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신도림ㅡ신도림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면접실을 나온 건 30분쯤 후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소희는 멍하니 서 있었다.
잘 한 건지 망친 건지 솔직히 몰랐다.
그냥 보이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간질거렸다.
소희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는, 나중에 어디서 무얼 하고 싶은 거지?’
막연하게 '취업은 4학년 때 생각하면 되지'라며 미뤄두었던 미래가,
아영의 치열했던 흔적들을 거치며 갑자기 코앞으로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아영이 밤새워서 채워 넣은 포트폴리오의 무게.
나는 아직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지금부터라도 나만의 무언가를 조금씩 쌓아가야 하는 걸까.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소희는 에코백을 고쳐 메며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1층 로비를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띠띠띠—
에코백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 아영의 스마트폰이었다.
ㅡ[알바 출근 알림] 오후 5시. CU 잠실점.
ㅡ[면접 준비 리마인더] 내일 오전 10시, ○○기획 서류 마감.
소희는 멈춰 서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면접이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알바, 그리고 그 끝에 다시 시작될 다음 날의 준비.
이 사람, 하루에 얼마나 많은 것을 혼자 견뎌내고 있는 거야.
강진우 과장이 매일 아침 짓눌리는 출근길을 버텨내는 사람이었다면,
아영은 매일 밤 불을 밝히며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어내던 사람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소희는 건물을 나서며 잠실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체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원래의 몸으로 귀환합니다.]
2호선 신도림역 방향.
퇴근 시간대의 지하철은 여전히 숨이 막힐 듯 빽빽했다.
소희는 손잡이 봉을 붙잡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영의 붉어진 눈밑, 그 밤샘의 온도가 아직 손끝과 시야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합격할까...?
모르겠다. 내가 던진 몇 마디 말이 아영의 삶에 어떤 파문을 일으켰을지.
좋은 쪽이든, 아니면 조금은 당황스러운 쪽이든.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아영이 밤새 공들여 쌓아 올린 세계를, 소희가 조금 더 솔직한 눈으로 바라봐 준 것뿐이었다.
그 진심이 닿았기를. 소희는 작게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문득, 옆에서 손잡이를 붙잡고 선 누군가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캐주얼한 재킷에 빵빵해진 에코백.
삐져나온 서류 파일 틈으로 피곤이 묻어나는 얼굴.
방금까지 면접이라도 치르고 온 듯, 어깨가 묘하게 처져 있었다.
옛날의 소희라면 스쳐 지나갔을 풍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저 사람이 짊어진 하루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소희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조용히 그 사람의 어깨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정한 응원을 건넸다.
저 사람의 하루도, 아영의 하루도, 그리고 내일부터 시작될 나의 하루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눈부시게 버텨내고 있는 중이라고.
전동차가 부드러운 속도로 신도림역 플랫폼에 미끄러져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물결이 밀려 나갈 때
소희는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단단한 온기를 느끼며 스크린도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남의 삶을 빌려 잠시 살다 온 자리였지만.
이제는 나만의 발자국을 조금씩 찍어 나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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