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버릇
신랑은 고향에 깨북쟁이 친구들이 있다. 직업도 다양한 친구들이 모임을 만들고, 중년이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긴 각시들까지 합류하여 일 년에 한두 번 부부동반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각시들 중에는 내가 제일 어려서 언니가 다섯이나 생겼다. 산림청에 근무하는 큰언니는 시원시원한 성격에 술도 잘 마시고 나를 ‘내 동상’이라 부르며 각별히 챙긴다.
첫 여행지는 지리산이었다. 지리산 자락의 펜션마을에 황토집을 빌려서 1박을 하기로 했다. 근처 맛집에서 토종닭으로 푸짐한 저녁을 먹고는 황토집의 넓은 거실에 둘러앉아 맥주와 오징어를 뜯으며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몰랐다. 방이 두 개니 남녀로 나누어 잠을 자기로 했다.
자정을 넘기고 각시들이 먼저 방으로 들었다. 불을 끄고 누운 채 두런두런 이야기와 웃음이 끊어지다 이어지고 창문에는 달빛을 받은 나뭇가지의 그림자들이 가만가만 흔들렸다. 나는 까무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창에 햇살이 비쳐 깨어보니 언니들이 모두 일어나 있다. 연거푸 하품을 하는 산림청 큰언니가 푸념을 한다.
“아따, 어젯밤 한숨도 못 잤소. 동상들은 잘 잤능가?”
“나도 못잤는디. 밤새도록 시끄러워서 말여. 근디 그게 무슨 소리여?”
내가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가 났어요? 난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동상, 그 큰 소리를 못 들었단 말여? 요기, 요 창문 밑에 지리산 두꺼비가 와서 앉아갖고는 밤새 꽈악~ 꽈악~해댔잖아! 지리산에 사는 놈이라 지치지도 않는가, 그냥 밤새 꽈악~꽈악~허는디 난 아주 날밤 새부렀네!”
“아따, 그게 두꺼비소리였나 비네! 아휴, 눈 따거.”
“아주 큰 놈일 꺼여. 소리가 겁나게 우렁창거 봉께.”
웃음을 참으려 입술을 꼭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나는 안다. 그건 남편이 어금니를 가는 소리다.
일전에 친정 가족들과 함께 했던 가족모임에서 1박을 할 때도 남편의 어금니는 위력을 발휘했었다. 아예 층을 분리해서 펜션 2층 가장 구석진 방에서 남편을 자게 했는데도, 둘째 동생이 아침에 벌게진 눈으로 나타나서 이 동네는 왜 야간공사를 하냐며 밤새 땅을 뚫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불평을 했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로 나오니, 남편을 제외한 남자들이 거실에 나와있다. 몇 분은 몸을 모로 누인 채 자고, 몇 분은 맥없이 앉아있다.
총무를 맡고 있는 남편친구가 입을 열었다.
“쩌기! 인자 부부동반 모임은 부부당 방 한 개씩! 앞으로는 그렇게 허자고! 층도 가급적 따로 잡고!”
“그려, 그려야 쓰겄어. 날밤을 새부렀네. 아니면 00이네 부부만 방을 따로 내주랑게.”
느긋한 불평들이 오가고 있을 때 남편이 개운한 얼굴로 방에서 나왔다. 한 친구가 남편에게 묻는다.
"00아! 너 이빨 멀쩡허냐?"
다음번 모임에서 나와 남편을 한 방에 넣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우리도 따로 잔다. 간혹 무서운 꿈을 꾸다가 잠이 깨면 굳이 남편을 깨울 필요가 없다. 거실 너머 들려오는 어금니 가는 소리로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