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잠결에 ‘후둑 후둑’ 비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이내 ‘두두두둑’ 굵은 비로 바뀌었다. 깊은 잠으로 들어가며 ‘내일은 아침 산바카라을 쉬어야 하나.’ 생각했다.
뿌연 아침 하늘을 내다보다가 일찍 산바카라을 나섰다.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트레이닝복에 야구모자를 쓰고 지난번 사둔 하얀 우비를 걸쳤다. 장화를 신고 우산 없이 걸으니 가풋하게 흔드는 양손으로 빗방울이 스친다.
축축한 아침공기는 서늘하지만 우비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는 어린 시절 할머니집 마당을 소환하며 안부를 묻는다. 정겹고 그립다. 아무도 없는 공원을 걸으며 비를 맞고 선 벚나무들의 불긋해지는 잎사귀들을 찍어댔다. 참으로 고요한 아침이다.
사무실에 들렀다. 화단에서 비를 맞고 있는 장미 가지들을 흔들어 비를 털어주고, 꽃송이가 너무 많이 매달려 늘어진 가지들을 받쳐주었다. 노란 장미는 꽃송이를 받쳐주려 했더니 젖은 화단으로 꽃잎들을 우수수 떨군다. 어제까지 그리도 화려하더니 이제 돌아가려나 보다.
집으로 향하는 시간, 빗속에서 세상이 활기를 띤다. 차량들은 물을 튀기며 도로 위를 빠르게 질주하고, 우산을 든 온라인 게임인들은 시계나 스마트폰을 보며 걸음을 재촉한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걸음도 바쁘다. 거리에는 사계절의 옷이 다 나와 있다.
빗방울이 갑자기 굵어졌다. 모두의 걸음이 빨라진다. 네 방향으로 건너는 횡단보도 앞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작은 꼬마 둘이 서 있다. 신호등은 빨간 불이다. 초록 불을 기다리는 동안 투명우산을 쓴 두 꼬맹이도 마음이 급한지 오른쪽 왼쪽으로 왔다 갔다 귀여운 보폭을 옮기며 애를 태우고 있다.
꼬마들을 지나쳐 아주머니 두 분이 뛰어서 무단횡단을 한다. 두 꼬마는 아주머니들을 멀뚱멀뚱 보다가 다시 빨간 불을 확인하고는 왔다 갔다 초록불을 기다린다. 나도 무단횡단을 하고 싶다. 하지만 꼬맹이들 뒤에 줄을 선다.
‘타다다닥’ 뜀박질 소리에 뒤돌아보니 고등학교 남학생이 뛰어온다. 뛰는 기세로 보아 무단횡단을 할 것 같다. 남학생은 나란히 서있는 두 꼬마를 흘깃 보더니 멈칫 멈춰 섰다. 시간이 촉박한 듯 ‘타박타박’ 제자리걸음을 하면서도 꼬마들 옆에서 초록불을 기다린다. 어른들이 와섰다. 아무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다.
드디어 초록불로 바뀌었다. 두 꼬마가 ‘참방’하며 발을 내딛는다. 남학생이 빠르게 뛰어나간다. 어른들도 성큼 걸음을 옮긴다. 꼬마들을 뒤로하고 모두가 바삐 걷는다. 투명우산을 쓴 두 꼬마가 ‘차박 차박’ 학교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