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끈끈한 연대 속에 힘겨운 택배가 빛나는 <생업>이 되다
"오후 3시 30분이야."
"정말?"
탑차의 뒷문을 닫는 둔탁하고 경쾌한 소리가 오후의 골목을 울렸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하루의 활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인 이른 시간이다.
과거의 이 시간이었다면 택배차 짐칸에 하나 가득 쌓인 택배상자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서둘러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가파른 빌라 계단을 오르내리며 육체적 한계 속에서 배송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끝없는 시간의 압박감과 남겨진 물량에 쫓기며 긴 침묵 속에 미궁을 헤엄치듯 배송지를 맴돌던 그 순간에는, 해가 떠 있는 시간에 퇴근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치였다.
하지만 아들이 중고 차량을 마련해 택배 현장에 뛰어들고 우리의 배송 구역을 나누어 짊어지기 시작하면서,
늦은 밤까지 쳇바퀴처럼 이어지던 우리 가족의 일상에는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수입이 극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밤늦게까지 헉헉대며 이어지던 배송 마감 시간은 오후 3~4시 무렵으로 훌쩍 앞당겨졌다.
무거운 하중을 서로 나누어진 그 자리에는, 눈부신 오후의 햇살과 함께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와 '여유'가 그렇게 찾아왔다.
미국의 경제학과 교수 마이클 예이츠는 32년간의 안정된 강단 생활에서 은퇴한 뒤, 5년간 직접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어 부조리한 현실을 체험했다.
그는 근대의 작업장이 노동자들이 꼼짝없이 집중해서 자신의 시간을 회사에 바치게 만들며, 그로 인해 육체와 정신이 쇠약해져 가는 과정을 예리하게 고발했다.
“근대의 작업장은 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일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자신의 시간을 회사에 제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자유가 없고 통제받는 근무시간이 너무 길었다.”
“날이 저물면 나는 자유로웠지만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7시 무렵의 이른 저녁부터 잠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가르치는 일은 많은 불안을 느끼게 만들었지만 현재의 일은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쇠약하게 만들었다. 이런 일은 32년 동안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자력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궁금해한다. 그들도 깨끗한 물과 공기를 마시고 품위 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면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통찰처럼, 현대의 금융 자본주의 게임은 돈이 돈을 부르는 구조 속에서 자본을 움켜쥔 소수의 계층에게만 유리한 룰로 견고하게 돌아간다.
이 거대하고 폭력적인 자본의 전쟁터 안에서, 나는 어쩌면 아내의 냉정한 지적대로 완벽한 '실패자'이자 '루저'가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실패를 기꺼이 끌어안기로 했다.
번듯한 중앙지 기자 생활을 미련 없이 버리고 지리산 자락에서 은하수를 쫓아다니며 스스로를 루저라고 인정하던 어느 한 시인이 마침내 온전한 내면의 평온을 얻었듯 말이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과 평온은 억지로 규모를 키우려는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철저하게 주관적인 행복관에 좌우됨을 나 역시 이 척박한 아스팔트 위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에 쫓겨 맹목적으로 몸을 갈아 넣던 '직업(Job)'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택배도 비로소 정직한 '생업(生業)'의 얼굴로 우리 가족에게 다가왔다.
세상에는 노력한 만큼 대가가 따르는 정직한 일이 드물지만, 택배는 지켜지지 않는 월급날이나 다가오는 정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육체의 수고로움만큼 정확한 보상이 돌아오는 지극히 정직한 일이다.
일본의 작가 이토 히로시는 <생업>을 가리켜 "돈 때문에 내 시간과 건강을 해치지 않으면서, 하면 할수록 머리와 몸이 단련되고 삶과 일이 잘 조화된 상태"라고 정의했다.
그 말처럼 우리는 무조건 돈을 많이 벌겠다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아들은 따로 구역을 받지 않고 우리 구역을 함께 배송하기로 결정했다. 염려는 되었지만 당장의 수입보다 가족의 건강과 여유를 우선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돈은 삶의 맹목적인 목적이 아니라, 소박한 일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소중한 수단으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우리가 구축한 이 작은 가족 연대의 시스템은 단순히 노동력을 합친 것을 넘어, 잃어버렸던 시간의 주도권을 되찾는 위대한 구원의 여정이었다.
오후 4시의 고요한 안식.
택배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서재에 앉아 바카라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사유의 글을 쓴다.
육체적 고단함을 덜어낸 아내는 거실에서 홀가분한 표정으로 드라마를 시청하고, 방에서는 막내아들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보잘것없는 풍경일지 몰라도, 이 평범한 일상의 조각들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온몸을 바쳐 지켜내고 싶은 행복의 실체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브리콜라주(Bricolage)'라는 개념이 있다.
버려지거나 안 쓰는 한정된 자원들을 이리저리 조합하여 전혀 새로운 쓸모를 가진 도구로 창조해 내는 기술을 뜻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이 걷고 있는 이 길도 삶의 위대한 브리콜라주다.
척박한 육체노동의 환경과 각자의 불완전한 자원들을 하나로 모아, 세상이 강요하는 궤도에 얽매이지 않는 가장 주체적이고 새로운 생활 방식을 개척해 낸 거라는 생각도 든다.
며칠 전, 스물일곱이 된 아들의 생일을 맞아 온 가족이 고깃집에 둘러앉았다.
일주일에 5일, 땀 흘려 일하는 청년 사업가이자 음악을 놓지 않는 아들은 최근 AI를 활용한 음악 유튜브 크리에이터로서의 길도 모색하며 주체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다져가고 있다.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자르면서 듬직한 아들을 향해, 나는 그동안 품어온 진심을 건넸다.
"엄마 아빠가 너에게 바라는 건 하나뿐이다. 앞으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오직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나의 당부에 아들은 묵묵했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휴일 배송과 낮아지는 운임 등 택배 현장에는 여전히 암울한 전망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든든한 동료들과 끈끈한 생업의 시스템을 갖추었기에, 다가올 비바람 앞에서도 우리는 결코 떨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자본주의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아들이 자신만의 눈부신 지느러미를 힘껏 휘저으며 원하는 곳을 향해 마음껏 유영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찬란한 유영을 지켜보며, 나 역시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는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허울뿐인 월 천만 원의 매출표보다 훨씬 값지고 소중한, 우리 가족만의 아름다운 '생업'이 그렇게 영글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