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말라버린 강바닥 위, 아스팔트에 새기는 몸글

헛된 사치품이 타버린 자리, 맨 몸으로 건너는 가장 정직한 구원.

by몸글 작가 고결

4부 갈라진 담벼락에도 꽃은 핀다.



단순한 삶이란 이런 걸까.


자고 나면 택배를 하고, 일이 끝나면 쓰러지듯 잠자리에 든다. 폭설의 여파와 김장철까지 겹쳐서 폭증한 택배물량을 처리하느라 11월부터 힘들었다.


설상가상 요즘은 오후 다섯 시만 넘으면 하루 해가 일찍 저문다. 캄캄한 야간에 배송을 하지 않으려 몸을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일이 끝나는 순간까지 택배 이외는 아무것도 생각을 할 수 없다.


'섭생'. 도덕경에서 자신의 생을 억누르면 생이 오히려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의미의 글귀이다.


대추나무에 열매를 더 많이 열리게 하기 위해서 염소를 매어두거나 나무를 더 자주 두들겨준다고 한다. 대추나무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종족번식을 시키려 더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이처럼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몰입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얻기도 하지만, 그 대가로 시련 같은 힘겨움과 통증이라는 삶의 회초리 앞에 내 삶을, 내 몸뚱이를 기꺼이 내놓아야 하는 일이다.


흡사 대추나무의 일생과도 같다. 하지만, 한가할 때면 머리와 가슴으로 늘 스며들던 이런저런 우울하고, 불안한 상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노동이 주는 단순한 몰입이 안겨준 평온함과 고단함은 육체를 움직여서 일하는 기쁨이자 슬픔의 결실이 되었다.


자신의 생을 억누를수록 오히려 더 아름다워진다는 의미란 이런 걸까. 알 수 없는 묘한 생기가 새벽녘 거친 굉음을 토해내는 택배센터의 레일 곁에 설 때면 설레며 흐른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른 새벽, 늦은 밤 택배센터에 들어설 때면 활력이 느껴졌다. 거친 굉음을 토해내며 상품들이 흘러가는 레일 곁에 가만히 서있거나 일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마음이 푸근해지곤 한다.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가 떠돌이 짐꾼으로 일하던 부둣가 노동현장에서 '고향 같은 편안함'을 느꼈듯, 새벽 택배 센터의 굉음 속에서 나는 이방인의 외로움을 벗고 깊은 연대감과 생기를 얻는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땀 흘리며 맺는 연대감, 그리고 레일 곁에서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하는 동료들과의 무언의 동지애. 그것이 나를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닌, 내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서게 하는 안도감을 주는 것은 아닐까.


그동안 궁금했던 맨몸으로 택배 하는 의미, 몸으로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나가는 것이란 호퍼가 말한 <고향 같은 편안함>, 이 말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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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일상의 떨림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 순간의 평온함을 글로 표현합니다. 고요한 바람결처럼 '고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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