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요즘 대학생들에게 단순한 ‘자소서 특강’이 통하지 않는 이유
취업 시즌만 되면 전국의 대학 캠퍼스는 자기소개서 특강과 컨설팅으로 분주해집니다. 문항 분석, 합격 가이드, 역량 중심 스토리텔링 등 화려한 스킬을 가르치는 강의들이 넘쳐나지요. 하지만 현장에서 청년들을 직접 만나며 깨달은 차가운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소서 잘 쓰는 기술’이 아닙니다.
학교와 강사들이 아무리 훌륭한 템플릿을 쥐여주어도, 정작 학생들은 모니터 앞에 앉아 첫 문장조차 떼지 못합니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쓸 '알맹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누구인지, 뭘 원하는지"스스로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단계가 빠진 2단계의 비극
자소서는 말 그대로 '자기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나를 소개하려면 나에 대한 탐색과 정리가 먼저 끝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 대학생들은 스펙 쌓기와 학점 관리에 치여 정작 '나를 읽어내는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방향성이 부재한 상태에서 합격 샘플을 짜깁기한 자소서는 영혼이 없을 수밖에 없고, 면접관의 날카로운 질문 한 마디에 쉽게 무너집니다. 이제 단순한 스킬 전수형 특강은 학생들에게도, 취업률을 고민하는 대학 담당자들에게도 근본적인 해결바카라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이전에 ‘라이프 디자인(Life Design)’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진로를 찾은 청년들의 변화 기록
서강대 미래교육원 강의실에서, 그리고 다양한 진로 컨설팅 현장에서 제가 청년들과 함께하는 작업은 뻔한 취업 준비가 아닙니다. 동양 고전을 읽으며 인간을 이해하고, 내 삶의 궤적을 텍스트로 옮기는 '인생 리라이팅(Rewriting) 프로젝트'입니다.
글쓰기라는 거울을 통해 스스로의 진로를 찾아낸 청년들의 변화는 언제나 드라마틱합니다.
사례 1: "스펙이 없어서 쓸 말이 없다"던 전공자 A
공인어학성적도, 화려한 대외활동도 없어 자소서 창만 켜면 숨이 막힌다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저는 스펙 나열을 멈추게 하고,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장 몰입했던 순간을 일기처럼 써보게 했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A는 자신이 '사람들의 불편함을 관찰하고 개선안을 낼 때' 가장 빛나는 사람임을 스스로 발견했습니다. 스펙이 없는 게 아니라 콘셉트가 없었던 것이죠. 자신의 고유성을 글로 정리한 A는 이후 마케팅 직무로 방향을 명확히 잡고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사례 2: 남들의 기준에 맞춰 방황하던 취준생 B
대기업이라는 목표만 보고 달리다 번아웃이 와서 저를 찾아온 청년이 있었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함께 읽으며 '관계론'을 바탕으로 나의 인간관계와 가치관을 성찰하는 글쓰기를 진행했습니다.
B는 자신이 조직의 규모보다 '안정적인 유대감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사람임을 깨달았습니다. 남의 옷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중견 강소기업으로 눈을 돌린 B는 "취업 준비를 하며 처음으로 내가 살아있는 것 같다"는 고백을 남겼습니다.
레고 블록이 아닌, 나무를 키우는 교육으로
많은 취업 강의가 학생들을 기업이라는 틀에 맞춘 '레고 블록'으로 깎아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규격화된 블록은 언제든 다른 블록으로 대체되기 쉽습니다.
반면, 글쓰기를 통해 자기 안의 통찰을 깨운 청년들은 스스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나무'가 됩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어떤 바람이 불어도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야 할지 스스로 압니다.
글쓰기는 단순히 바카라을 한 권 내거나 자소서를 채우는 행위가 아닙니다. 내 삶을 읽어내는 통찰로 나의 내일을 다시 쓰는, 진정한 의미의 진로 설계입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진짜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대학 기획자, HRD 담당자라면 이제 강의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결국 진로를 찾는다는 것은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을 맞히는 과정이 아니라, 내 안의 오답과 정답을 스스로 서술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단순히 취업률의 숫자를 올리는 기술이 아니라, 청년들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내일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대학과 교육이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이자, 제가 강단에서 글쓰기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