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성의 별궁 정원

프라하, 그리움이 머무는 곳

by박민희

프라하, 그리움이 머무는 곳

2부. 프라하에서 살아간다는 것

제10화

프라하성의 별궁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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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으로 가는 길에서 발견한 작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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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 머물던 동안 나는 아침이면 자주 18번 트램을 타고 프라하성으로 갔다.

처음 프라하에 왔을 때만 해도 프라하성은 나에게 거대한 관광지였다. 성 비투스 대성당을 보고, 오래된 궁전과 황금소로를 걷고, 높은 곳에서 붉은 지붕으로 가득한 프라하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랐다.

그러나 한 도시를 여행하는 것과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조금 달랐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자 익숙한 풍경 너머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8번 트램에서 내려 프라하성 정문으로 향하는 긴 길을 걸어가면 성으로 들어가는 길 양쪽으로 정원이 있었다.

왼쪽에는 아름다운 별궁 정원이 있었고 오른쪽에도 또 하나의 식물정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원 입구 근처에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객은 그곳을 그냥 지나쳤다.

특히 일정에 맞추어 움직이는 단체 여행객들에게는 길 양옆의 정원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프라하성 자체가 워낙 넓어 성 내부만 둘러보는 데에도 한나절이 걸렸으니, 정원까지 들어가 볼 엄두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성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그러나 프라하에 오래 머물면서 성의 구석구석이 익숙해지자 어느 순간부터 내 눈은 성 바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바라보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곳.

열려 있지만 좀처럼 들어가 보지 않는 작은 문.

나는 그런 곳들이 궁금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여느 때처럼 트램에서 내려 프라하성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왼편 정원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는 들어가도 되는 곳인가?’

문 앞에서 잠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사람 몇 명이 안쪽을 걷고 있었다.

그렇다면 들어가도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놓았다.

그 한 걸음으로 나는 프라하에서 가장 사랑하게 될 장소 하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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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성 옆에 숨어 있던 비밀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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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

분수대가 있었고 그 너머로 아름답게 정돈된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프라하성 입구에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정원에는 키가 크고 단정한 제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두 명씩 조를 이루어 천천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경호원들을 보고 조금 긴장했다.

‘혹시 들어오면 안 되는 곳에 들어온 건 아닐까?’

괜히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정원 곳곳의 하얀 벤치에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바카라을 읽는 사람도 있었고, 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관광객보다는 프라하 시민들처럼 보였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나도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첫 번째 정원을 지나고 다시 두 번째 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을 지나자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오래된 건축물의 기둥과 외곽 건물이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웅장한 나무들이 오래된 건물을 감싸고 있었고, 햇빛은 나뭇잎 사이를 지나 잔디와 길 위에 조각조각 내려앉았다.

그곳에 서 있으니 마치 오래된 유럽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영화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고전적인 기둥과 정원의 분위기는 내가 알고 있던 프라하성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프라하성을 거의 매일 드나들면서도 나는 이곳을 모르고 있었다.

그날 나는 여행 안내바카라자에도 없는 나만의 비밀 장소를 하나 발견한 것처럼 기뻤다.

그 뒤로 별궁 정원은 프라하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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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카라 한 권이면 충분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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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 정원을 좋아하게 된 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개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당시 나는 개를 무서워했다.

프라하에서는 어디를 가든 사람들 곁에 개가 있었다. 트램에도 타고, 버스에도 타고, 카페와 레스토랑에도 주인을 따라 들어왔다.

대부분 얌전하고 잘 훈련된 개들이었지만 큰 개가 가까이 오면 나는 저절로 몸이 굳었다.

그런 내게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고 개도 들어오지 못하는 별궁 정원은 더없이 편안한 장소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거의 매일 그곳을 찾았다.

바카라 한 권을 가방에 넣고 아침에 집을 나섰다.

18번 트램을 타고 프라하성으로 올라와 정원의 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하얀 벤치 하나를 골라 앉았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바카라을 읽다가 눈이 피곤해지면 고개를 들었다.

분수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나무들이 흔들렸고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벤치 위에서 움직였다.

조금 걷고 싶으면 바카라을 덮고 정원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다시 다른 벤치에 앉았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프라하성 안쪽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몰려다녔지만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이곳의 시간은 전혀 다르게 흘렀다.

나는 그런 고요함이 좋았다.

여행자로 프라하에 왔다면 아마 나 역시 이곳을 지나쳤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하나라도 더 보아야 했을 테니까.

그러나 프라하에 살고 있었기에 나는 하루를 정원에 내어줄 수 있었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어디에도 가지 않아도 되는 오후.

그 시절의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재림이는 학교에서 자신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고, 나는 낯선 도시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아이는 음악 속으로 들어갔고 나는 프라하의 길과 정원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도시에서 서로 다른 하루를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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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원의 종이 울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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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바카라을 읽고 걷다 보면 하루가 놀라울 만큼 빨리 지나갔다.

