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그리움이 머무는곳
프라하, 그리움이 머무는 곳
2부. 프라하에서 살아간다는 것
제8화
뜨로야 성
━━━━━━━━━━━━━━━━━━
■ 프라하의 조금 먼 곳으로
━━━━━━━━━━━━━━━━━━
프라하에 살면서 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장소보다 조금 외진 곳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구시가지 광장이나 까렐교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곳도 아름다웠지만, 오래 머물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오히려 쉽게 지쳤다.
그럴 때면 트램을 타고 프라하의 바깥쪽으로 나갔다.
목적지가 분명한 날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많았다. 트램 창가에 앉아 처음 보는 동네가 나타나면 내려 보기도 하고, 종점까지 갔다가 반대편 트램을 타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프라하를 돌아다니다 알게 된 곳 중 하나가 뜨로야였다.
뜨로야 성과 동물원이 있는 곳.
그리고 내가 유난히 좋아했던 작은 정원과 식물원이 있는 곳이었다.
집에서 24번 트램을 타고 가다가 다시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환승버스는 동물원으로 가는 사람들 때문에 늘 붐볐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유모차를 끄는 가족들이 탔다.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버스 안이 꽉 차 서서 가야 하는 날도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곳을 따라 내렸다.
낯선 도시에서는 그것도 길을 찾는 방법이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대개 유명한 장소 하나쯤은 나타났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걷자 뜨로야 성이 보였다.
화려하면서도 어딘가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을 붙잡은 것은 성 자체보다 그 주변의 정원이었다.
그곳에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작은 식물원과 정원이 나왔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싸다는 생각부터 했다.
‘이렇게 작은데 입장료가 왜 이렇게 비싸지?’
그런데 나는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그곳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찾아가게 되었다.
사람에게 어떤 장소가 좋아지는 데에는 꼭 대단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내게는 그곳이 그랬다.
━━━━━━━━━━━━━━━━━━
■ 개가 들어오지 못하는 나의 안식처
━━━━━━━━━━━━━━━━━━
정원은 아주 크지 않았다.
유명한 관광지처럼 하루 종일 돌아보아야 할 만큼 볼거리가 많은 곳도 아니었다.
그러나 곳곳에 작은 식물원이 있었고, 일본식으로 꾸며놓은 정원도 있었다.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었고 잘 가꾸어진 길 사이로 사람들이 천천히 걸었다.
공원 중간중간에는 접이식 간이침대 같은 의자도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누워 햇볕을 쬐었다.
바카라을 읽는 사람도 있었고 눈을 감은 채 낮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신기했다.
한국에서는 공원에 와도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이곳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공원에 오는 것 같았다.
나도 차츰 그들을 닮아갔다.
바카라 한 권을 들고 가서 나무 아래 앉았다.
몇 장 읽다가 하늘을 바라보고, 다시 몇 장 읽다가 꽃을 구경했다.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오후였다.
무엇보다 내게는 아주 중요한 장점이 하나 있었다.
개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나는 원래 개를 무서워했다.
유럽에 와 보니 사람들이 얼마나 개를 사랑하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버스에도 개가 타고 트램에도 개가 탔다. 거리의 카페에서도 주인의 발밑에 커다란 개가 얌전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프라하의 개들은 대부분 얌전했다.
주인의 말을 잘 들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나름의 규칙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얌전한 개라고 해도 덩치가 크면 나는 먼저 긴장했다.
큰 개 한 마리가 내 쪽으로 걸어오기만 해도 몸이 굳었다.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지나가는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마라.’
가끔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이 큰 개를 데리고 트램에 타면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개 주인이 보기에는 내가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개가 들어올 수 없는 뜨로야의 정원은 내게 뜻밖의 안식처가 되었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음이 놓였다.
오늘은 갑자기 큰 개가 달려올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편안했다.
어쩌면 그래서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던 것 같다.
━━━━━━━━━━━━━━━━━━
■ 포도밭 속에서 보낸 한나절
━━━━━━━━━━━━━━━━━━
정원 둘레에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다.
밖에서 바라보면 작은 공원이 넓은 포도밭 안에 폭 안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졌다.
그곳에는 작은 야외 카페도 있었다.
거창한 메뉴는 없었다.
