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발맞추기 1

프랑스에서

by하양데이지

저녁에는 시원한 바람이 부니 산바카라하기에 그만이다. 남편과 산바카라을 나선다. 남편은 전투적으로 걷는다. 거리를 좁히려면 간헐적으로 다리에 모터를 달아야 한다.


흰머리를 폴폴 날리며 천천히 걷고 싶은데, 남편한테 손을 붙들린 채 횡단보도 위를 종종걸음 친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성큼성큼 또 앞서간다. 걷다가 죽은 귀신이 붙었나. 저 놈의 버릇은 수십 년이 지나도 고쳐지질 않는다. 십여년 전 리옹에서 끝장을 봤어야 했던 건지.....


베네치아부터 가르다호수를 경유하고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에서 눈이 시리도록 푸른 풍경을 즐긴 다음 뮌헨에서 로컬 맥주를, 뉘른베르그에서 역사의 현장을, 벨기에 스파에서는 휴식을 취한 후 도착한 파리에서 우리는 사흘을 머물기로 했다.


에펠탑 바로 인근에 호텔을 정하고, 예약한 에펠탑 내부의 레스토랑 창가에서 센강을 내려다보았다. 멀리 라데팡스 방향으로 해넘이는 아름다웠고 와인은 그윽했으나 오랜 여행으로 장염의 기미도 보이고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남편이 파리 지도를 펼쳤다. 파리 시내를 도보로 누벼보자며 야심 찬 표정을 짓는다. 골목을 걷지 않으면 현지의 냄새를 실감할 수가 없단다. 전쟁을 앞둔 장수가 점령지를 향하여 행군로를 표시하듯 지도에 동그라미를 그려 나갔다.


에펠탑에서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를 거쳐 콩코드광장, 루브르, 노트르담 대성당, 퐁뇌프 다리와 파리시청까지 걷는 계획이다. 그리고 다시 파리시청부터 에펠탑까지 걸어와야 한다. 남편은 이걸 ‘지도 한 장에 의지한 대장정’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사흘을 연거푸 걸었다.

남편은 무엇이든 허투루 보는 법이 없이 상제리제의 명품관을 다 들여다보고 골목골목을 뒤져서 유명한 명품샵도 다 들어가 본다. 퐁뇌프 다리를 건너서는 로드샵의 엽서를 구경하며 걸었고 맞은편에 위치한 가구점의 가구들도 일일이 들여다보았다. 핸드백을 들고 샌들을 신은 나는 발가락에 물집이 소복이 잡혀 미아리고개도 아닌 파리시내를 맨발로 절며 절며 따라 걸었다.


미술관과 박물관, 백화점도 필수코스다. 루브르에서는 빠짐없이 돌아봐야 한다는 미션에, 오픈시간에 진입하여 셜리관을 시작으로 경보선수처럼 단숨에 3개 코스를 둘러보며 복도를 누볐다. 주마간산이 아니라 주족간산이다. 모나리자는 멀리서 지켜봤고 파리 시내의 지도를 빠삭하게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목적지는 리옹이다. 리옹까지 걷자고 할까 봐 무서웠다. 원거리인지라 다행히 차를 탔다. 호텔에 짐을 맡겨놓고 또 걷는다. 나흘째다. 쉴 수 없다. 계획한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쉬지 않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다리를 건너 올드타운으로 넘어가서 푸르비에르 언덕을 오른다. 성곽이다. 어느 도시건 그곳에서 가장 높은 지역으로 올라가 도시의 지세와 지형지물을 살피는 것이 기본이라고 한다. 여행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러 왔다.


걷다가 우뚝 멈춰 섰다. 남편이 돌아본다.

“빨리 안 오고 뭐 하셔!”

못 걷겠다고, 안 걷겠다고 말하려다가 울음이 터졌다. 남편이 손을 잡아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버티다가 끌려가며 생각했다.

‘여기서 확 갈라서 버릴까?’


언덕에 오르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계단이 많아 아픈 다리를 끌어올려 올라가고 올라가도 끝이 없다. 마침내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에 도착했다. 리옹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며 감탄을 한 것도 잠시, 내려갈 일이 캄캄하다.

