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신도림 ㅡ신도림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점심 이후가 문제였다.
국밥을 먹으면서 유진아 대리에게
"과장님 오늘 진짜 용감하셨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소희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나 생각보다 잘하는데? 20대 감각이 통하잖아?
오후에 자리로 돌아온 소희는 잠깐 강진우의 서랍을 열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은 기분.
그런데,
서랍 맨 안쪽, 반쪽으로 접힌 채 살짝 구겨진 종이 한 장이 보였다.
사직서였다.
작성 날짜는 석 달 전. 마지막 서명란은 비어 있었다.
소희는 멍하니 그 종이를 바라봤다.
'석 달 동안 서랍 안에 넣어두고, 꺼내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 있었다는 거잖아. 이 사람.. 이곳을 나가고 싶었던 거구나.'
그 순간, 소희의 머릿속에 불현듯 생각이 스쳤다.
내가 오늘 서명해 버리면 어때?
아침에 회의실에서도 됐잖아.
20대 패기로 한마디 던졌더니 이사가 오히려 좋아했잖아.
이 사람 분명히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가고 있는 거잖아.
내가 그냥 결정해 버리면, 이 사람 오히려 후련하지 않을까?
손이 펜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이내 멈췄다.
'아.. 아니다.'
소희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아까 회의실에서 한마디 던진 거랑 이건 달랐다.
아까는 기획안이었다. 수정하면 그만 이지만,
근데 이건, 이 사람의 커리어고, 생활이고, 지금까지 힘들게 일하며 쌓아온 5년이었다.
내가 절대 섣불리 해서 는 안 되는.. 무언가..
석 달 동안 서명을 못 한 이유가 뭔지 소희는 몰랐다.
두려워서인지, 타이밍인지, 아니면 아직 마음이 결정이 안 된 건지.
그 이유를 소희는 단 하루 만에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뭔데. 잠깐 빌린 몸으로 이 사람 인생을 결정해.'
소희는 사직서를 다시 접어 서랍 안쪽에 조용히 넣어뒀다. 아까와 정확히 같은 자리에.
[스트레스 지수: 73%]
숫자가 조금 내려가 있었다. 강진우의 몸이 안도한 건지, 소희의 마음이 가벼워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오후의 퇴근길...
다시, 2호선 지하철.
[오늘의 체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원래의 몸으로 귀환합니다.]
눈을 깜빡인 순간, 사무실의 형광등 대신 익숙한 지하철의 노란 조명이 눈을 채웠다.
소희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굳은살도, 굵은 핏줄도 없는 말랑한 스물두 살의 손이었다.
코트가 아니라 얇은 점퍼와 익숙한 음악이 흐르는 에어팟.
내 몸으로.. 돌아왔다.
지하철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역 이름을 확인했다.
신도림역 방향, 퇴근길 2호선이었다.
시각은 저녁 7시가 넘어 있었다.
소희는 봉을 붙잡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아침에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Y]를 눌렀던 자신이 기억났다.
그때만 해도 가볍고 설렜다.
온라인 게임인들의 하루를 훔쳐보는 모험 같은 기분. 근데 지금은 달랐다.
온종일 강진우의 몸으로 버텨낸 탓인지, 멀쩡히 자기 몸인데도 어깨가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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