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ce-que c’etait moi.
미장센이 돋보이는 영화를 또하나 골라보자면 단연 Call me by your Name이다.
그 영화에는 또하나의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있는데
티모시 샬라메(Timothée Chalamet)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아름답다고 느낀 점은 단순히 엘리오의 사랑이 아니라
엘리오의 성장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모습이다.
우선 이 부모님은 영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를 섞어 사용하며
서로 바카라을 읽어주고 함께 대화하는 말그대로 유럽의 지식인 가정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여름을 보내러 이탈리아로 온것을 봐도 그렇다.
고고학을 전공하는 아버지의 제자로 만난 올리버는 누가봐도 훤칠하고 건장하다.
엘리오는 역사와 음악, 작곡을 고루 섭렵한 매우 섬세한 소년이다.
아무튼 엘리오가 올리버와 이별하고 엄마에게 데릴러와줄수 있냐고 전화걸었을때
엄마는 단숨에 달려와서 아무말 없이 우는 아들을 그냥 가만히 바라봐주었다.
그리고 저녁에 자연스럽게 아빠 서재에 찾아온 아들에게 아빠는 다음장면 처럼 대해준다.
Nature has cunning ways of finding our weakest spot.
자연은 우리의 가장 약한 곳을 찾아내는 교묘한 방식을 지니고 있지.
Just… Remember I’m here.
그저... 내가 여기 있다는 것만 기억해줘.
Right now you maybe don’t wanna feel anything…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겠지...
Maybe you’ll never want to feel anything.
어쩌면 평생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
And… Maybe it’s not to me you wanna speak about these things but…
그리고... 이런 일들에 대해 털어놓고 싶은 상대가 내가 아닐 수도 있단다.
Hm… Feel something you obviously did.
하지만... 네가 분명 무언가를 느꼈다는 그 사실만은 잊지 마.
In my place, most parents would wish the whole thing go away…
내 입장이라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 모든 일들이 그저 지나가 버리기를 바랄 거다...
And pray their sons land on their feet. But… I am not such a parent.
그리고 아들이 그저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오기만을 기도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부모가 아니란다.
We rip out so much of ourselves to be cured of things faster that we go bankrupt by the age of thirty and
우리는 상처로부터 더 빨리 치유되기 위해 스스로를 너무 많이 뜯어내 버린단다.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그래서정서적으로 파산해 버리고,
have less to offer each time we start with someone new.
새로운 사람과 시작할 때마다 내어줄 것이 점점 줄어들게 되지.
But to make yourself feel nothing so as not to feel anything — what a waste!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은—얼마나 엄청난 낭비야!
Have I spoken too much?”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했나?”
How you live your life is your business,
네가 네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온전히 너의 몫이야.
just remember, our hearts and our bodies are given to us only once.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우리의 마음과 몸은 오직 단 한 번만 주어지는 것이란다.
And before you know it, your heart is worn out,
그리고 너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은 닳아 없어지고,
and, as for your body, there comes a point when no one looks at it, much less wants to come near it.
몸에 관해서라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하물며 곁에 다가오고 싶어 하지도 않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지.
Right now, there’s sorrow, pain.
지금 네 안에는 슬픔과 고통이 있을 거다.
Don’t kill it and with it the joy you’ve felt.”
그것들을 억지로 죽이지는 마, 네가 느꼈던 그 기쁨까지 함께 죽여버리지는 마.
그냥 있는 그대로 보다듬어준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만 기억해.“
어쩌면 부모의 역할은 딱 여기 까지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아니라 친구, 가족, 지인 어떤 형태로라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다면
태어난 이유는 분명 달성한거다.
엘리오가 힘들때 우선 엄마와 아빠를 찾았다는것 자체로도
이 부모는 충분히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스스로 뿌듯해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가 가장 힘든 순간에 나를 찾는다면, 그 인생 제대로 살고 있는거다.
그때 내가 아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우선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딱 적당한 그 거리에 우선 존재하고 있다는것만으로도
아이는 감사하고 행복할꺼다. (당장은 모를수도 있지만..)
이런 사람이 되어야, 나도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https://youtu.be/oezaX9AeZko?si=vCcqFZh__WjIw2S_
참고로 아빠가 한 대사중에, **Parce-que c’etait lui, Parce-que c’etait moi.(그가 그였기에, 내가 나였기에)는 우리가 ‘에세이’써야해 할때 그 에세이라는 단어를 만든,
프랑스의 르네상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가 자신의 대표작 <에세(Essais)>에서 요절한 절친한 친구 에티엔 드 라 보에시와의 우정을 회고하며 남긴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