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The March of Folly)

byAltusSolum

◀ 국가 안보와 법치를 붕괴시킨 구조적 실패를 단지 '세심함의 부족'으로 치환하고,

치명적 난제의 바카라임은 관료에게 하청주며 안전한 의제에만 결단하는 척 위장한다.

가장 기괴한 것은 적의 절멸 위협 앞에서도 "싸우지 않는 평화"를 읊조리고,

외교 체스판에서 철저히 패싱(Passing) 당하는 투명인간의 처지를

'보이지 않는 곳의 장기적 국익'으로 미화하는 아큐(阿Q)식 정신 승리다.

대안이 있어도 낡은 아집에 갇혀 국익에 반하는 길을 걷는 '바보들의 행진(The March of Folly)'.

사유를 멈춘 얄팍한 정치꾼들이 국가 이성을 땔감으로 던져 넣고 있는 한,

차가운 현실주의로 무장한 스테이츠먼(Statesman)이 등장하거나 국가가 벼랑 끝에 추락하기 전까지

이 맹목적인 파멸의 행진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

ALTUS SOLUM 2026.9.18.(금)








바바라 터크먼(Barbara W. Tuchman, 1912-1988)은 역사를 박제된 과거가 아닌 '살아 있는 권력의 심리전'으로 꿰뚫어 본 탁월한 관찰자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고발한 외할아버지(헨리 모겐소 시니어)와 미국 외교의 정점에서 전후 처리를 주도한 외삼촌(헨리 모겐소 주니어)을 둔 그녀는, 식탁 머리에서부터 외교와 권력의 막전막후를 체화하며 성장했다.


그녀가 1984년에 펴낸 <바보들의 행진(The March of Folly)>은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의 정점에 선 자들이 어떻게 자기 파괴적인 어리석음의 낭떠러지를 향해 걸어가는지를 통시적으로 해부한 정치철학적 경고장이다. 터크먼은 수많은 경고와 합리적인 대안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델피 신전의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 Know Thyself)"는 경고를 망각한 채 기어코 국익에 반하는 결정을 고집하는 권력자들의 맹목성을 '목석같은 고집(Wooden-headedness)'이라 칭했다.



□ 자기기만의 병리학: '세심함 부족'

형식을 파괴하며 100분간 꼿꼿이 서서 질문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 즉 '소통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는 점은 평가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나도 모르게 해리 프랑크푸르트 교수님이 떠올랐다. 프랑크푸르트 교수님에 따르면 거짓말쟁이는 최소한 진실을 인지하고 이를 감추려 노력하지만, '헛소리'를 하는 자는 진리 자체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고 청중을 조종하려는 목적만 있을 뿐이다.


국정 지지율의 붕괴와 정바카라적 파탄 앞에서 그는 "방향은 맞았으나 과정에서 세심하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언뜻 겸허한 성찰처럼 들리지만, 권력정치(Realpolitik)의 렌즈로 보면 이는 치밀하게 계산된 자기기만이다. 국가 안보의 빗장을 풀고 법치를 훼손한 '구조적 실패'를 단지 리더의 '넘치는 열정과 덜 다듬어진 섬세함' 탓으로 환원시켰기 때문이다. 실패의 본질이 자신의 이념적 독선에 있음을 끝내 부정하고 팩트를 철저히 외면하는 이 태도는 반성이 아니라, 터크먼이 갈파한 '현실 부정의 병리학' 그 자체다.



□ 사유의 마비와 위장된 결단

터크먼은 "권력은 종종 생각하는 능력을 마비시킨다"고 지적했다. 회견장에 선 그는 "만기친람할 역량도 안 된다"며 "권한은 주고 바카라임은 (관료에게) 확실하게 묻는다"는 원칙을 자랑스레 내세웠다. 그러나 실상은 치졸한 '바카라임의 하청'이자 사유(Thinking)의 정지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거대한 안보·경제 위기 앞에서는 "관료들이 바카라임질 일"이라며 뒤로 숨고, 정작 자신이 결단하는 사례로는 '낙태 허용과 미프진 도입'을 들이밀었다. 국가적 난제 앞에서는 꼬리를 자르고, 지지층을 결속시킬 수 있는 얄팍하고 계산된 갈등 이슈 하나를 쥐고 '고독하게 결단하는 개혁가'를 연기하는 처참한 무대술이다. 심지어 자신의 사법 방탄을 위해 도덕적으로 파산한 인물을 장관에 앉히려 하면서 이를 '국민 눈높이'라는 위선적 언어로 포장하는 맹목성은 권력 카르텔의 국가 이성(Staatsräson)이 철저히 마비되었음을 증명한다.



□ 외교적 트로이 목마와 아큐(阿Q)의 정신 승리

가장 끔찍한 바보들의 행진은 외교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다. 터크먼은 <조지프 스틸웰과 미국인의 중국 경험(Stilwell and the American Experience in China, 1971) >을 통해 막대한 자원과 서구식 이상주의만으로 복잡한 현실을 개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구원자 콤플렉스'와 환상이 어떻게 외교적 파산을 낳는지 철저히 해부했다.


지금 이 나라의 외교 역시 낡은 이상주의의 늪에 빠져 있다. 적국은 헌법에서 통일을 지우고 압도적인 뉴클리어 파워의 방아쇠에 손을 얹었는데, 이 나라의 통수권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평화"라는 주술을 읊조리며 짝사랑을 고백한다. 여기가 아닌 지구 반대편 어느 평화로운 중립국의 수장이라면 그리 한가한 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실존적 위협 앞에서는 완벽한 망상이다. 트로이 시민들이 라오콘의 경고를 무시하고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인 그 맹목적인 파멸의 행진과 정확히 겹친다.


더욱 기괴한 것은 북·미 테이블에서 당사자인 한국이 철저히 배제(Passing)되는 치명적인 안보 위기를 대하는 태도다. 그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현실을 두고 "생색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장기적 이익을 챙기는 것"이라며 미화했다. 주권 국가가 자국의 운명에 대한 결정권을 통째로 박탈당한 상황을 '대승적 양보'로 둔갑시키는 이 궤변은, 루쉰의 소설 속 아큐(阿Q)가 동네 건달들에게 두들겨 맞고도 속으로 '나는 정신적으로 승리했다'고 읊조리는 처참한 현실 도피와 다를 바 없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문밖에 쫓겨나 선 처지를 스스로 겸손함이라 우기는 지독한 인지 부조화다.


""바카라이 없다면 역사는 침묵하고, 문학은 벙어리가 되며, 과학은 불구가 되고, 사상과 사색은 정지해 버린다."("Books are the carriers of civilization. Without books, history is silent, literature dumb, science crippled, thought and speculation at a standstill.)"는 터크먼의 통찰처럼, 사유를 멈추고 진실을 잃어버린 권력은 국가의 심장을 멈추게 한다. 바보들의 행진은 권력자가 스스로 오류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권력이 붕괴하거나 국가가 벼랑 끝에 떨어질 때 비로소 멈춘다. 권력 카르텔의 생명 연장을 위해 국가의 사법과 안보, 외교를 기꺼이 땔감으로 던져 넣는 자들이 조종대를 잡고 있는 한, 이 맹목적인 행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뼈저리게 부재한 것은 한 명의 얄팍하고 피상적인 정치꾼이 아니라, 차가운 현실주의로 무장한 '스테이츠먼(Statesman)'이다.






<참고>

https://fishingproductfr.com/@24b21b72d8be45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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