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청소의 신
김통장님은 청소의 신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하루를 신성하게 여는 그분만의 청소의식이 있다. 나는 아침 일찍 운동복 차림으로 사무실로 향한다. 부지런히 걸어서 땀을 내고 중간중간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다 보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화단에서 웃자란 가지를 치고 꽃을 전지 하며 시든 잎들을 정리하는데, 날이 더워지면서 아침 6시쯤 사무실로 나가다 보니, 바로 옆 주택에 사시는 김통장님의 동선이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김통장님은 대문 앞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마당을 쓸고 울타리 경계석에 물을 뿌려 솔질을 하고 계신다. 집안 청소는 이미 끝내셨을 터. 젊은 시절부터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을 움직여 집 앞의 긴 2차선 도로까지 청소를 하신다.
휴지를 줍고 개똥, 새똥을 치우고 배설물 자국도 물뿌리개로 적신 다음 솔로 마구 씻어내신다. 도로 가장자리까지 기어 나온 지렁이를 집게로 들어 인근 밭으로 획 날려 보낸 후 솔잎을 쓸어 모으고 물청소까지 하시니, 아침에 출근하는 주민들은 새벽에 살수차가 다녀간 줄 알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아니라 천상천하 홀로바쁨이다.
그다음, 마당 한쪽에 세워 둔 자전거를 타고 마을 순찰을 나가신다. 자전거 안장에 몸을 싣고 힘차게 페달을 밟으시는 통장님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텍사스 레인저가 떠오른다.
밤 사이에 무슨 일은 없었는지 농로와 도로를 달리며 마을 상황을 점검하시는데, 한 번은 새벽 산바카라을 나섰다가 쓰러진 어르신을 발견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구해냈다고 하셨고, 쓰레기 집하장에서 연기가 폴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을 깨워 화재를 조기에 차단한 적도 있다고 하셨다.
대차게 마을 민원을 해결해 나가고, 밤낮으로 마을을 청소하고 살피는데도 자신의 노고를 주민들이 모르는 것 같아 통장님은 애가 탄다. 땀에 흠뻑 젖은 통장님에게 시원한 음료를 대접했을 때, 이렇게 해봐야 아무도 몰라준다고 허탈한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그래서인지 수시로 마을에 방송을 송출하신다.
"에~ 에~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주민 여러분~ 쓰레기~ 쓰레기 함부로 버리시면~ 아이~ 이거~ 나오는 거야, 안 나오는 거야?~ 나와? 나온다구? 그럼 다시~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안타까운 건 에코가 너무 심해, 멀리서 아우성치듯 들린다는 것이다. 그래도 하루가 멀다 하고 꾸준히 목소리를 송출하신다. 언제 기회가 되면 마이크를 적당히 떼시고 에코를 없애시라고 알려드려야겠다.
그런 통장님이 무서워하는 이가 있다. 다름 아닌 인근 유치원 5살 배기 남자아이다. 통장님과 그 아이가 첫 대면을 할 때, 통장님은 애지 중지하는 수국에 물을 주고 계셨고, 나는 홍매화의 시든 잎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이가 울타리 밖에서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통장님이 빙긋 웃으시며 유치원에 가느냐고 물으셨다.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아저씨가 아니라 통장님이셔. 통장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해야지."라고 일러줬다.
아이가 다시
"통장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자, 통장님은 허리를 뒤로 넘겨가며 웃음을 터뜨리셨다.
"너 여기 이 꽃 알아? 이게 수국이야. 이쁘지?"
"어떤 거요?"
"이리 들어와서 봐."
느닷없는 초대가 이루어졌고, 아이엄마가 망설일 틈도 없이 꼬마가 통장님네 울타리 안으로 내달렸다.
"와! 꽃이 엄청 커! 엄마도 이리 와서 봐!"
꽃을 만져봐도 된다는 통장님의 허락에 아이는 꽃송이를 만지며 "우와! 우와!"를 연발했다. 통장님이 참으로 행복해 보이는 아침이었다.
하원시간이었다. 아침에 본 꼬마아이와 엄마가 나란히 유치원 쪽에서 걸어 내려왔다. 아이가 갑자기 뛰어 오더니 통장님 댁 울타리에 매달렸다.
"통장님! 통장님! 통장니임~!"
엄마가 아이를 말렸지만 아이가 울타리에 매달려 떨어지질 않았다. 낮잠을 주무시던 통장님이 슬리퍼를 끌고 나오셨다.
"어? 아침에 왔던 그 꼬마구나? 통장님 왜 불렀어?" 통장님이 자상하게 물으셨다.
"저 꽃 다시 보여주세요. 엄청 큰 꽃!"
"그래? 또 보고 싶어? 이리 들어와."
말리는 엄마를 밀쳐내고 아이가 울타리 안으로 뛰어들었다.
꽃을 다 살핀 아이가 화단가에 앉더니
"통장님은 뭐 하고 있었어요?"
"응, 통장님은 쉬고 있었지."
"근데 통장님은 왜 통장님이에요?"
"응, 그건......"
그다음, 아이는 화단가에 돌을 집어 들었다.
"이 돌은 왜 여기 있어요?"
"어...... 풀 나지 말라고......"
"풀이 나면 안 돼요? 왜 안 돼요?"
끝없는 질문지옥이 시작되었다. 통장님은 무언가 생각난 듯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빼빼로를 한통 가지고 나오셔서 아이 손에 들려주셨다.
"자~ 이제 엄마랑 집에 가자~ 이거 먹고 엄마 말 잘 들어, 알았지?"
여기서 더 놀고 싶다고 떼쓰는 아이를 번쩍 안아 든 엄마는, 민망한 웃음으로 인사를 하고 울타리를 나갔다.
"허 참! 녀석! 똘망지네!"
그 뒤로 이삼일, 통장님은 어린 팬의 시중을 들어주시느라 진땀을 흘리셨다. 그리고는 매일 유치원의 등하원시간이 되면 신속하게 사라지신다.
"통장님! 통장니이임!"을 외치는 작은 악당을 피해 텍사스 레인저는 집안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