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불

byAltusSolum



****어제 표제로 삼았던 <별과 팁>에서 별은 하이네를, 팁은 헤겔의 말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헤겔의 성정과 학문적 무게로 보았을때 불경스러운듯하여 '불'로 변경합니다. ^^;;;




오늘 문뜩 어느 영화에서 들었던 "nobody knows anyone, not really"라는 대사가 생각났다.

그런데 사실 이 맥락에서 튀어 오른 두 사람이 있었는데.. 참 흥미롭다.


낭만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Heine,1797~1856)과 그의 스승이자 이성주의의 화신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1831)이다.

"Ich berühre hier überhaupt die komische Seite unserer Philosophen.

Sie klagen beständig über Nichtverstandenwerden."

나는 여기서 우리 철학자들의 우스꽝스러운 면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늘 자신이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Nichtverstandenwerden)'고 끊임없이 불평한다.


하이네는 'Nichtverstandenwerden(이해받지 못함)'이라는 명사로 당시 칸트, 피히테, 헤겔로 이어지는 학자들이 얼마나 자기들만의 언어의 성에 갇혀 징징대고 있었는지를 꼬집었다. 그리고 당대의 최고 지성이자 교수님이셨던 '헤겔의 임종' 농담을 투척한다.


"Als Hegel auf dem Todbette lag, sagte er: „nur einer hat mich verstanden“,

aber gleich darauf fügte er verdrießlich hinzu: „und der hat mich auch nicht verstanden.

헤겔이 임종의 침상에 누워 말하길, "오직 한 사람만이 나를 이해했다."

그러나 곧이어 짜증스럽게 덧붙였다. "그리고 그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 종교와 철학의 역사(Zur Geschichte der Religion und Philosophie in Deutschland), 1834>


19세기 독일 철학자들은 일상 언어와 철학 언어를 분리했었다. 그들은 세계를 구원하겠다며 절대정신, 변증법, 물자체(Ding an sich) 같은 거대한 개념을 만들어냈지만, 정작 평범한 사람들과는 단 한마디도 소통할 수 없는 기괴한 언어 구조를 완성했다. 물론 그들 나름의 심오한 체계를 세우기 위함이었겠지만, 낭만적인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였던 하이네의 눈에 이 현학적인 말장난은 그저 답답하고 우스꽝스러웠다. 하이네는 "자신이 쓴 글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대중이 몰라준다고 화를 내는 지식인의 위선"을 단숨에 희극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두 사람의 극단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가장 매력적인 일화는 하이네의 회고록 <고백록(Geständnisse, 1854)>에 등장한다. 하이네는 베를린 대학에서 (1821-1823) 철학계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리즈 시절의 헤겔강의를 직접 들은 제자였다.


어느 맑은 밤, 두 사람이 함께 창밖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격에 겨운 하이네가 "저 별들은 축복받은 영혼들이 머무는 곳(Aufenthalt der Seligen)이겠지요?"라고

묻자, 헤겔은 몹시 무미건조하게 콧방귀(Hum! Hum!)를 뀌며 대답했다.

"별? 저건 그냥 하늘에 돋아난 빛나는 발진(피부병)에 불과해.

(Die Sterne, hum! hum! die Sterne sind nur ein leuchtender Aussatz am Himmel.)"

너무나 기가 막힌 하이네가

"세상에, 그럼 저 위에는 죽은 뒤에 우리의 미덕을 보상해 줄 행복한 장소가 없단 말입니까?

(Um Gottes willen, es gibt also droben kein glückliches Lokal, um die Tugend nach dem Tode zu belohnen?)"라고 묻자, 헤겔은 창백한 얼굴로 하이네를 빤히 쳐다보며 퉁명스럽게(schnippisch)

이렇게 쏘아붙였다.

"그러니까 당신은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고

자기 형제를 독살하지 않은 대가로 '팁(Trinkgeld)'까지 받기를 원한단 말이오?

(Also Sie wollen noch ein Trinkgeld haben dafür,

daß Sie Ihre kranke Mutter gepflegt und Ihren Bruder nicht vergiftet haben?)"


겉보기엔 낭만의 싹을 짓밟는 피도 눈물도 없는 늙은 독설 같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이 대목에서만큼은 철저히 헤겔의 편이다.


가만히 곱씹어보면 그의 일침이 백번 옳기 때문이다.


당연히 해야 할 윤리적 의무(병든 어머니 간호)를 다하고,

당연히 저지르지 말아야 할 범죄(형제를 독살하지 않은것)를 저지르지 않은 것을 두고

신에게 사후 세계의 보상이라는 '팁'을 바라는것 바체가 뻔뻔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 당연한 것을 하며서 생색내지 말라는 것이다.


착하게 살면 사후세계에 천국이라는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헤겔의 눈에는 도덕을 빙자한 '거래'에 불과했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옳기 때문에 옳은 행동을 하는 것.

헤겔의 퉁명스러운 한마디는

역설적으로 인간 이성과 윤리의 가장 고결한 존엄성을 지켜내고 있었던 셈이다.


이 시점에서 헤겔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았으면 뭐라고 했을지가 정말 궁금하다.

마땅히 지켜야 할 공적 룰을 훼손하면서도

뻔뻔하게 대중의 박수(팁)를 요구하고

또 박수를 쳐주기도 하고

또 과실을 같이 따먹기도 하고

오늘날의 타락한 정치판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몹시 궁금하다.


우리는 흔히 철학을 대단히 거창하고 무거운 진리 탐구의 과정으로만 여긴다. 하지만 이 일화들이 보여주듯, 그 위대한 사상가들 역시 밤하늘 아래서 서로 콧방귀를 뀌고, 짜증을 내며, 시시콜콜한 농담과 조롱을 주고받던 평범한 인간들이었다. 누가 완벽히 옳고 그르냐를 따져 묻자는 것이 아니다. 시인 하이네가 자신의 감성으로 세상을 껴안았고 철학자 헤겔이 차가운 이성으로 세계의 뼈대를 세웠듯, 우리 역시 우리만의 방식으로 오늘을 살아가면 그만이다. 다만 철학을 저멀리 숨 막히는 상아탑에 갇힌 유물로만 대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냥 먼저 살다 간 지나간 사람들의 짙은 인간 냄새가 밴 지혜의 기록들을 가끔씩 들춰보면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오늘을 이해해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