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국의 선의에 기댄 채 낡은 구호를 연기하는 비겁함으로는 국가를 지킬 수 없다.
테이블에 연대하여 앉지 못하면, 결국 강대국의 메뉴판에 오를 수밖에 없다.
미국만 바라보는 단선적 동맹의 환상에서 벗어나 '가변 기하학'의 다자적 숲을 엮어야 한다.
패권국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 수 있는 구조적 신호야말로 가장 막강한 외교적 레버리지다.
생존이 걸린 약자에게 막연한 동맹과 평화라는 막연한 '기대'는 철저한 파멸을 부를 뿐이다.
반도체와 방산의 카드를 쥐고 '네트워크 억지력'이라는 교섭력을 창출하라.
강대국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한
나만의 슈필라움(전략적 운신의 폭)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
ALTUS SOLUM 2026.9.19.(토)
바츨라프 하벨(Václav Havel, 1936-2011)은 <힘없는 자들의 힘(The Power of the Powerless, 1979)>에서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허구가 어떻게 스스로를 유지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소비에트연방공화국 체제에 펜으로 저항하던 극작가이자 반체제 지식인이자, 1989년 피를 흘리지 않고 공산정권을 무너뜨린 벨벳 혁명(Velvet Revolution)을 이끈 핵심 인물이었다. 그 도덕적 권위와 지도력을 인정받아 혁명 직후 대통령으로 추대되어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대통령(1989-1992)이자, 체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1993-2003)을 지냈다.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허구가 어떻게 유지되는지라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매일 아침 쇼윈도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낡은 구호를 내거는 동네 과일가게 주인(Greengrocer, 지극히 평범하고 정치에 관심없는 소시민의 상징)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상인도, 그 앞을 지나는 사람도 그 구호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단지 문제를 피하고 체제에 대한 순응을 증명하기 위해 모두가 그 거짓된 간판을 걸어둘 때, 체제는 폭력이 아닌 침묵으로 유지된다. "체제의 힘은 진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연기하려는 맹목적 의지에서 나온다.(living with a lie)"
올해 다보스 포럼 무대에 선 마크 카니(Mark Carney, 1965-)) 캐나다 총리가 하벨의 이 통찰을 국제정치로 소환했다. 과거 패권국이 주도하던 '규범 기반 국제질서'라는 허구를 믿는 거래는 끝났으며, 강대국들이 경제 통합 자체를 강압과 종속의 무기로 사용하는 단절의 시대에, 중견국들은 과거의 대본을 연기하는 짓을 당장 멈춰야 한다는 경고장이었다. 카니 총리는 다극화된 맹수의 숲에서 살아남아야 할 중견국들을 향해 다음과 말했다.
“중견국들은 반드시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테이블에 연대하여 앉지 못하면, 결국 강대국의 메뉴판에 오르게 될 것(희생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Middle powers must act together because if we're not at the table we're on the menu.)
Davos 2026: Special address by Mark Carney
지금 세계는 '메뉴판'에 오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낡은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미국의 핵심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안보 지원을 줄이는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보란듯이 중국제 탄도미사일(DF-15)을 실전에서 발사하는 치명적인 무력 시위를 벌였다.
철저히 고립된 줄 알았던 북한조차 지정학적 틈새를 비집고 있다. 북한은 체육상 등 각료급 인사를 8년 만에 일본에 파견하며 빗장을 열었고, 코로나19 유행 이후 평양에서 철수했던 스웨덴, 폴란드 등 유럽연합(EU) 소속 서방 외교관들의 재입국과 대사관 복귀를 허용하며 서방과의 외교 접촉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지각변동 속에서 완벽한 '전략적 진공 상태'에 빠져 있는곳도 있다. 이들은 확고한 친●도 아니며, 그렇다고 선 굵은 중립 외교를 펼치지도 못한다. 내심 주변국과 친해지고 싶다는 낭만적 정서만 품고 있을 뿐, 국제 무대에서는 어떠한 다자적 교섭력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오직 동족을 지우고 핵을 거머쥔 북측에 대해서만 벌벌 떨며 국력을 소진한다. 아무런 자율성 없이 강대국의 선의에 기댄 채 '가짜 평화'의 간판만 쇼윈도에 매달고 있는 비겁한 모습 그대로다.
과거 1930년대, 군용 자동차와 석유의 대미 의존도를 두려워했던 일본 군부가 국가 통제로 인위적인 디커플링(단절)을 시도했다가, 역설적으로 미국의 치명적 금수 조치와 진주만 공습이라는 파국을 맞이했던 역사적 사실은 우리에게 무거운 교훈을 던진다. 맹목적인 의존이나 섣부른 단절, 혹은 지금의 한국처럼 어떠한 다자적 대비도 없이 그저 웅크리고 있는 수동적 마비 상태 모두가 국가 이성의 내파(Implosion)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생존의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상주의자들의 몽상처럼 중견국들이 모여 새로운 패권국(Hegemon)을 건설하자는 것이 아니다. 강대국 정치(Power Politics)에서 중견국 연대의 진짜 목적은 패권국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이 우리를 밀실에 가두고 일방적으로 쥐어짜지 못하게 '괴롭힘의 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극대화하는 '네트워크 억지력(Networked Deterrence)'의 구축이다.
