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년의 비명(悲鳴)
완벽하게 통제된 항온 항습기의 미세한 백색 소음만이 감도는 전시관 내부.
유리 진열장 너머로 은은한 특수 조명을 받고 있는 낡은 태극기는, 단순한 천 조각이라기보다 길고 잔인했던 세월의 채찍질을 맨몸으로 견뎌낸 어떤 거대한 짐승의 허물처럼 보였다.
영덕군에서 새로 개관한 3.1 의거 기념 전시관의 VIP 사전 열람실. 평온이 지배하는 107년 뒤의 이 완벽한 시대에서, 진우는 관계자의 정중한 안내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방진 장갑을 낀 손을 뻗었다. 가문의 종손(宗孫)으로서, 증조부 정규하 지사가 남긴 마지막 유품을 국가에 기증하는 자리였다.
빛바랜 광목천 위에는 붉고 푸른 안료로 투박하게, 그러나 뼈를 깎아내듯 꾹꾹 눌러 그린 태극 문양과 건곤감리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거친 섬유질의 모서리 한구석, 오랜 세월 공기 중에 노출되어 산화된 끝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거대한 핏자국이 흉터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역사바카라의 건조한 활자나 매끄러운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 따위로 결코 느낄 수 없는, 1세기가 넘는 아득한 과거의 어느 날 누군가가 쏟아낸 날것의 생명이자 지독하게 짙은 죽음의 흔적이었다.
"증조할아버님께서 거사 전날, 밤을 새워 직접 그리신 거라 들었습니다."
진우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그 검붉은 핏자국 위로 천천히 손끝을 갖다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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