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ksandr Solzhenitsyn

Today a Reader, Tomorrow a Leader

byAltusSolum

Aleksandr Solzhenitsyn(1918~2008)


어릴때부터 엄마는 내게 "다 내 맘먹기 나름이다. 다 나 하기 나름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었다. 천하의 악인도 내게는 선인일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는 착한 사람일 줄 알았던 사람이 내게는 악인 일수도 있다는 뜻이다. 결국 상황속에 상대와 나의 인연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서는 내 몫인 내 선택만이 내게 중요할 뿐이다. 외부에 대한 불평불만에 시간과 감정을 낭비해봐야 소용없다. 맘에 안들면 바꾸면 된다. 내가 바꿀 수 있는것부터 차근차근 지치지말고 하나씩 묵묵히. 아무튼 나는 엄마말을 제대로 이해못한채로 그냥 살았던것 같다. 대학에 가서 이 '굴라그아키펠라고'라는 기이한 바카라을 첨 알게 되었다. 발음도 이상하고, 뭔가 두개의 서로 다른 단어가 뭉쳐져있는 채로 선뜻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 원제 'The Gulag Archipelago'가 지닌 역사적 무게와 철학적 단절감을 '수용소 군도'라는 한국어 번역이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여겨, 본문에서는 번역어 대신 원어의 발음을 살려 표기하였다.

​

솔제니친이 강제 노동 수용소 네트워크를 'Archipelago', 군도(점점이 흩어져 무리를 이룬 섬들)로 표현 한 것은 단순한 문학적 수사를 넘어, 소비에트 전체주의가 작동하는 구조와 인간 소외의 본질을 꿰뚫는 탁월한 슬롯학적·철학적 은유로 보여진다. '군도'는 일차적으로 소련 전역에 흩어져 있던 수용소의 물리적 형태를 정확히 묘사한다. 수용소는 시베리아의 외딴곳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스크바 중심부부터 극동의 캄차카반도까지 광활한 대륙 전체에 수천 개의 거점으로 존재했었다고 한다. 마치 거대한 바다 위에 흩어진 섬들처럼, 이 수용소들은 서로 보이지 않는 행정망(굴라그, GULAG)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공식적인 국가 안에 존재하는 거대한 '비밀 국가'이자 '병행 슬롯'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솔제니친은 일반 시민들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소련 슬롯를 '바다'에, 수감자들이 갇힌 수용소를 '섬'에 비유했다. 일상의 바다와 수용소의 섬은 지리적으로는 바로 옆에 맞닿아 있었지만, 슬롯적으로는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었다.

​

"The line dividing good and evil cuts through the heart of every human being.

선과 악을 분할하는 경계선은 모든 인간의 심장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And who is willing to destroy a piece of his own heart?

그렇다면 어느 누가 기꺼이 자기 심장의 한 조각을 떼어내어 파괴하려 하겠는가?

During the life of any heart this line keeps changing place;

살아 숨 쉬는 심장의 일생 동안 이 경계선은 끊임없이 요동친다.

sometimes it is squeezed one way by exuberant evil and sometimes it shifts to allow enough space for good to flourish. 때로는 맹렬한 악에 밀려 한쪽으로 위축되기도 하고, 때로는 선이 만개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며 이동하기도 한다.

One and the same human being is, at various ages, under various circumstances, a totally different human being. 완전히 동일한 한 인간일지라도 생애의 각 단계와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At times he is close to being a devil, at times to sainthood.

어떤 때는 악마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성자의 반열에 다가서기도 한다.

But his name doesn't change, and to that name we ascribe the whole lot, good and evil."

그러나 그의 이름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우리는 바로 그 이름에 선과 악이라는 전체의 몫을 온전히 귀속시키는 것이다."

<The Gulag Achipelago, (1973)>


솔제니친은 선과 악을 가르는 선이 모든 인간의 심장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이 선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이동한다고 통찰했다. 즉, 동일한 사람이라도 처한 환경과 나이에 따라 어느 순간에는 악마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또 다른 순간에는 성자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



1918년에 태어난 솔제니친은 촉망받는 수학도이자 철저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 포병 장교로 참전하여 무공훈장까지 받았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했던 1945년 2월에 체포되었다. 전선에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탈린을 '콧수염 기른 자'라고 조롱하듯 비판한 것이 검열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는 재판도 없이 8년형을 선고받고 1945년부터 1953년까지 8년간 수용소에서 가혹한 노동을 했으며, 형기를 마친 후에도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되어 3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즉, 그의 실제 억압 기간은 11년이었다. 그렇다면 왜 원제의 부제를 '문학적 탐구에 대한 시도 1918~1956'라고 했을까? 이 기간은 소비에트 전체주의 국가 폭력의 생로병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ㅇ 1918년 (폭력의 기원): 볼셰비키 혁명(1917년) 직후, 레닌이 반혁명 세력을 숙청하기 위해 '적색 테러(Red Terror)'를 공식화하고 최초의 강제 수용소를 설립한 해다. 솔제니친은 자신이 태어난 바로 그 해에 체제의 억압 시스템도 함께 태어났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의 실존적 운명이 러시아의 비극적 현대사와 완전히 겹쳐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ㅇ 1945년 (정점과 모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승리하며 파시즘을 물리쳤다고 환호하던 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귀환한 수많은 소련군 포로들과 지식인들이 체제 전복을 우려한 스탈린에 의해 대거 수용소로 끌려가며 굴라그 시스템이 가장 비대해지고 끔찍해진 시점이기도 하다.