커피와 간단한 샌드위치, 케이크 몇 조각 정도를 팔았다.
한쪽에는 야외 바비큐를 하는 곳도 있었다.
고기를 굽기 시작하면 냄새가 정원까지 퍼졌다.
아무리 점잖게 바카라을 읽고 있어도 그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바카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소시지와 빵을 사서 서서 먹는 사람도 있었고, 갓 구운 돼지고기에 맥주 한 잔을 곁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도 결국 그 냄새를 이기지 못했다.
“우리도 조금 먹을까?”
흑맥주 한 잔과 바비큐 한 조각을 사서 나누어 먹었다.
좋은 곳에서 먹는 음식은 이상하게 더 맛있다.
특별한 요리가 아니어도 그날의 햇살과 바람이 양념이 된다.
나는 커피 한 잔만 있어도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정원을 걷다가 힘들면 나무 아래 앉고, 다시 일어나 꽃을 보러 갔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으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한번 들어가면 거의 문을 닫을 시간이 될 때까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프라하에서 나는 자꾸 걷고 있었다.
아이의 학교생활을 걱정하고, 한국에 두고 온 일들을 생각하고, 낯선 나라에서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을 견디며 하루에도 몇 시간씩 걸었다.
그런 내게 뜨로야의 정원은 걷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그저 앉아 있어도 되는 곳.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래서 자꾸 그곳으로 갔는지도 모른다
https://sanpotoeurope.blogspot.com/2026/09/600.html
━━━━━━━━━━━━━━━━━━
■ 버스 정류장의 작은 포스터
━━━━━━━━━━━━━━━━━━
내가 처음 뜨로야의 정원을 알게 된 것은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던 작은 벽보 때문이었다.
봄꽃 전시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체코어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림과 몇 개 아는 단어를 가지고 내용을 짐작했을 뿐이었다.
‘꽃 전시회를 하나 보다.’
그 정도였다.
그 포스터 한 장을 보고 찾아간 곳이 프라하 생활의 단골 장소가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꽤 멀다고 생각했다.
트램을 타고 다시 버스로 갈아타야 했으니 일부러 찾아가기에는 번거로운 곳이었다.
그런데 몇 번 다니다 보니 길이 익숙해졌다.
트램에서 내려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지, 어느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몸이 먼저 기억했다.
낯선 도시가 내 도시가 되어간다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지도를 보지 않고도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되는 것.
정류장 이름을 다 읽지 못해도 어느쯤에서 내려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여기는 내가 아는 곳이야.’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뜨로야로 가는 길이 그렇게 내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관광객들에게 뜨로야는 동물원이 있는 곳이었지만 내게는 조용히 바카라을 읽고 커피를 마시던 정원이 있는 곳이었다.
사람마다 한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은 참 다르다.
━━━━━━━━━━━━━━━━━━
■ 트램을 타고 프라하를 배우다
━━━━━━━━━━━━━━━━━━
뜨로야에서 돌아오는 길도 나는 좋아했다.
가끔 꼬빌리시에 들러 장을 보기도 했다.
24번 트램에는 직선으로 길게 내려오는 구간이 있었는데 그곳을 지날 때면 트램이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나는 그 구간이 재미있었다.
어떨 때는 일부러 내려 반대 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한번 그 길을 타고 내려온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별일도 아닌데 그때는 그런 것들이 즐거웠다.
프라하 1구역은 늘 관광객들로 붐볐다.
구시가지 광장과 까렐교 주변은 아름답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트램을 타고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도시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거리는 조용했고 집들은 단정했다.
관광객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프라하가 나타났다.
나는 그런 프라하를 좋아했다.
그래서 시간이 남으면 트램을 탔다.
이쪽 종점에서 저쪽 종점까지.
특별한 목적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골목과 동네의 위치를 익혔다.
어느 트램이 강을 따라가는지, 어느 노선을 타면 시장이 나오는지, 어느 곳에서 갈아타면 프라하성으로 갈 수 있는지 하나씩 몸으로 배웠다.
프라하는 내게 지도로 배운 도시가 아니었다.
트램 창밖을 바라보며 조금씩 익힌 도시였다.
