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us Solum_Achive
오늘로 50번째 글이라는 사실이 당연하면서도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The Alchemist(연금술사), 1988>의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1947-)는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 1954-)와의 대담에서, 자신이 바카라을 쓰기 훨씬 전부터 스스로를 작가라고 소개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권위주의적인 가족들은 세속적인 성공이 아닌 글을 쓰겠다고 하는 장남을 정신병원에 몇번이나 집어 넣었다. 그곳에 갇히면서도, 매번 탈출했던 그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각성했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에게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면서 바카라이 영글어진것 같다고도 했다. 코엘료는 그 바카라이 자신보다 훨씬 더 낫다며, 자신이 바카라을 쓴 것이 아니라 바카라이 자신을 만든것 같다고 회고했다.
50이라는 상징적인 마디에 도달한 지금,
비로소 이 공간의 이름인 '알투스 솔룸(Altus Solum)'에 대해 제대로 소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알투스 솔룸은 라틴어다. 형용사 '알투스(Altus)'는 매우 기이하고도 철학적인 단어다. 하늘을 향해 뻗은 '높은(High)' 상태와 심연을 향해 뻗어 내려간 '깊은(Deep)' 상태를 동시에 아우른다. 여기에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단단한 지반이자 토대인 '솔룸(Solum)'이 결합된다.
따라서 '알투스 솔룸'은 단순히 해발고도가 높은 물리적 산봉우리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장 높이 솟아오르기 위해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린, 결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토대를 의미한다. 건축물이 아무리 화려하고 무기가 첨단을 달린다 해도, 그것을 지탱하는 솔룸(지반)이 모래라면 그 높이(알투스)는 허상에 불과하다. 진정한 높이는 진정한 깊이를 전제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고대 로마 군단의 전술적 뼈대이기도 했다. 제국을 수백 년간 지탱한 로마군은 낯선 영토에서 행군을 멈출 때마다, 반드시 주변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알투스 솔룸'을 찾아 진지(Castra)를 구축했다. 군사학에서 고지의 점령은 단순한 위치의 선점이 아니다. 저지대에 고인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고, 적의 기만전술을 위에서 아래로 꿰뚫어 보며, 아군의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투사할 수 있는 '시야의 통제권'을 쥐는 일이다. 고지를 잃은 군대는 적이 어디서, 어떻게 공격해 올지 모르는 인지적 맹인 상태로 싸워야 한다. 모든 전쟁의 역사가 이 좁고 높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피의 기록이었던 이유다.
그러나 총탄이 아닌 '정보와 인지'가 무기가 된 현대의 복합전 시대에, 국가가 사수해야 할 '알투스 솔룸'은 지형도에 표시된 고지대가 아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국가 이성(Raison d'État)의 지반'이다. 본래 정치철학에서 국가 이성이란, 국가의 생존과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계산과 통치 논리를 뜻했다. 하지만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진정한 국가 이성은 맹목적인 생존 본능이나 힘의 논리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정바카라의 정당성, 타자를 향한 숙의의 시간, 그리고 합의된 절차를 끝끝내 지켜내는 공적 합리성으로 진화해야만 한다. 반대파를 논박할 수 있는 투명한 객관성, 시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깊은 뿌리가 있어야만, 국가는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도덕적이고 전략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 무형의 진지가 붕괴된 국가는 외부의 적과 싸우기도 전에 내부의 분열과 냉소라는 저지대의 늪에 빠져 스스로 침몰하고 말 것이다.
지난 49일의 글을 통해 우리가 목격하고 기록해 온 풍경은 어떠한가? 적의 포격이 토대를 부순 것이 아니다. 스스로 '효율성'과 '속도전'이라는 얄팍한 명목 아래 숙의의 시간을 지워버렸다. 의견 수렴이라는 민주주의의 뼈대를 사후 요식행위로 격하시키며 자기 발밑의 단단한 지반을 파헤쳤다. 스스로 안보의 가드를 내리고, 자발적으로 기존의 고지에서 걸어 내려와 기만과 독단이 난무하는 저지대로 향하는 행정의 맹목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그러므로 알투스 솔룸은 결국 밖으로 주어지는 영토가 아니다. 이 환멸의 시대를 건너가는 우리가 내면의 깊은 사유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간신히 밀어 올려야 할 '가장 높고도 외로운 이성의 고지'다.
https://m.blog.naver.com/altus_solum/224326551463
부수는 것은 한순간(위의 글 참조, 로저 스크루턴 경)이지만, 무너진 절차와 국가의 이성을 재건하는 일은 결국 이 고지에 남은 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짙은 환멸 속에서도 냉소하는 대신, 기록을 남기는 이유다. 우리는 여전히, 무너지지 않는 가장 높은 고지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올해 1월, 알투스 솔룸이라는 개념을 빚어놓고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간신히 이곳을 만들고, 예전에 써둔 글 하나를 여기에 올렸다. 그 하나가 둘을 만들었고, 둘이 셋을 만들었다. 솔직히 나 자신이 이 공간을 이렇게 매일 가꿔올 줄은 나조차 몰랐다. 이것은 치밀한 계획이라기보다, 내 의지의 표명이었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첫 시작은 나였을지 모르지만, 어느순간부터 오히려 이 공간이 굳건히 나를 붙들어 주었다. 내가 '알투스 솔룸'을 만든다기 보다, '알투스 솔룸'이 나를 만들어가는것 같다.
이 50이 몇이 될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매일의 나를 기록하는 것은 나 자신을 한없이 겸손하게 만든다. 감사한 일이다.
<파올로 & 오프라 대담 1>
<파올로 & 오프라 대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