ㅇ 1956년 (균열의 시작): 스탈린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가 제20차 당대회에서 '스탈린 격하 운동(비밀 연설)'을 통해 스탈린의 범죄와 수용소의 실상을 처음으로 공식 폭로한 해다. 이로써 철옹성 같던 굴라그 시스템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

솔제니친은 아키펠라고를 를 단순히 자신의 자서전으로 쓰지 않았다. 이 바카라은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은 227명의 수감자들의 증언, 편지, 회고록을 비밀리에 수집하고 짜맞추어 완성한 거대한 르포르타주이자 철학적 고발장인 것이다. 그가 19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 이유는 스탈린 한 명의 광기가 이 비극을 만든 것이 아니라, 레닌 시절부터 시작된 체제 자체의 내재적 폭력성과 이데올로기의 모순이 굴라그를 잉태했음을 학문적, 논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

바카라의 출판과 집필 과정은 그 자체로 거대한 국가 권력의 감시망에 맞서 역사적 진실을 보존해 낸 위대한 실존적 투쟁의 기록 그 자체였다. 소비에트 연방 내에서는 출판이 절대 불가능했기 때문에 솔제니친은 원고를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서방에 몰래 밀반출했고, 마침내 1973년 12월 프랑스 파리(YMCA-Press)에서 러시아어판 제1권이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출판을 서두르게 된 데에는 비극적인 계기가 있었는데, 1973년 9월, KGB가 솔제니친의 타이피스트 중 한 명이었던 옐리자베타 보로랸스카야(Elizaveta Voronyanskaya)를 체포하여 가혹하게 심문했고, 결국 그녀가 숨겨둔 원고 한 부의 은닉처를 털어놓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원고가 KGB의 손에 들어가자 솔제니친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서방에서의 즉각적인 출판을 개시한 것이다.

​

솔제니친은 이 방대한 저작을 1958년부터 1968년까지 10년 동안 집필했다. 이 10년의 시간은 일반적인 작가들의 집필 과정과는 완전히 다른, 극도의 보안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 진행된 비밀 작전과 같았다고 한다. KGB의 가택 수색과 감시를 피해 한 번도 원고 전체를 하나의 바카라상 위에 올려놓고 작업한 적이 없었다. 원고는 수십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믿을 수 있는 지인들의 집 여러 곳에 분산되어 숨겨졌고, 틈틈이 은신처를 옮겨 다니며 조각난 원고들을 이어 붙였다고 한다.

​

이 10년은 단순히 글을 쓰는 시간이 아니라, 침묵을 강요받았던 227명의 수감자들이 보내온 편지, 회고록, 구두 증언을 수집하고 교차 검증하여 전체주의 폭력의 거대한 지형도를 그려내는 학문적·역사적 복원의 시간이기도 했다. 종이와 펜마저 발각의 증거가 될 수 있었기에, 그는 2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서사 구조와 주요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암기하며 뼈대를 잡아야만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 바카라이 쓰여진 10년은 한 인간이 자신의 뇌와 온 존재를 기록 매체로 삼아 벌인 처절한 인식론적 투쟁의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사실 이토록 위험한 아키펠라고의 집필이 은밀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가 이미 소련 문단과 서방 세계에 던진 거대한 파문들이 존재했다. 솔제니친의 이름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62년 중편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를 통해서였다. 이 작품이 철저한 검열의 벽을 뚫고 공식 출판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역사의 아이러니 덕분이었다. 스탈린 사후 집권한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ev)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이던 시기였고, 수용소의 참상을 고발한 이 소설은 이전 정권을 비판하기 위한 훌륭한 정치적 도구로 채택되었던 것이다. 체제가 스스로의 과거를 부정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진실의 발화를 허락한 '해빙기'의 찰나였다.