━━━━━━━━━━━━━━━━━━
■ 숲길을 함께 걸어 준 아이
━━━━━━━━━━━━━━━━━━
뜨로야로 가는 길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다른 쪽 종점에서 내려 큰 숲길을 가로질러 걸어갈 수도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작은 강을 만나기도 했고, 배를 타고 건너가는 길도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숲길을 지나 뜨로야까지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자전거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대신 재림이가 함께 가주는 날이면 숲길을 걸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숲속에서 갑자기 큰 개라도 만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림이가 옆에 있으면 용감해졌다.
“같이 걸어가자.”
내가 말하면 아이는 벌써부터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 그냥 버스 타고 가면 안 돼?”
“이 길이 얼마나 좋은데.”
결국 아이는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한 시간 가까이 숲길을 걸었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고 작은 길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신이 나서 이쪽저쪽을 바라보며 걸었지만 재림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말이 없어졌다.
“다리 아파.”
“조금만 더 가면 돼.”
그 ‘조금만’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지 모른다.
마침내 동물원 입구가 보이면 아이의 얼굴이 살아났다.
그리고 나는 약속대로 맛있는 것을 사줘야 했다.
그것이 나와 함께 긴 숲길을 걸어 준 대가였다.
━━━━━━━━━━━━━━━━━━
■ 감자요리와 슈니첼
━━━━━━━━━━━━━━━━━━
동물원 입구 근처의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재림이는 기다렸다는 듯 메뉴를 골랐다.
따뜻하게 삶은 감자 위에 치즈를 올린 음식.
슈니첼.
파스타.
한참 자라는 남자아이의 식욕은 대단했다.
두 사람이 먹을 양을 혼자서도 거뜬히 먹었다.
“그걸 다 먹으려고?”
내가 물으면 재림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엄마가 걸어오자고 했잖아. 배고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나는 커피 한 잔과 빵 정도면 충분했지만 아이는 달랐다.
식비가 제법 들었다.
그래도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좋았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아이가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연습이 있는 날이면 끼니를 거르는 일도 많았고, 혼자 있으면 대충 먹고 마는 날도 있었다.
그러니 내 앞에서 잘 먹는 날에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더 먹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의 접시에 내 음식까지 덜어주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뜨로야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도 어쩌면 정원의 꽃이 아닐지 모른다.
숲길을 걷느라 힘들었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커다란 접시를 깨끗이 비우던 재림이의 얼굴.
그 평범한 한 끼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
■ 봄이 오면 생각나는 곳
━━━━━━━━━━━━━━━━━━
한국으로 돌아온 뒤 봄이 오면 가끔 뜨로야가 생각났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계절이면 더 그랬다.
포도밭 사이에 숨어 있던 작은 정원.
나무 아래 놓여 있던 의자.
햇볕을 받으며 바카라을 읽던 사람들.
야외 카페에서 마시던 커피.
어디선가 풍겨오던 바비큐 냄새.
그리고 큰 개를 만날 걱정 없이 마음 놓고 걸었던 길.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대단한 것을 말하기는 어렵다.
거대한 성당도 없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본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바카라을 읽었고,
커피를 마셨고,
꽃을 바라보았고,
가끔 재림이와 숲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장소들이 더 오래 그립다.
여행자는 유명한 장소를 기억하지만, 한 도시에서 살아본 사람은 자신이 쉬었던 장소를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뜨로야는 관광지가 아니었다.
프라하에서 잠시 숨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곳이었다.
봄이 오면 그 정원이 다시 궁금해진다.
올해도 수국이 피었을까.
포도밭은 여전히 정원을 둘러싸고 있을까.
사람들은 지금도 나무 아래 의자에 누워 바카라을 읽고 있을까.
작은 카페에서는 여전히 커피를 내리고 있을까.
그리고 그 숲길을 걷다 보면,
다리가 아프다며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나와 함께 걸어주던 그 시절의 재림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 다시 프라하에 간다면 뜨로야로 가는 날에는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트램을 타고 천천히 도시 밖으로 나가,
버스를 갈아타고,
익숙했던 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정원 어딘가에 조용히 앉아 한나절을 보내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때의 나처럼.
프라하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조금씩 나만의 장소를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https://youtu.be/tpShNmgrvz0?si=AskYzDFs3O5x1k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