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mJjk7vbVaOY?si=CCGuBqI5xoX1g2s1프라하, 그리움이 머무는 곳
제7화
드보르자크 생가
■ 작은 기차를 타고 네라호제베스로
체코 네라호제베스 역.
드보르자크의 생가가 있는 작은 마을이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네 량짜리 작은 기차를 타고 한 시간쯤 달리면 도착하는 간이역이었다.
그날 재림이가 단원으로 활동하던 오케스트라가 이 마을의 옛 영주가 살던 작은 성에서 드보르자크 기념 음악회를 열게 되었다. 덕분에 나도 함께 길을 나설 수 있었다.
기차가 프라하 중앙역을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의 풍경은 금세 달라졌다.
붉은 지붕과 오래된 건물이 이어지던 시내가 조금씩 멀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블타바 강이 기차 옆을 따라오기 시작했다.
강과 철길이 나란히 이어졌다.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금방 흘렀다.
강을 따라 작은 마을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집들은 대부분 크지 않았다. 낮은 지붕 아래 작은 창문이 달린 집도 있었고, 정원에 꽃을 심어놓은 집도 있었다. 어떤 곳에는 정말 손바닥만 한 집들이 몇 채씩 모여 있었다.
‘저건 캠핑장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바라보니 캠핑장 같지는 않았다. 작은 울타리와 정원이 있었고, 오래 가꾸어 온 흔적도 보였다.
저 작은 집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아침이면 강가를 산바카라하고, 저녁이면 작은 부엌에서 수프를 끓여 먹을까.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집 하나에도 이야기를 만들어 붙이다 보니 한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기차는 어느새 네라호제베스 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
■ 드보르자크가 태어난 작은 집
━━━━━━━━━━━━━━━━━━
역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역무원도 없고 매표소도 없는 작은 무인역이었다.
우리는 기차에서 내려 철길을 건넜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무모했지만 당시에는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철로를 건너고 있었다.
작은 역사 옆에는 조그마한 예배당이 하나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예배당 맞은편 길 건너에 드보르자크의 생가가 있었다.
처음 마주한 순간 조금 의외였다.
세계적인 작곡가가 태어난 집이라 해서 나는 마음속으로 무언가 대단한 공간을 상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생가는 아주 작고 소박했다.
드보르자크의 아버지는 푸줏간과 여관을 함께 운영했다고 한다. 지금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건물에서는 여전히 평범한 시골집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입구를 지나자 좁은 복도와 작은 방들이 이어졌다.
‘정말 여기서 드보르자크가 태어났구나.’
그 사실을 생각하자 갑자기 공간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음악가도 처음부터 위대한 음악가였던 것은 아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였고, 이 좁은 방과 골목을 뛰어다니며 자랐을 것이다.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조금 더 넓은 전시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는 드보르자크의 사진과 악보,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 장 한 장 바라보다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 학생들과 수없이 연주하고 가르쳤던 드보르자크의 음악이 갑자기 한 사람의 삶으로 다가왔다.
악보 속에만 있던 이름이 사람이 되는 순간이었다.
https://parkminheelibrary.blogspot.com/2026/08/blog-post_25.html
━━━━━━━━━━━━━━━━━━
■ 한국어 안내문 앞에서
━━━━━━━━━━━━━━━━━━
생가 안에는 여러 언어로 된 안내 소바카라자가 놓여 있었다.
영어와 독일어, 일본어 같은 익숙한 언어들 사이에서 나는 뜻밖의 것을 발견했다.
한국어였다.
“어머, 한국말도 있네.”
나도 모르게 반가운 소리가 나왔다.
멀리 체코의 작은 마을까지 찾아오는 한국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까.
아니면 드보르자크의 음악이 한국에서도 그만큼 사랑받고 있다는 뜻일까.
그 작은 소바카라자를 손에 들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타국에서 한국어를 만날 때는 언제나 이상한 반가움이 있었다.