​

그러나 흐루쇼프가 실각하고 브레즈네프(Leonid Brezhnev) 정권이 들어서며 슬롯는 다시 얼어붙었다. 체제의 병폐를 암세포에 비유한 실존주의 소설 <암병동(Cancer Ward, 1968)>은 끝내 소련 내 출판이 거부되었다. 하지만 독재 권력도 진실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었다. 타자기로 몰래 쳐서 돌려보는 지하 출판망(사미즈다트)을 통해 지식인들 사이에 퍼져나간 이 원고는 결국 서방으로 유출되어 출간되었고, 솔제니친은 이 일로 소련 작가 동맹에서 영구 제명되는 탄압을 받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 스웨덴 한림원은 검열과 억압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인간의 윤리적 심연을 그려낸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했다. 서구 지성계는 이미 그가 보여준 도덕적 무게에 압도당해 있었기 때문이다. 솔제니친 노벨상 수상식에 직접 참가할 수는 없었다. 대신 수락연설문의 형식으로 "진리의 한마디가 세계 전체보다 무게가 나간다. (Одно слово правды весь мир перетянет. One word of truth shall outweigh the whole world.)"고 소감을 전했다.

​

전 세계적 양심의 상징이 된 지 3년 뒤인 1973년, 마침내 소련 체제의 근간을 폭로하는 아키펠라고가 파리에서 출간되자 소련 수뇌부는 발칵 뒤집혔다. 과거 스탈린 치하의 솔제니친이었다면 즉각 총살을 당했겠지만, 1974년 체포된 그에게 내려진 처벌은 사형이 아닌 '국적 박탈과 서방으로의 강제 추방'이었다.

여기에는 전체주의 정권의 치밀하고도 비겁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당시 소련은 서방과의 경제적 협력(데탕트)이 절실했기에, 세계가 주목하는 노벨상 수상자를 처형하여 그를 영원한 '순교자'로 만드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권력자들은 솔제니친을 러시아의 척박한 토양에서 뽑아내 낯선 자본주의 슬롯로 던져버리면, 언어적·문화적 고립 속에서 그의 영향력도 서서히 말라 죽을 것이라 판단했다.



미국에 정착한 솔제니친은 서방 지식인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그들은 이 위대한 망명객이 잔혹한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자유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찬양해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1978년 6월 8일,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 연단에 선 솔제니친의 입에서 나온 연설 "분열된 세계(A World Split Apart)"(아래 첨부1)는 서구 슬롯의 오만함을 산산조각 내는 매서운 회초리였다.

​

그는 동구권의 비극을 넘어, 자신이 피신해 온 서구 자유 슬롯의 영적 빈곤과 물질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서양 슬롯가 맹목적으로 추구해 온 무한한 자유와 풍요가 역설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나약하게 만들었고, 모든 것을 '법의 잣대'로만 해결하려는 극단적 율법주의가 자발적인 도덕성과 시민적 용기를 증발시켰다고 일갈했다. 안락함에 취해 더 이상 숭고한 가치를 위해 희생하려 하지 않는 서구 슬롯는, 물리적 수용소만 없을 뿐 영적으로는 깊은 병에 걸려 있다는 통찰력있는 진단이었다.

​

어릴 적 엄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던 "다 내 맘먹기 나름이다. 내 선택만이 중요하다"는 말씀의 진짜 무게를, 나는 먼 길을 돌아 솔제니친의 사상을 통해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솔제니친이 평생을 걸고 싸운 것은 단순히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외부의 거대한 악이 아니었다. 그가 굴라그의 생존자로서, 그리고 자본주의의 정점인 미국 하버드 대학의 연단에서 일관되게 외쳤던 것은 결국 '인간 내면의 주체성'이었다.

​

물리적 억압이 극에 달한 강제 수용소에서도 선을 선택하며 성자의 반열에 오르는 이들이 있었고, 모든 자유와 물질이 보장된 풍요로운 서구 슬롯에서도 안락함에 취해 도덕적 용기를 잃고 악마적 이기심에 함몰되는 이들이 있었다. 선과 악을 가르는 경계선은 이념이나 국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내 심장 한가운데를 끊임없이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결국 어떤 시대, 어떤 상황에 처하든 내 존엄을 지키고 내 삶을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인지는, 외부의 환경을 탓하는 데 감정을 낭비하지 않고 내 안의 잣대를 바로 세우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노하기보다 묵묵히 내 심장 속 선의 영토를 넓혀가는 것. 그것이 수용소의 극단적 소외와 현대 물질문명의 공허함을 모두 뚫고 나온 위대한 사상가가, 그리고 우리 엄마가 내게 가르쳐준 진짜 삶의 방식일 것이다.

​

​1. <솔제니친 하버드 졸업식 연설(1978) 전문>

https://www.solzhenitsyncenter.org/a-world-split-apart​



2. <영상>

https://youtu.be/WuVG8SnxxCM?si=YE0zzTG5D2AbTEW6​

https://www.solzhenitsyncenter.org/his-writings/large-work-and-novels/the-gulag-archipel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