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역은 구직ㅡ구직중입니다.
눈이 떠졌을 때, 첫 번째로 느낀 건 어깨였다.
너무나도 무거웠다.
강진우의 서류 가방과는 다른 종류의 무게였다.
에코백 안에 뭐가 이렇게 많이 들어 있는 거야.
노트북, 포트폴리오 출력본, 여분 파일, 립밤, 거울, 진통제, 텀블러.. 등..
이 사람 짐을 보니 하루가 싹 다 보이네.
소희는 강진우 때처럼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잠실역 4번 출구.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서울 특유의 빌딩 바람이 얼굴을 쳤다.
아영의 손이 본능적으로 셔츠 깃을 여몄다.
건물 유리벽에 비치는 아영의 얼굴을 잠깐 봤다.
깔끔한 슬랙스, 반듯하게 다린 흰 셔츠. 머리는 단정하게 정리돼 있었다.
어딘가 구김 없어 보이는 차림새인데, 눈 밑은 달랐다.
어젯밤을 고스란히 담은 눈이었다.
이 사람, 그동안 엄청 준비했구나...
도보 8분. 아영의 발이 익숙한 듯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희는 그냥 몸에 맡겼다.
회사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통유리 외벽에 브랜드 로고가 작게 새겨진 3층짜리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소희의 눈이 조용히 바빠졌다.
오, 여기 분위기 진짜...
벽엔 캠페인 시안들이 걸려 있었다.
직원들 복장은 자유로웠고, 바카라상마다 식물이 하나씩 있었다.
천장이 높고, 자연광이 넓게 들어왔다. 어딘가 잡지 화보 같은 공간이었다.
’ 우와아ㅡ, 재밌겠다, 여기...!’
소희는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아.. 맞다... 나 지금 면접 보러 온 거잖아...'
대기실 ㅡ
면접 대기실은 작은 회의실이었다.
소희가 들어섰을 때, 이미 네 명이 앉아 있었다.
소희는 슬쩍 훑었다.
다들... 정말 아영이보다 어렸다.
스물셋, 넷? 그 정도? 포트폴리오 파일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조용히 내용을 외우는 사람, 에어팟 끼고 눈을 감은 사람, 스마트폰으로 회사 인스타그램을 다시 보는 사람.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지막 5분을 쓰고 있었다.
아영의 몸이 느꼈다. 소희도 느껴졌다. 이 공기를...
경쟁자인데 적대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편하지도 않은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어주는.
이상하게 뭉클한 연대감 같은 게 있는 공간.
이 사람들도 다 밤새웠겠지...?
소희는 포트폴리오 파일을 꺼내 펼쳤다.
아영이 밤새 만든 것들이었다. 소희는 천천히 넘겨봤다.
솔직히 말하면, 잘 만든 건지 아닌지 소희는 몰랐다.
소희는, 마케팅이 뭔지도 사실 잘 모르니까.
근데 보다 보니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이 카드뉴스, 색깔이 되게 예쁜데...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설명하면 더 재밌겠다.
이 캠페인 기획서, 숫자 데이터보다 이 뒷부분 스토리가 더 와닿는데...
소희는 포트폴리오를 덮으며 생각했다.
뭐, 그냥 보이는 대로 말하면 되지.
"서아영 씨, 들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