 떠오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퀴어(Queer)이다. 지난 불법 비상계엄 때 탄핵 촉구 집회에서 무지개 깃발을 힘차게 흔들었던 사람이다. 원래는 성 소수자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연히 깃대를 잡아주면서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그는 남자였을까 여자였을까. 긴 속눈썹과 짙은 눈매가 아름다웠다. 성 소수자가 신문에 거론될 때마다 겉으로는 성적 취향을 존중한다면서도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순간 스친 그 사람의 손에서 온기가 전해지자, 신기하게 퀴어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偏見 하나가 깨졌다.

그리스 신화의 최고 미인이라고 무조건 백인이 맡아야 했을까. 『모비딕』에서 허먼 멜빌은 “흰색이 지닌 우월함은 인류 자체에도 적용되어 백인이 모든 유색 인종의 이상적인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예전에는 백인종·황인종·흑인종이라 부르던 때도 있었다. 인류는 여러 종으로 나뉜 것이 아니고 피부색만 다를 뿐인데도 말이다. 20세기 중반의 흑인 차별을 다룬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와 같은 영화에서는 배우의 피부색이 중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에서 배우의 피부색을 따지는 것 자체가 편견이다. 내 어렸을 적에는 살색이라 부른 색깔을 지금은 살구색이라고 한다. 다문화 가정이 많아지면서 생긴 변화란다. 이렇듯 세상은 점점 다양성을 존중한다. ‘굳이 왜’라고 생각했었던 PC도 결국은 자리 잡을 때가 올 것이다. 오늘도 한쪽으로 치우친 고개를 바로 세운다.

이제는『오디세이』의 개봉일이 기다려진다. 오래전 『트로이』가 그저 흔한 할리우드의 볼거리만 빵빵한 영화였다면 『오디세이』는 몇 가지 빼고는 고증을 철저히 했다니 기대해 볼 만하다. 게다가 좋아하는 배우 앤 해서웨이가 주인공이지 않은가. 맷 데이먼도 믿고 보는 배우이고, 심지어 한국 출신 배우인 윌리엄 윤 리(이상욱)도 오디세우스의 선원으로 등장한다. 험난한 모험을 마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상봉하는 행복한 오디세우스처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도 행복한 끝맺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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