내리막길. 또 걷는다. 허기가 지고 다리가 아파서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구시가지로 들어서니 젊은 거리의 악사가 땅바닥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다. 그를 지나쳐 길가의 널찍한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시켰다. 점심시간을 한참 넘겨 맛보는 샐러드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맛있었다. 감자와 맥주도 주문한다.

식당 안에는 우리 부부 외에 현지인으로 보이는 두 분의 노신사가 한쪽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었는데,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어디에서 왔냐고 말을 붙여왔다. 한국에서 왔다는 대답에 한 분이 기쁜 안색으로 본인도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자신은 경찰국장으로 퇴직을 했는데, 근무 당시 미테랑 대통령의 근위대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며 방한 시 테제베고속열차를 한국에 소개했었다는 말도 곁들인다. 피로한 몸에 한두 잔의 맥주는 알딸딸한 활력을 불어넣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합석을 했다.

술은 만국공통어다. 노신사들은 기분이 좋은지 연거푸 술을 주문한다. 남편도 나도 술기운에 긴장이 적당히 풀어질 때쯤 남편이 나에게 노래를 해보라고 한다. 남편의 악습이 나왔다. 기분이 좋으면 나한테 노래를 시킨다. 때와 장소를 전혀 고려치 않는다.

‘하... 이 양반..... 여기서까지.... 진짜 갈라서 버릴까...’

여기가 고향마을 선술집도 아니고, 갑자기 노래를, 그것도 샹송을 하란다. 이역만리타국에서 술에 취해 프랑스인들 앞에서 노래를 하라니. 남편이 나를 가리키며 엄지 척을 하자 노신사들도 들뜬 기색으로 박수를 친다.

‘그래! 다리도 부러지기 직전인데 리옹에서 샹송이나 크게 부르고 화끈하게 갈라서자!’

숨을 크게 들이쉰 뒤 나는 올드 샹송 ‘빠로레’를 부르기 시작했다. 모르는 부분은 그냥 빠로레다. 어차피 다 술에 취했고 이제 끝장이다!

얼른 노래를 끝내려는데 아까 길에서 본 거리악사가 기타를 메고 들어온다. 노신사가 그를 불러 테이블 의자를 내주며 술을 시켜준다. 그러더니 내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기타로 반주를 하란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막 끝나가는데 이제 악사가 붙었다.

내 어설픈 노래에 악사 청년은 기가 막히게 기타 반주를 맞춰주었다. 노신사가 청년에게 음식을 샀다. 시장했던지 정신없이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청년이 다시 연주를 시작하며 ‘빠로레’를 부른다. 같이 부르잔다. 그 순간 또 한 명의 거리악사가 아코디언을 메고 식당으로 들어온다. 두 청년이 똑같이 생겼다. 둘이 쌍둥이란다. 동생이라고 소개한다. 이젠 쌍둥이 악사가 생겼다. 셋이 노래를 부른다.

술에 취한 동양여자가 부르는 노래가 어둑해지는 저녁 시간 식당 앞 광장으로 퍼져나간 탓인지 식당에 여행객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마구마구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로 동양인들이다. 식당이 바빠지고 자리가 점점 채워졌다. 식당 주인이 우리에게 술과 음식을 더 내오면서 가지 말란다. 엄지 척을 한다. 술을 공짜로 줄 테니 많이 놀다가 가라고 한다. 식당에 자리가 모자라서 야외에도 테이블이 펼쳐진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노신사들의 얼굴도 불콰하다. 식당에서 나와 악수로 인사를 나누며 아쉬운 안녕을 했다. 호텔까지 걸어가야 한다. 독도법에 능한 자신을 믿고 따라오라는 남편의 손을 잡고 비척 비척 걷기 시작한다. 취기와 민간 외교에 기분이 좋아져서 남편과의 갈라서기는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언젠가 호텔이 나올 것이다. 물집이 터진 건지 피가 나는 건지 발가락이 축축하다. 다음 날부터 알프스를 넘고 피렌체와 피사를 거쳐 밀라노 공항으로 향하는 길이 까마득하다. 몽롱한 술기운 가운데 다짐했었다. 엉망이 된 발가락을 핑계 삼아 온몸으로 저항하겠다고.

저만치 앞서가던 남편이 돌아본다.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홱 돌아서서 그냥 집으로 가버릴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걸음을 재촉한다. 아이고!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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