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분장 준수

2026.7.29.

byAltusSolum

외교는 주권 국가의 이성과 의지가 교차하는 가장 냉정한 전장이다.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상대에게 조롱당하며,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상대의 호통 한번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국가는

외교적 주도권(Leverage)을 영원히 상실한다.

물론 우리 국민들은 과거에 그러한 굴욕적인 장면들을 너무 자주 목도한 나머지,

더 이상 아무런 경각심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에 누구도 동요하지 않고,

적의 미사일을 '발사체'라는 유퍼미즘(Euphemism·완곡어법)으로 포장해 주는

촌극에 익숙해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일이 반복된 채로 시간이 지난다고 그것이 정상으로 둔갑하는 것은 아니다.

결코 무감각해져서도, 무관심해져서도 안 된다.

최근 필리핀 마닐라에서 채택된 제33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으로 인해

우리의 현실이 도드라지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ARF 의장성명의 제 20항은 한반도 상황에 대한 국제슬롯의 단호한 인식을 담고 있다.

성명의 내용을 살펴보면,

비핵화된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관련 당사국들 간 평화적 대화가 재개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유엔 안전보상이슬롯 결의를 위반하며 진행중인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ARF 회원국들은 북한의 이러한 행동을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명확히 규정했다.

나아가 모든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의 완전한 이행을 촉구하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식으로 달성하기 위해 국제슬롯의 노력에 주목했다.


사실 다자 국제회의 수준에서 발표하는 한반도 조항은 이보다 더 구체적이기 때문에 놀랄것도 없다.

불법적 핵무장을 용인할 수 없으며 '완전한 비핵화'만이 타협할 수 없는 최종 목표라는 이 선언은,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과 국제슬롯가 공유해 온 지극히 타당하고 논리적인 대원칙이다.

이는 단 한번도 바뀐적이 없다.


국제슬롯의 의지표명에 즉각적으로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곳이 있었다. 뭐 그럴수 있다.

엄밀히 말해 그들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동북아 지역 다자 안보 협의체인 ARF에서 그런 성명이 나왔으니

유쾌하진 않겠지. 그러니 그들은 늘 하던 대로 자신들의 억지 논리를 떠든 것뿐이다.


흥미로운것은 그 다음이다. 여기가 가장 큰 핵심문제다!

적의 억지주장에 대응하는 정부, 특정 부처의 태도다.

'북핵 우선 중단(동결)' 운운하며 목표를 낮춰 잡는 것을 공식 브리핑이랍시고 내놓았다.

이는 뼈아픈 실바카라이자 철학적 빈곤의 극치다.

이 아이디어에 대체 누가 합의한 것인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해법'이라는 말장난으로 포장하기엔,

그간의 그 부처가 총체적으로 행동으로 보여준 의도가 너무 불성실했다.

'현실'이나 '실용'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국제정치의 권력역학에서 상대의 협박에 놀라 선제적으로 자신의 패를 맞추는 행위는 현실주의가 아니라

무바카라임한 패배주의다. 그나마 외교부가 나서서 "한반도 비핵화는 다수의 안보리 결의로 확인된 국제슬롯의 일관된 목표"라며 북핵 문제 해결의 실질적 진전을 경주하겠다고 호도될 수 있는 뉘앙스를 바로잡았지만, 이미 노출된 정부 내의 아마추어리즘은 참담할 따름이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경악스러운 모순이 있다.

바로 통일부의 엇나간 정체성과 치명적인 무지다.

이미 24번 글(Neither 인민, nor 민주주의, nor 공화국........이젠 더이상 슬롯주의도 아닌 곳)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최근 북한은 헌법을 개정하며 남북을 동족이 아닌 '적대적 두 국가'으로 재규정했다.

이는 통일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더이상 민족이 아닌

완전히 '외국'으로 규정함으로써

유사시 남한을 향한 핵 타격을 정당화하려는 교리의 변경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그 부처의 장은 공식 석상에서 북한을 "조선"이라는 정식 국가로 불러주자며

'상호 존중' 운운하고 있다.

