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세계지도 퍼즐을 다시 맞추기 시작했다. 1000피스짜리. 세 번째 맞추는 퍼즐이다. 세계지리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공부하다가, 상담을 준비하다가 너무 함몰되어서 다리가 저릿하거나 갑자기 우울해질 때 잠깐 일어나서 한 두 조각씩 맞추는 기분전환용이다. 퍼즐도 집중하기 시작하면 호로록 빠져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하기에 세 피스 맞추는 걸로 기준을 정해놓았다. 나만의 고요한 루틴이었고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엊저녁 악당이 나타났다. 세계지도를 내려다보더니 손을 보태겠다며 옆에 와 앉았는데 전혀 반갑지 않았다. 퍼즐을 한 번도 맞춰본 적이 없는 악당님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데 끝낼 생각이 없다. 내 휴식공간인 세계지도가 그에게는 빨리 점령해야 할 전쟁터가 된 것이다. 이건 재앙이다. 불 끄고 잘 거라고, 이제 그만 당신 방으로 가라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다.
"사람이 한번 뜻을 세웠으면 끝장을 봐야지!"
나는 뜻을 세운 적이 없다.
육지의 반을 맞췄다. 세계지도를 맞춰본 이는 알겠지만 바다가 지옥이다. 마침내 그가 바다는 내일 맞추자며 일어섰다.
"바다는 내가 천천히 맞출게요."
"안돼! 우리는 한 팀이야! 같이 해야지 무슨 말씀을!"
나는 그와 팀을 먹은 적이 없다.
불을 끄고 눈을 감으니 눈앞에 퍼즐들이 돌아다닌다. '퍼즐지옥이다. 저 걸 다 맞춰야 이 지옥이 끝날 텐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악당님이 입장하셨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분이 오늘은 쉬신단다. 다시 퍼즐을 들여다본다. 점심을 먹고 또 퍼즐 앞에 앉았다. 내가 봐도 우리 부부는 정말 퍼즐을 못 맞춘다. 둘 다 노안이 와서 글씨가 뵈질 않는다.
저녁을 먹고 또 퍼즐지옥으로 들어섰다. 목과 어깨가 뻣뻣하고 눈도 침침하다. 세계정복에 눈이 먼 악당님이 벌떡 일어나셨다.
"거 봐요, 여보. 힘들지? 나 너무 힘들어. 우리 내일 또 해요."
"무슨 소리야! 이걸 두고 어떻게 잠이 와!"
악당님이 방을 나가더니 돋보기안경을 바꿔 들고 입장하셨다.
'이런 젠장......'
밤 9시가 넘었다. 살살 구슬리기로 했다.
"여보, 우리 캔맥 사다가 시원하게 마시면서 슬슬 맞출까?"
"집중력 떨어져서 안돼! 다 맞추고 마십시다."
필이 왔다. 오늘 이걸 못 맞추면 안 된다! 남편은 절대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 주말이니 밤을 새우려고 할 것이다. 나는 온몸의 진기를 다 끌어모아 눈으로 보낸 다음 세계지도 앞에 바짝 앉았다. 탁. 탁. 탁. 빠른 속도로 빈 곳을 맞춰나갔다. 퍼즐신이 강림하신 것 같았다. 못 맞추면 죽는다는 각오로 필사적인 눈알 굴리기와 빠른 손놀림으로 바다를 구석구석 채웠고, 자리가 뻔한 마지막 피스 세 개를 남편에게 공손히 상납했다. 마지막 피스를 꽂는 순간 남편은 "와아!" 하며 두 팔을 번쩍 들었다. 껄껄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하자는데 팔이 올라가질 않는다.
10시가 넘었고 남편은 기분 좋게 축하주를 사러 나갔다. 거울을 보니 내 양쪽 눈에 핏발이 서있다. 앞으로 우리 집에 퍼즐을 들일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