마치 사람 많은 곳에서 우연히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마음이 풀렸다.
기념관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170여 년 전 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세계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음악은 참 오래 살아남는다.
사람의 생은 끝나도 그가 남긴 선율은 국경을 건너고 시대를 넘어 사람들을 다시 한자리에 모은다.
그날 네라호제베스의 작은 집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음악이 가진 긴 생명에 대해 생각했다.
━━━━━━━━━━━━━━━━━━
■ 절벽 위의 작은 성
━━━━━━━━━━━━━━━━━━
드보르자크의 생가에서 언덕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오래전 이 지역의 영주가 살았던 성이 나온다.
아래에서 바라보면 절벽 위에 아담하게 자리한 작은 성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올라가 보니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성벽처럼 건물들이 둘러서 있었고 그 안쪽에는 넓은 광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날은 드보르자크를 기념하는 행사 때문인지 성 안이 유난히 활기찼다.
광장 한쪽에서는 체코 음식과 포도주를 맛볼 수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전통놀이가 열리고 있었다. 작은 벼룩시장도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뛰어다녔고 어른들은 잔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숙한 음악 축제라기보다 마을 전체가 함께 즐기는 잔치 같았다.
그 모습이 좋았다.
드보르자크의 음악이 박물관 안에서만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 사람들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 안의 건물 일부는 옛 모습을 재현해 관광객들에게 공개되어 있었고, 전망 좋은 자리에는 레스토랑과 공연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재림이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홀은 성벽 끝 쪽에 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천장이 높았고 창밖으로 마을의 들판과 언덕이 한눈에 들어왔다.
벽난로가 있는 밝은 공간이었다.
‘여기서 드보르자크를 듣는구나.’
나는 창가에 서서 한동안 밖을 바라보았다.
프라하의 화려한 공연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오히려 작곡가가 태어난 마을과 너무 가까워서, 음악이 고향으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
■ 연주회 10분 전
━━━━━━━━━━━━━━━━━━
연주가 시작되기 전 나는 홀 한쪽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직 자리는 많이 비어 있었다.
‘오늘 관객이 별로 없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연주 시작 10분 전쯤이 되자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조금 전까지 비어 있던 좌석이 금세 가득 찼다.
관객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었다.
독일이나 인근 다른 나라에서 여행 온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옷차림도 화려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시골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소박해 보였다.
그런데 연주가 시작되자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홀 안이 조용해졌다.
누구 하나 뒤척이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음악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듣는 사람도 있었고 악장을 따라 고개를 살짝 움직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클래식 음악이 이들에게는 특별한 날에만 찾아가는 고급문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연주회 티켓 가격도 결코 싸지 않았는데 노인들이 직접 표를 사서 공연장에 들어와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나는 지휘자가 준 초대권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초대권조차 지휘자가 자신의 돈을 주고 구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그저 초대권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나를 위해 자신의 몫을 내어준 것이었다.
그 작은 사실 하나가 음악회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
■ 드보르자크의 고향에서 듣는 드보르자크
━━━━━━━━━━━━━━━━━━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절벽 위의 작은 성.
높은 천장.
창밖으로 보이는 들판.
그리고 그곳에 흐르는 드보르자크의 음악.
나는 오랫동안 수많은 공연장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크고 화려한 콘서트홀도 있었고, 훌륭한 연주자들의 무대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의 음악회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마 장소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곡가가 태어난 마을.
그가 어린 시절 바라보았을 강과 들판.
그리고 그의 생가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오래된 성.
그곳에서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 음악을 전혀 다르게 들리게 했다.
음악은 악보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살아온 풍경과 그 사람이 사랑한 언어, 냄새와 바람, 고향의 기억 속에서 태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보르자크도 저 들판을 바라보았을까.’
‘저 강을 따라 걸었을까.’
창밖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거리는 가까웠다.
백 명 남짓한 사람들이 작은 공간에 모여 함께 숨을 쉬었다.
