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동아줄: 한번뿐인 삶의 희소성

byAltusSolum

◀ 인간을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대하는 슬롯

말과 행동의 바카라임조차 지지 않으면서 '대체 불가'라는 고결한 단어를 오웰식 화법으로 오염시키고 있다.

이 기만적인 매트릭스에서 살아남는 길은,

나만의 '희소성'을 구축하는 것뿐이다.

타인의 썩은 동아줄을 거부하고

기어이 내 삶의 주권자가 되어 스스로 밧줄을 만들어 자신을 구하자. ▶

ALTUS SOLUM 2026.9.13.(일)


□ 대체가능한 소모품의 삶

어제 우리는 절망에 빠진 청년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어차피 과정은 상관없고, 썩은 동아줄이라도 줄만 잘 서면 그만"이라는 지독한 냉소를 마주했다.


왜 우리는 현 기득권이 짜놓은 이 부조리한 판을 엎어버리는 대신, 비루하게 줄을 서는 길을 택하는 것일까? 이유는 평범한 개인들을 철저하게 '대체 가능한(Replaceable) 부품'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에 사람 귀한줄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 언제든 바카라상이 치워지는 4050의 구조 조정까지. 시스템이 나를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값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순간,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도는 권력자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뿐이다.









□ 오웰식 화법을 부수고 구출해 낸 단어: '대체 불가성'

최근 한 정치인이 '대체불가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웠다. 국가의 자정 작용을 붕괴시키고 평범한 시민들을 철저히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전락시킨 기득권 카르텔이, 정작 자신들의 낡은 권력을 포장하기 위해 '대체 불가'라는 고결한 단어를 훔쳐 쓴 것이다. 실재하는 야만을 은폐하기 위해 언어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경고했던 전형적인 '오웰식 화법(Orwellian Doublespeak)'의 극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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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불가능성'은 결코 그 화자의 가벼운 구호로 오염될 수 없는, 피 묻은 실존의 철학이 담긴 거대한 개념이다. 나치의 강제수용소라는 지옥에서 살아남은 실존주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 1905-1997l)은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 trotzdem Ja zum Leben sagen: Ein Psychologe erlebt das Konzentrationslager(1946), Man's Search for Meaning(1959)>를 통해 생존의 비밀을 통찰했다. 가스실로 끌려가는 수용소는 인간이 완벽하게 '대체 가능한 소모품(숫자)'으로 전락한 궁극의 매트릭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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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은 그 지옥에서 끝내 살아남은 자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나의 삶과 고통은 다른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없다는 '대체불가능성(Unersetzbarkeit, Irreplaceability)'의 자각"이었다.

그런데 정녕 자신이 하는 말의 무게를 한낱 실오라기보다 가볍게 만들고, 마땅히 치러야 할 죗값을 피하려 사법적 바카라임(재판)마저 회피하는 당사자가 감히 '대체 불가'를 입에 올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을 넘어선 언어의 타락이다.

인간은 자신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그 어떤 가혹한 환경에서도 기어이 살아낼 내면의 성채를 구축한다. 즉, '대체 불가능성'은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혹은 얄팍한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하는 행위가 아니다. 나를 부품 취급하는 폭력적인 시스템 앞에서,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마땅히 쥐어야 할 고유한 존엄을 선언하는 실존적 증명이다.

□ 지정학의 렌즈: '초크포인트'

그렇다면 프랭클의 이 철학적 '대체 불가능성'을 오늘날의 잔혹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무기로 전환해낼 수 있을까? 국제정치와 군사전략의 '초크포인트(Chokepoint, 전략적 병목)' 개념이 그 해답을 쥐고 있다.

초크포인트란 해상 무역이나 군사 이동에 있어 '이곳이 막히면 전체 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되는 좁은 길목'이다. 대표적으로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들 수 있다. 바다 전체를 호령하는 패권국 미국조차 이 치명적인 길목 앞에서는 숨을 죽이고 타협한다. 대만의 TSMC가 거대한 중국의 위협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는 이유 역시, 그들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완벽한 '초크포인트'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제국조차 숨통을 쥐고 있는 병목 앞에서는 함부로 칼을 빼 들지 못한다.

□ 희소성: 내가 꼬아 만든 동아줄

기득권이 만든 순응의 매트릭스는 우리에게 "남들보다 더 뛰어난 부품이 되라"며 끝없는 스펙 경쟁(양적 팽창)으로 가스라이팅한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시스템이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넓은 바다에 머무는 한 우리는 영원히 누군가의 뒤에 줄을 서야 한다.





세상이 척박할수록, 우리가 기어이 우리의 내면에 깊고 단단하게 일궈내야 할 토양(Altus Solum)에는 바로 나 스스로가 구조의 '초크포인트'가 되는 씨앗을 심어야 한다. 아무리 작고 좁은 영역일지라도 "나를 거치지 않으면 결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나만의 길목을 장악해야 한다. 대체 불가능한 고유의 기술이든, 압도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든 상관없다. 핵심은 크기가 아니라 상대의 숨통을 틀어쥘 수 있는 '희소성'이다.

내가 대체 불가능한 초크포인트가 되는 순간, 권력 관계는 완벽하게 역전된다. 썩은 동아줄을 잡으려 줄을 서기보다는, 그 동아줄을 구성하는 튼튼한 삼과 칡덩굴을 내 손으로 쥐고 아주 굵고 질기게 꼬아내는 고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가 나만의 동아줄을 직접 만드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의 지옥 속에서 이 숭고한 주권의식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Jeder Mensch hat seine eigene, spezifische Berufung oder Mission im Leben.

모든 인간에게는 삶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사명이 있다.

[...] Darin kann er nicht ersetzt werden, noch kann sein Leben wiederholt werden."

그 길 위에서 그는 결코 타인으로 대체될 수 없으며, 그의 삶 역시 두 번 다시 반복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Einmal ist Keinmal>을 떠올리게 된다. 척박한 현실을 맨몸으로 부딪쳐 내는 우리에게 단 한 번뿐인 삶(Einmal)은 결코 0으로 수렴하는 허무가 아니다. 연습도, 수정할 기회도 없기에, 이 단 한 번의 삶은 온전히 산화되어 니체의 영원회귀(Ewige Wiederkehr)처럼 '영원한 무거움'을 지니며, 그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절대적 '대체 불가능성(Unersetzbarkeit)'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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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허락받을 필요 없는 나의 삶이다. 기어이 이 야만의 시대를 돌파할 진정한 변혁의 힘은, 타인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내 스스로 각자의 방식으로 꼬아낸 '대체 불가능한 희소성'으로 시대의 숨통을 쥐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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