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때문에
엄마를 만나러 간 날은 날씨가 좋았다. 단정하게 정리된 공원묘지 위로 퍼지는 포근한 햇살 때문에 소풍길 같았다. 이번에는 우리 부부만 갔다. 매해 다녀올 때마다 사진을 찍어놔도, 가파르게 경사진 산을 깎아 계단식으로 정비한 공원묘지에서 우리는 번번이 다른 골짜기로 들어섰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산아래 쪽 관리실 인근에 주차를 해놓고 거꾸로 산을 오르기로 했다. 숨이 가쁘고 다리가 휘청일 만큼 경사지다.
남편이 한 손에는 제수가 든 바구니와 삽, 다른 손에는 엄마 묘소 앞에 심어드릴 나무 화분을 들고 저만치 앞서 오른다. 나는 돗자리만 들었는데도 헉헉거리며 겨우 올라갔다. 물골이 난 골짜기에서 아름드리나무를 기준으로 삼아 우측 방향의 가파른 언덕으로 올라갔다가 두 개 층의 묘지 단을 내려오면 엄마가 있다. 몇 해 전 관리실에 요청해서 묘지의 단을 새로 정비해 드렸는데 크기와 위치가 꼭 맞았다. 드디어 엄마를 찾았다.
돗자리를 깔고 제수를 꺼내 대리석 상판에 상을 차리고 나란히 절을 올렸다. 잠시 묵념을 하고 흠향하시라고 뒤돌아 앉아 멀리 산세를 바라본다. 사연이 많을 묘비가 사방으로 즐비한데 햇살은 아득하고 평화롭다.
남편이 일어나서 묘지 옆에 알맞은 자리를 찾아 흙을 판다. 이번에는 꼭 나무를 심고 오자고 내가 고집을 부렸다. 남편이 흙을 파는 동안 나는 무덤가를 돌며 잡초를 뽑고 잔돌과 낙엽을 주웠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였을까. 늘 담담하게 서서 바라보고만 왔던 엄마인데 눈이 쏟아질 듯 아파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둑이 무너진 듯 큰 울음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처음으로 엄마 앞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렇게 서둘러 가서 좋으세요? 나한테 미안했으면 더 살아서 내 교복도 다려주고, 내가 애 낳았을 때 손도 잡아주고 미역국도 끓여주고 했어야지. 동생들을 다 두고 그렇게 가면 어떡하라고!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엄마! 엄마!”
눈물을 닦으며 잡초를 뽑고, 또 원망을 하다 잡초를 뽑고 무덤을 쓰다듬으며 펑펑 울었다. 나무를 심던 남편이 ‘저 사람이 왜 안 하던 짓을 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만해, 이 사람아. 장모님, 저승에서 심난하시겄네!”
무덤을 깔끔하게 정돈한 다음 제수와 돗자리를 거두었다.
“엄마! 잘 있어. 또 올게. 오늘 햇빛이 좋으니까 따뜻하게 있어야 해.” 남편이 삽과 바구니를 들고 앞장선다. 눈물을 닦으며 그 뒤를 따라가다 문득, 엄마를 뒤돌아보았다. 햇살 때문인지 저만치 엄마의 비석이 먼지 낀 듯 뿌옇게 보였다.
“여보! 잠깐만 기다리세요. 내가 얼른 가서 비석 좀 닦아놓고 올게요.” 바구니에서 물티슈와 키친타월을 챙겨 다시 엄마에게 향했다. 무릎을 꿇고 비석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 엄마는 이 씨인데 비석 위에 쓰여 있는 글자가 이 씨가 아니다.
자세히 보니 쇠 금자다. '내가 잘못 보는 건가?' 남편을 급히 불렀다.
“여보! 이리 좀 와보세요. 빨리 와서 여기 비석 좀 봐봐. 이거 김 자 아니에요?”
남편이 가까이 와서 비석을 멀뚱히 보더니
“김씨네! 그리고 남자분 같은데?”
“그럴 리가 없어. 분명히 여기가 맞는데? 엄마 묘가 맞아. ”
“아니야, 이 사람아! 여기 봐. 처랑 자식들도 새겨져 있어.”
“어머! 어머머머! 어머!” 눈물이 쏙 들어갔다. 큰 나무를 기준으로 방향이 같고 묘지도 새로 정비해서 의심치 않고 엄마라고 생각했다.
두 손을 모으고 연신 고인에게 인사를 했다.
“어머 죄송해요, 아저씨. 이를 어째! 너무 죄송해서 어떡하죠? 웬 여자가 와서 울고불고 난리 쳐서 정신 사나우셨죠? 너무 죄송해요.”
내가 사죄를 하는 동안 남편은 조용히 나무를 다시 파냈다.
“저기...... 이 나무는 엄마 드리려고 가져온 거라, 여기 두면 좋겠지만 제가 다시 가져갈게요. 흙도 꼭꼭 다져놓을게요. 정말 너무너무 죄송해요. 대신 제가 잡초를 모조리 뽑았으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 죄송해요, 아저씨.”
바구니로 가서 남은 술을 가져다가 뿌려드렸다.
엄마의 묘는 아저씨보다 딱 한층 아래 같은 줄에 있었다. 엄마 앞에 털썩 앉았다. 다리가 풀려서 힘이 없다.
“엄마! 나 위층 아저씨한테 갔다 왔잖아. 혹시 윗집 아저씨 만나면 죄송하다고 꼭 좀 전해주셔. 근데...... 혹시 엄마가 나 부른 거에요?”
위층에서 하도 울어서 울음이 나지 않았다. 실없이 웃음이 났다.
“여보, 내 동생들한테는 내가 엉뚱한 데 가서 울고불고했다고 말하면 안 돼! 알았지?”
남편이 킥킥 웃으며 나무를 심는 동안, 나는 돗자리를 펴고 엄마 옆에 앉았다. 두 다리를 쭉 뻗고 그저 엄마와 함께 멀리 산세를 바라만 보았다. 햇살이 눈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