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생각
"집에 가는 길에 다0소 들르려는데 당신 필요한 거 있어?"
"음..... 그럼 연필 두 다스만 사다 주세요."
"알았어."
집에 온 남편에게서 받아 든 연필은 미술연필이다.
"아니, 이건 미술연필이잖아요."
"무슨 연필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맨 앞에 있는 거 집어왔지."
며칠 후 동생을 만났다.
"형부는 연필을 사다 달랬더니 미술연필을 사 왔더라고."
동생이 갑자기 흥분하면서 검지손가락을 똑바로 세우고 말했다.
"언니! 남편한테 심부름을 시킬 때는 디렉션을 정확히 줘야 해! 아주 아주 정확히! 알겠어? 난 감바스 하려고 애아빠한테 새우 300그램을 사다 달랬더니 새우젓 3킬로를 사 왔어. 내가 분명히 감바스 할 거라고 말했는데도 그 모양이야."
동생은 그 상황을 생각하면서 아직도 화가 나는 듯했다.
'아...... 정확한 디렉션...... 그걸 줘야겠구나.'
지난주,
"나 지금 집에 가는데 뭐 필요한 거 없어?"
"여보! 그럼 오시다가 파 좀 사다 주세요. 대파하고 쪽파요. 쪽파는 파김치 담을 거예요. 내가 사 오려고 했는데 날이 너무 더워서 못 나가겠더라고요."
"응, 알았어."
"여보! 여보! 여보!"
"왜?"
"조금만 사 오세요. 파김치 많이 하면 시어지니까. 대파도 조금만요. 꼭 조금만요!"
"알았어!"
일전에 수건을 사다 달라고 했더니 수건 100장을 뭉텅이로 사 왔다.
"우리 펜션 사업 시작했어요? 아니...... 수건을...... 가정집에 수건 100장이 웬 말이에요? 100장이나 사 오면 이거 다 어디에 써요?"
"이렇게 한 번에 사놓으면 잊어버리고 계속 써도 되잖아. 수건에 신경 쓸 일 없고."
"......"
큰 애의 집으로 보내고, 작은 애 원룸으로 보내고, 집안 수건을 다 바꿔도 남은 수건들이 이불 옆에 쌓였다.
그가 '조금만'을 잘 해석해야 할 텐데.
현관에서 삑삑삑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남편이 온 것 같다.
"다녀오셨어요?"
부엌에서 서둘러 나가 보니 현관문이 열리는데 사람은 안 보이고 사람 키만 한 파숲이 들어온다.
'헉!'
"여보! 이게 다 모예요? 아니 파를...... 파를...... 파를 밭떼기 하신 거예요? 이 파를 다 어쩌라고요!"
엄마의 높아진 음성에 방 문을 열고 나온 아들이 파숲을 보더니 배를 잡고 웃는다.
"이 사람아. 이 정도는 있어야 먹지. 조금만 사오래매. 그래서 조금만 샀어."
"아니..... 많이 사 오라고 했으면 오늘 파 덮고 잘 뻔했네......"
파를 다듬다 보니 온 집안이 파냄새로 꽉 찼다. 거실을 걸어 다니면서도 눈물을 찍고 코를 풀어댄다.
냉동칸마다 파를 빼곡히 채우고 나서 김치통에 파김치를 담다가 불쑥 울화가 치밀었다.
정확한 디렉션? 그런 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