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시큼한 혐오, 검은 비닐봉지가 품은 삶의 온기

공감이 증발한 여름날, 가장 투박하고 눈부신 위로에 대하여.

by몸글 작가 고결

4부 갈라진 담벼락에도 꽃은 핀다.



배송을 하기 전 받은 상품의 외형을 꼼꼼히 점검한다. 특히 김치같이 국물이 흐르는 경우 다른 상품도 훼손시킬 수가 있어 더 많이 신경을 쓰게 된다.


하지만 수백 개의 상품들 안까지 내용물이 훼손되었는지 일일이 파악할 도리는 없다.


힘겹게 배송한 김치가 든 아이스박스가 안에서 터져버렸나 보다. 수화기 너머로 30대 여성고객의 서늘한 적개감이 서린 항의가 이어진다.


낭패감에 휩싸인 채 서둘러 공손히 사과를 전하고, 상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돌아오는 건 더 높아진 목소리 뿐이었다.


김치를 보낸 친정엄마가 포장을 잘못했을 리 없다며 차갑게 몰아세운다.


정당한 반품이나 보상 요구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곤란한 처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인 보상과 페널티 신고를 운운하며 앙칼진 협박을 퍼붓는 그녀의 목소리 뒤로 어린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의 다정한 딸이자, 엄마일 그녀가 보이지 않는 택배기사에게 이토록 잔인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편의성과 효율만을 맹신하는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그녀는 나를 '온기를 지닌 인간'이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부리는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타자화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단한 자리에 서서 그 삶을 가만히 가늠해 보는 상상력을 멈추는 순간,


일상의 평범하고 선량한 이웃조차 얼마나 서늘한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는지.


한나 아렌트는 악이란 타고난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판단하는 사유를 멈출 때 언제든 피어오를 수 있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악을 예방하는 힘은 뛰어난 지성이나 도덕적 학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일어나는 일들을 성찰하는 일상적인 습관에서 온다고 했다.


잠시 후, 통화가 끊긴 수화기로 불친절한 택배기사로 신고하겠다는 장문의 문자가 날아왔다.


늘 친절한 택배기사가 되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결과는 늘 보상은 보상대로 해주고 마음의 상처는 상처대로 받는 억울한 상황의 되풀이에 절로 입술을 지긋히 깨물게 된다.


문득 택배 현장에 난무하는 동료들의 거친 욕설들이 떠올랐다.


택배 초기에는 레일 곁 여기저기에서 'X새끼', '씨발' 하며 찰진 상소리를 내뱉는 모습에 차마 아내를 택배 현장에 세울 수조차 없었다.


욕설은 상스럽다. 하지만 택배를 오래 하면 할수록 인격 모독과 진상짓들을 겪으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택배 현장의 거친 욕설은 도덕적 타락도, 상스러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불합리한 상황 앞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약자가 자신의 감정을 본능적으로 표현하는 지극히 감정적인 언어였다.


불평등하고 척박한 현실을 견뎌내기 위해 슬롯적 약자들이 발명해 낸 가장 본능적인 진통제였다.


고통의 순간 터져 나오는 욕설이 실제로 통증을 잊게 해 준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연구 결과처럼,


그것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고자 토해내는 솔직한 생존의 신음이자 세상을 향한 방어막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선과 악은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붙어 있었고, 한 끗 차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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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일상의 떨림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 순간의 평온함을 글로 표현합니다. 고요한 바람결처럼 '고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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