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로드>, 다큐영화 <담요를 입은 사람>이 말하는 두려움과 지혜
‘오이’를 쥔 원숭이가 분노했다.
동료 원숭이가 자신과 똑같이 돌을 건네고도 더 좋은 보상인 ‘포도’를 받는 것을 보고, 자신이 받은 ‘오이’를 내던지며 격렬하게 화를 내며 실험을 거부했다.
프란스 드바르 교수와 사라 브로스넌 박사가 이끈 이 유명한 '오이와 포도' 실험은 영장류가 집단 내의 불평등을 본능적으로 몹시 싫어하는 '불평등 혐오'를 지녔음을 증명한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자본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뉘어 버렸다. 자본(금융, 정보, 지식 등)을 거머쥔 사람에게만 세상의 모든 선택권이 주어진다.
이러한 고도로 시스템화된 ‘불평등’을 오늘날 일부 경제학자나 정치인들은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정당화하지만, 이는 원숭이조차 분노하며 단호히 거부하는 영장류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원을 공평하게 나누며 공동체 모두가 무언가를 얻게 하는 '협동의 전통'을 바탕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불평등과 부당한 대우를 향해서 분노하는 원숭이를 보면서 인간인, 우리는 어쩌면 참 많은 것을 잃은 채 살아간다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런 서글픔은 어느새 돈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뀐다.
돈이 없어진다면,
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만일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게 된다면 무슨 일이 생겨나게 될까?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 박정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담요를 입은 사람>은 그런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돈과 사람들이 사라졌을 때" 생겨나는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다루는 삶의 지혜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박정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담요를 입은 사람>은 돈이 사라진 세상에 무방비로 몸을 던진 경험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반기와 인간 내면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여정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0원으로 한 달을 살기, 스킵다이빙(쓰레기통에서 버려진 음식물 찾기), 히치하이킹(티르키에, 이란, 인도)하는 과정을 생생히 영상에 담았다.
https://youtu.be/m2 kXpBAozv0? si=qePdiHR2 IlzWramz
돈이란 불확실한 미래를 통제하고 불안을 덮어두기 위한 방어막이다.
하지만 돈이라는 보호막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세상에 몸을 던졌을 때, 그녀는 굳이 억지로 계획하지 않아도 필요한 만큼 채워지는 우주의 호의를 경험한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 역시 실체가 아님을 깨닫는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이 대단하다는 '자만심'에서 비롯되었으며, 타인에게 해를 입을 것이라는 공포는 단 한 명의 악인으로 인한 과거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결국 가장 본질적인 두려움은 현실이 아닌, '예전에 당했으니까' 혹은 '또 당하면 어쩌지'라는 과거와 미래의 망상이 만들어낸 마음속의 환상일 뿐임을 명상을 통해 절실히 깨닫게 된다.
감독은 이 마음속 환상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실질적인 삶의 지혜를 발휘한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지금 내 눈앞에 두려워하는 것이 있는가?", "그 일이 일어났다고 치더라도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이 단순한 질문은 미래의 공포를 현재로 끌어와 스위치를 끄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된다.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한 감독은 이를 넘어서기 위해 '사람을 향한 믿음'을 선택한다.
이는 단순하고 순진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낯선 길 위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연을 일단 믿어보기로 한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인간에게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있음도 명확히 인정하지만, 그 깊은 본질에는 결국 자비와 연민, 사랑과 선함이 자리 잡고 있음을 굳건히 신뢰한 것이다.
위험을 부각하며 각자도생을 부추기는 현대 슬롯에서, 그녀는 의심을 조금 거두고 선의의 여지를 남겨둘 때 비로소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서로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해 낸다.
이러한 삶의 지혜는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가 그려내는 절망적인 잿더미의 세계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지독스레 사람들과 세상과는 거리를 두며 외딴 창고에 기거하던 괴짜 작가 코맥 매카시는, 우연히 창밖의 풍경을 보다가 세상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불타고 사라진 세상과 그 이후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 소설을 썼다.
소설 속에서 가장 두려움의 대상은 타인, 즉 사람이다.
약탈, 살인이 난무하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타인을 철저히 경계하며 방어벽을 세운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굶주림과 약탈이 일상인 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우리 마음속에는 타인에 대한 연민이자 인간 본성 깊은 곳의 선함인 '불'을 간직하고 있다고 가르친다.
이 불을 운반하는 행위 자체가 생명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소년은 다 죽어가는 노인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고 수레를 훔친 도둑을 용서하며 아버지가 쌓은 그 의심의 벽을 허물어낸다.
결말부에서 홀로 남은 소년이 아버지의 생존 법칙이었던 '의심' 대신 낯선 남자의 '선의'를 믿고 따라가는 궁극적인 선택은, 두려움을 넘어 기꺼이 서로 연결되기를 선택하는 인류의 희망을 완벽하게 대변한다.
두 작품을 관통하는 묵직한 메시지는 고도의 경쟁 슬롯에서 쉴 틈 없이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삶의 지혜를 건넨다.
먼저 막연한 두려움을 덮기 위해 현재의 행복과 건강을 지나치게 희생하고 있다면, 돈과 불안의 노예에서 벗어나 조금은 강박에서 힘을 빼도 괜찮다.
또한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마음속 '최악의 시나리오' 스위치를 끄고,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완벽한 타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와 방어벽을 아주 조금만 낮추어 작은 호의를 베풀어 보자.
잔뜩 움츠린 채 방어기제로 똘똘 뭉친 우리에게, 어깨에 힘을 조금 빼고 먼저 무장 해제할 때 비로소 이 팍팍한 일상에서도 서로 기대어 쉴 수 있는 틈이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