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여행을 가자고요?

택두 읍슈

by하양데이지

"당신, 작년에 은퇴한 뒤로 나랑 어디 한 번을 못 갔잖아. 나도 평생 일만 하다 죽겄네. 어디 여행 일정 좀 잡아 보셔."

남편의 갑작스러운 제안이다.

"진심이에요?"

"그렇지! 어디 둘이 바람 좀 쐬고 옵시다. 당신, 그런 건 참 무심해. 부부가 손 잡고 여행도 다니고 그래야 사는 맛이지! 우리가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인지 기억이나 나?"

"그럼...... 동해바다 어떠세요? 내가 숙소 예약할게요."


망상해수욕장에 바닷가를 코 앞에 둔 숙소를 예약했다. 부부가 묵기에 딱 좋은 사이즈와 컨디션이다.

'부엌에서 벗어나 식사는 맛집에서! 식료품은 근처 편의점에서! 옷은 가볍게!'

테라스에서 캔맥을 들이키며 파도소리를 듣고, 별을 올려다보며 남편과 둘이 바다멍을 할 생각에 신이 났다.


여행을 떠나기 삼일 전,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당신 알지? 내 친구 ○○이. 그 친구도 오기로 했어."

"네?"

"고향 친구들 있는 단톡방에 올렸지. 내가 동해시로 여행 갈 건데 합류할 사람 오라고. 그랬더니 마침 ○○이가 강원도 정선에서 산행 중이라고 우리 쪽으로 합류한대. △△이도 멀지 않다고, 올 수 있으면 온대."

"우리 둘이 가는 거 아니었어요?"

"이 사람아, 여럿이 놀면 좋지."

"그분은 어디서 자고요? 지금 성수기라 숙소를 구하기 어려울 텐데."

"걱정도 팔자셔. 우리랑 같이 자면 되지."

"여보! 우리 숙소는 2인실이에요. 침대도 하나밖에 없어요."

"깨북장이 친구들이라 하룻밤은 이불 깔고 자면 돼. "

"아니 나한테 미리 물어봐야지, 그렇게 정하면 어떡해요?"

"물어보면 싫다고 할 거잖아. 암튼 그렇게 합시다!"


세상에 이런 독재자가 없다. 갑자기 가슴에 불이 화르륵 붙어서 이 방 저 방으로 뛰어다녔다. 얼굴까지 불이 옮겨 붙었는지 열이 확확 오르다가 느닷없이 실소가 터진다. 그래도 셋이 잘 수는 없어서 다시 숙소사이트를 뒤져 다행히도 인근에 취소된 객실 한 개를 발견하고 예약을 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오래전 둘이서 2박 3일 제주 여행을 예약했을 때, 남편은 떠나기 며칠 전 시어머님을 여행에 초대했다.

"막내누나한테 들으니 어머니가 요즘 치매가 오는 게 아닌 가 싶다네. 어머님이 더 연로하시기 전에 같이 여행하면 좋지 않겠어?"


어머님이 우리와 한 방에 묵겠다고 하셔서 엑스트라 베드를 신청했다.

"어두우면 객지에서 밖에 나다니는 게 아녀!"라는 말씀에 우리는 6시에 저녁식사를 마치면 호텔방에 머물렀다. 남편은 티브이를 보고, 나는 얼굴 마사지를 해드리며 어머니와 이런저런 다정한 얘기들을 나눴다.


그리고 꿈에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새벽잠이 없으신 노인이신지라, 아마도 일찍 잠이 깨셔서 더블베드에서 자고 있는 우리 부부가 눈에 들어오신 듯했다. 꿈속을 헤매던 내가, 다리를 남편의 배 위에 올려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누군가 내 다리를 딱! 때렸다. 눈을 비비고 돌아보니 희미한 새벽빛 속에 어머님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계셨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엄하게 말씀하셨다.

"어디 감히 대주의 배에 다리를 올려놓고 자는 것이여? 다리 안 내려놓냐!" 꿈인가 싶어서 다시 눈을 비볐다.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나는 내 다리를 딱 때리며 다리에게 말했다.

"어머! 너 왜 거길 올라갔어? 거기가 어디라고 어디 대주님 배 위에 올라가고 그래?"

슬쩍 어머니의 표정을 보니, 웃고 계신다.


해안도로를 달리는 렌터카의 앞 좌석에는 남편과 어머님이 나누시는 옛날 얘기와 웃음소리가 이어졌고 나는 뒷좌석에서 간간이 추임새를 넣다가 핸드폰 게임을 했다.


이튿날 새벽, 자다가 또 어머니에게 이마를 탁 맞았다. 내가 이불을 둘둘 말고 자는 통에 남편이 맨 몸으로 자고 있던 거였다.

"어디 대주를 맨몸으로 놓고 이불을 혼자 다 말어 덮고 자는 것이여? 니 남편도 이불을 덮어줘얄 꺼 아니냐!"

이불을 덮어주며 남편 볼때기를 세게 꼬집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퇴실하기 전, 샤워 후 욕실에 물기를 닦지 않았다고 혼이 나서 세면대 밑까지 물기 한 방울 없이 욕실 청소를 했다. 남편은 미안했는지 면세점에서 갖고 싶은 걸 하나 고르라고 했다. 딱히 살 것이 없어서 선글라스를 하나 집어 들었지만 앞으로 둘이 가는 여행은 없을 거라는 보복성 다짐을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함께 했던 제주 여행은 우리 부부가 가끔 떠올리는 그리운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번에 또 그가 누군가를 초대한 것이다. 하늘은 푸르고 바다는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두 남자가 반가운 악수를 나눴다. 편의점이 아닌 하0로 마트에서 장을 봐왔다. 테라스 테이블에 마주 앉아 어린 시절 얘기를 꽃피우며 끝없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남자들에게 부지런히 접시를 날랐다. 김치 접시를 새로 채우고, 콩나물과 쑥갓을 손질해 매운탕을 끓이고 얼큰하게 술이 오른 남자들을 뒤로하고 바닷가로 걸어 나가 모래사장을 씻어주는 파도소리를 들었다.


남편의 거침없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에게 참으로 오랜만의 휴가라는 걸 생각하면 남편이 아주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또 둘이서 여행가자고 하면 답은 이미 정해졌다. 택!두!읍!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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