음악이 커질 때면 홀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았고, 조용한 부분에서는 사람들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음악이 아직 방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
■ 드보르자크 공원의 작은 레스토랑
━━━━━━━━━━━━━━━━━━
음악회가 끝난 뒤 우리는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드보르자크 생가 뒤쪽에는 생가보다 훨씬 넓은 공원이 있었다.
작은 집에서 태어난 작곡가의 이름을 가진 넓은 공원이라니.
조금 재미있기도 했다.
공원에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피어 있었고 수국도 활짝 피어 있었다.
햇살은 따뜻했다.
나는 천천히 공원을 걸었다.
공원 끝에는 작은 레스토랑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 슈니첼과 감자 요리를 주문했다.
사실 나는 슈니첼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유럽에 오면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도 했고, 때로는 기름져서 많이 먹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작은 마을에서 먹은 슈니첼은 달랐다.
겉은 고소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과하게 기름지지도 않았다.
곁들여 나온 감자는 더 단순했다.
살짝 삶거나 쪄낸 감자 위에 파슬리를 조금 뿌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슈니첼과 너무 잘 어울렸다.
“이상하네. 왜 이렇게 맛있지?”
나도 모르게 말했다.
아마 음식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음악회를 마치고 앉아 있었고, 낯선 마을이 어느새 마음에 들어와 있었다.
식사 전에 주문했던 달콤한 흑맥주 한 잔도 한몫했을 것이다.
체코의 식당에서는 식사 전에 음료를 주문하는 일이 자연스러워 우리도 때때로 그 핑계로 흑맥주나 와인을 한 잔씩 마시곤 했다.
그날의 흑맥주는 유난히 부드러웠다.
한 모금 마시고 공원을 바라보았다.
여행의 기억은 참 이상하다.
거대한 성당이나 유명한 광장보다 어느 작은 마을의 감자 한 접시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
■ 다시 작은 기차를 타고 싶다
━━━━━━━━━━━━━━━━━━
세월이 흘러도 네라호제베스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작은 기차다.
프라하 중앙역을 떠나 블타바 강을 따라 달리던 네 량짜리 기차.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던 작은 집들.
정원에 핀 꽃.
강가의 조용한 마을.
그리고 역무원 하나 없던 작은 간이역.
그날은 드보르자크의 생가를 보러 간 날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작곡가의 음악보다 그의 고향을 먼저 만난 것 같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태어난 곳을 한번 걸어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하늘 아래에서 자랐는지.
어떤 강을 보았는지.
어떤 사람들의 말과 웃음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그것을 알고 나면 그의 음악도 조금 다르게 들린다.
다시 유럽에 갈 수 있다면 나는 네라호제베스를 꼭 한 번 더 찾고 싶다.
서두르지 않고 작은 기차를 타고 가고 싶다.
이번에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집들을 더 오래 바라보고 싶다.
드보르자크의 생가에도 다시 들어가 보고,
언덕 위 성까지 천천히 걸어 올라가고 싶다.
운이 좋다면 그 작은 홀에서 다시 음악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공원 끝의 레스토랑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곳에 앉아 다시 슈니첼과 감자를 주문하고 싶다.
달콤한 흑맥주 한 잔도 함께.
햇살이 따뜻하고 수국이 가득 피어 있던 드보르자크의 마을.
그곳에 다시 갈 수 있다면 이번에는 아무 일정도 만들지 않고 한나절을 그대로 내어주고 싶다.
음악을 듣고,
강을 바라보고,
작은 마을길을 걷다가,
해가 기울면 다시 꼬마 기차를 타고 프라하로 돌아오는 것.
어쩌면 내가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은 드보르자크의 생가가 아니라 그날 그곳에서 음악을 듣던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프라하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 하나가 그렇게 오래 내 마음속에 남았다.
https://youtu.be/-hD7V-NAq1Q?si=OmxMZ36bdiesd2Y3
https://youtu.be/7E7Ryec1CSA?si=F8h5UcHOcJ2z7sc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