어느 순간 햇살이 낮아지고 나무 그림자가 길어졌다.

그리고 멀리서 수도원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종소리가 울리면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이렇게 됐네.’

그제야 바카라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에는 18번 트램을 타고 프라하성으로 올라왔지만 저녁에는 좀처럼 같은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정원을 나와 프라하성 안으로 들어갔다.

낮 동안 사람들로 가득했던 성 안도 해 질 무렵이면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나는 천천히 성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말라스트라나 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올수록 프라하의 지붕들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저녁빛을 받은 붉은 지붕들 사이로 첨탑이 솟아 있었고 멀리 블타바 강이 보였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무 약속도 없이 정원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에게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조차 하나의 산바카라이었다.

말라스트라나 광장을 지나고 다시 블타바 강 쪽으로 내려갔다.

어느 날은 까렐교 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강물 위로 내려앉는 저녁빛을 바라보기도 했다.

프라하성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낮에 내가 머물렀던 정원은 어둠 속으로 조용히 숨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까렐교를 건너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걸었는데도 이상하게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어쩌면 그 시절 나는 프라하를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프라하 속에서 나 자신을 쉬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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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오늘은 어디 갔다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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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골목 어귀에서부터 첼로 소리가 들리는 날이 있었다.

재림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놓였다.

‘아, 오늘도 잘 돌아왔구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재림이가 연습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오늘은 어디 갔다 왔어요?”

말은 아무렇지 않게 했지만 얼굴에는 조금 걱정스러운 기색이 묻어 있었다.

엄마가 하루 종일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혹시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나는 웃으며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엄마는 아주 잘 놀다 왔어. 걱정하지 마.”

그리고 그날 발견한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재림아, 프라하성 들어가는 길 왼쪽에 정원이 있는 것 알아?”

“정원이요?”

“응. 문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 예뻐. 사람도 별로 없고 하얀 벤치도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또 문이 나오고 그 뒤에 또 정원이 있어.”

재림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 그런 데가 있었어요?”

나는 웃었다.

프라하에서 몇 년을 살며 매일 학교와 집을 오가던 아이보다 몇 달 머무는 내가 오히려 프라하 구석구석을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너도 학교하고 집만 다니지 말고 좀 돌아다녀.”

내가 핀잔을 주면 재림이는 다시 첼로를 들었다.

아이에게 프라하는 음악을 공부해야 하는 도시였고,

내게 프라하는 매일 새로운 길 하나를 발견하는 도시였다.

같은 프라하였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도시는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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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이 더 많이 사랑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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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나는 참 많이 돌아다녔다.

꼭 유명한 곳을 찾아다닌 것도 아니었다.

트램을 타다가 예쁜 동네가 보이면 내려보았고, 사람들이 잘 들어가지 않는 길이 보이면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문이 열려 있으면 한번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마 그것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나의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는 것을 좋아했고, 낯선 장소를 발견하면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설렜다.

그런 성격 덕분에 나는 프라하에서 외로울 틈이 조금 줄어들었다.

재림이가 학교에 가고 혼자 남은 시간을 나는 도시를 배우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낯선 외국이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고 길을 잃을까 걱정하며 지도를 손에 쥐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지도를 보지 않게 되었다.

어느 트램을 타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어느 길로 내려가면 블타바 강이 나오는지 알게 되었으며,

관광객들이 모르는 조용한 벤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아침,

프라하성으로 향하는 길에서 우연히 열린 작은 문 하나를 발견했다.

그 문 너머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정원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한 도시를 사랑하게 되는 일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처음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다.

프라하성과 까렐교, 붉은 지붕과 블타바 강처럼.

그러나 오래 머물다 보면 조금씩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지나치는 작은 문.

햇살이 오래 머무는 벤치.

정오의 분수 소리.

저녁을 알리는 수도원의 종소리.

그리고 그곳에서 혼자 바카라을 읽으며 보냈던 이름 없는 오후들.

그런 기억들이 쌓이고 나서야 한 도시는 비로소 나만의 장소가 된다.

지금도 프라하성을 떠올리면 화려한 성 비투스 대성당보다 가끔 그 정원의 하얀 벤치가 먼저 생각난다.

그 벤치에 앉아 바카라을 읽던 나.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나무와 햇살을 바라보던 어느 오후.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들려오던 아이의 목소리.

“엄마, 오늘은 어디 갔다 왔어요?”

나는 그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한 아이처럼 신이 나서 하루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쩌면 재림이보다 내가 프라하를 더 열심히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따라간 도시였지만,

그곳에서 나는 어느새 나만의 프라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프라하성의 별궁 정원은 그렇게,

우연히 열린 작은 문 하나가 내게 선물해 준 오래된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