과거 냉전 시대 미국이라는 허브(Hub)에 한국, 일본 등이 바퀴살(Spoke)처럼 1대1로 연결되던 단선적 동맹 체제는 경제와 기술이 무기화된 복합 위기 시대에 수명을 다했다. 이제는 군사력에만 의존하는 선형적 방어를 넘어, 사안에 따라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Like-minded countries)들이 이합집산하며 유연한 다자적 그물망(Web)을 짜는 이른바 '가변 기하학(Variable Geometry)'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이제는 군사력에만 의존하는 선형적 방어를 넘어, 사안에 따라 가치와 이익을 공유((Like-minded countries)하는 '서구 문명 국가(The West)'들이 이합집산하며 유연한 다자적 그물망(Web)을 짜는 이른바 '가변 기하학(Variable Geometry)'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스티븐 코트킨(Stephen Kotkin)이 통찰했듯, 여기서의 '서구(The West)'란 지리적 영역의 표현이 아니라 자유와 법치, 자본주의시장이라는 제도를 내재화한 문명적 연대를 뜻한다.
https://blog.naver.com/altus_solum/224307211451
이를 가장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나라가 캐나다다. 캐나다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압박 속에서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지 않기 위해 북미라는 지리적 한계를 깨고 유럽연합(EU)의 '준회원국' 가입 절차를 밟는 파격적 파트너십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내던진 다자무역체제(CPTPP)를 일본·호주 등과 함께 거대한 경제 블록으로 살려냈고, 독일 방산기업에 차세대 잠수함을 맡기며 안보와 경제의 다자적 사슬을 맹렬하게 엮어내고 있다. 마크 카니 총리는 최근 유럽연합의회(EU Parliament) 연설에서 이 연대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거대한 폭풍 속에서 홀로 선 나무 한 그루는 쓰러질 것입니다. 그러나 숲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A single tree will come down in it. A forest will not.)
떡갈나무의 뿌리가 이웃 나무들과 얽혀 영양분을 교환하고, 강점에 강점을 더해 자생적인 생태계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And that's because beneath the forest floor the roots of an oak intertwine with those of its neighbors... adding strength to strength.)
캐나다의 이 행보는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영리하다. 미국 턱밑의 핵심 국가가 대서양 너머의 블록과 깊숙이 밀착함으로써, 패권국의 심기를 불편하고 거슬리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이 강압할수록 캐나다는 유럽이라는 거대한 대안(Plan B)으로 기운다는 구조적 신호, 바로 이 껄끄러움이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쓸 수 있는 막강한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 이런식으로 스스로 운신의 폭을 넓혀 가는 것이 외교다.
이것은 "우방국들과 사이좋게 지내자"는 낭만주의가 아니다. 반도체, 방산, 핵심 광물, 원자력이라는 카드를 쥔 중견국들이 EU, 캐나다, 일본, 호주 등과 촘촘히 엮일 때, 비로소 함부로 삼킬 수 없는 '구조적 교섭력(Bargaining Power)'이 탄생한다. 이것이 냉혹한 강대국 정치(Great Power Politics) 사이에서 살아남는 차가운 현실이자, 국가의 전략적 공간(Spielraum)을 창출하는 유일한 생존 공식이다.
기원전 416년, 아테네 제국의 함대 앞에서 멜로스(Melos)의 지도자들은 "우리는 정의로우니 신들이 도울 것이며, 동맹인 스파르타가 구원하러 올 것"이라는 맹목적인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아테네 사절단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기록된 가장 서늘한 경고를 남긴다.
"위험의 위안자인 희망은 풍부한 자원을 가진 자들에게는 손실을 입힐지언정 파멸을 부르지는 않는다.
Hope, danger's comforter, may be indulged in by those who have abundant resources...
그러나 생존이 걸린 상태에서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하는 약자들은,
완전히 파멸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희망의 진짜 민낯을 보게 된다."
but its nature is to be extravagant, and those who go so far as to put their all upon the venture see it in its true colors only when they are ruined.)
결국 동맹인 스파르타는 오지 않았고, 막연한 선의와 가짜 동맹이라는 '희망'을 연기했던 멜로스의 남성들은 처형당했으며 여성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려 나갔다. 강대국에게 희망은 약간의 비용을 치르는 사치품일 뿐이지만, 약소국이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무력과 이익)을 직시하지 않고 희망에 국가의 명운을 건다면 남는 것은 철저한 절멸뿐이다.
적국은 판을 흔들며 다자 공간으로 나서고, 동맹은 청구서를 들이미는데, 이 나라의 리더십은 적에게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평화"를 구걸하며 바보들의 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떠한 교섭의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 외교적 투명인간(Passing)으로 전락했다.
더 이상 남의 자비심에 목숨을 거는 거짓된 구호 뒤에 숨을 수 없다. 낡은 이데올로기의 연기를 멈추고 반도체, 방산, 원전의 카드를 쥐고 차갑고 영리한 다자적 숲을 엮어낼 진정한 '스테이츠먼(Statesman)'의 존재감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다. 국제정치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치열한 지적 투쟁이 시작되어야 할 때다.
<2026 EU의회 연설>
https://www.youtube.com/live/O3rQUpuxq6o?si=IlLRgfGCBGOPWYqK
<2026 다보스 연설>
https://youtu.be/sFBkNX1-cbg?si=HcbhMJ6LWX7gKpj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