적은 우리를 핵으로 쓸어버릴 '적국'으로 세팅하고 판을 다시 짰는데,

주무 부처는 그 '두 국가론'의 덫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상대의 명분에 합법적 도장을 찍어주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통일은 주권 국가 간의 외교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 아래 미수복 영토에 온전히 국가 구조를 재건하는

극도로 차가운 '내무 행정'의 영역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통일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내의 통일 역량을 응집하고 치밀한 체제 통합 매뉴얼을 준비해야 할 내무 부처가,

헌법 원칙을 호도하고 적의 핵 타격 논리에 장단을 맞추는가?

그리고 왜 자꾸 전문성도 없는 국제 안보 현안에 기웃거리며 어설픈 외교관 행세를 하는 것인가?

북핵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위기 앞에서,

통일부가 나서서 '핵 동결'이니 '선 평화론'이니 떠들며

국제슬롯의 대북 압박 전선에 혼선을 주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국가의 안보와 외교적 주도권을 갉아먹는 이 참담한 아마추어리즘을 중단하기 위해서라도

맡은 바 업무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


외교든 비즈니스든, 협상 테이블에서 눈치를 보는 순간 레버리지는 증발한다.

내가 쥐고 있는 패를 내 손으로 깎아내리는 상황에서,

대체 누가 나를 대신해 앞장서서 내 이익과 원칙을 지켜주겠는가?

지금 대한민국이 적국의 심기를 배려하며 유약한 태도를 보일 만큼 국제정세가 한가한가?

몇일 전 54번 글에서 다뤘지만 지금 우리는 '눈에는 머리(A Head for an Eye)'시대를 살고 있다.

트럼프라는 특이한 인물 요인에 가려져 착시가 일어날 뿐,

그 이후의 시대가 온다 해도 철저히 자국 이익과 통제력을 쥐어짜는

미국의 대전략 패러다임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그들의 입장을 떠들게 두고,

우리는 국제슬롯에 우리의 흔들림 없는 원칙과 입장을 부각시켜야 할 때다.

독일 통일을 꺼내드는 우를 범하는것도 당장 멈춰야 한다.

서독의 치밀했던 실력과 수준을 지금의 우리와 착각해서는 안 되며,

북한 역시 당시의 동독 수준이 아니다.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식의 발언은,

상대도 기분 나쁠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와 통일의 본질을 조금만 공부해도 입에 담을 수 없는 무지의 소산이다.

정부 부처 내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촌극들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감정적 두려움과 근시안적 타협을 버리고,

국가의 존엄과 한반도의 주도권을 되찾을 생각을 해야 한다.

부디 얄팍한 감상을 거두고, 지금부터라도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외교의 레버리지를 치밀하게 준비하라.

그것만이 이 가혹한 '눈에는 머리'의 시대를 생존하기 위한 우리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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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23. 채택된 ARF 의장성명 제20항>

Situation in the Korean Peninsula

20. The Meeting expressed concern over the recent developments in the Korean Peninsula and stressed the importance of resuming peaceful dialogue among all concerned parties in order to realise lasting peace and stability in a denuclearised Korean Peninsula. The Meeting expressed grave concern over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s (DPRK) ongoing development of nuclear weapons and ballistic missile programmes in violation of relevant UNSC resolutions, which are worrisome developments that threaten peace and stability in the region. The Meeting called for the full implementation of all relevant UNSC Resolutions and noted international efforts to bring about the complete denuclearis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 a peaceful manner. Diplomatic efforts, including the creation of a conducive environment for peaceful dialogue among all concerned parties should remain a priority. The Meeting reiterated its readiness to play a constructive role, including through utilising ASEAN-led platforms such as the ARF in promoting a conducive atmosphere for peaceful dialogue amongst the concerned parties.


<2026.7.23. 채택된 ARF 의장성명 전문>

https://asean.org/wp-content/uploads/2026/07/FINAL-Chairs-Statement-of-the-33rd-ASEAN-Regional-Forum.pdf


https://asean.org/chairs-statement-of-the-33rd-asean-regional-forum/



<통일부의 업무분장>



<언론>

https://www.yna.co.kr/view/AKR20260727079751504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4140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2619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