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그리움이 머무는곳
프라하, 그리움이 머무는 곳
제4화
뻬뜨라 교수님
■ 아이가 만난 새로운 스승
재림이가 프라하 음악원에 들어간 뒤 가장 자주 들려주었던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뻬뜨라 교수님에 관한 것이었다.
교수님의 이름이 처음부터 내게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의 나는 한국과 프라하 사이를 오가며 아이가 낯선 나라에서 잘 견디고 있는지, 밥은 제때 먹는지, 체코어 수업은 따라갈 만한지만 걱정하고 있었다.
어떤 교수에게 첼로를 배우는지보다 아이의 얼굴이 밝은지 어두운지가 더 중요했다.
“새 교수님은 어떠니?”
내가 전화를 걸어 물으면 재림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하곤 했다.
“좋은 분 같아.”
처음에는 그 말이 전부였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마음을 길게 설명하는 편이 아니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했고, 속상한 일이 생겨도 별일 아니라고 넘겼다. 그런 아이가 교수님에 관해서만큼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엄마, 교수님은 연주부터 시키지 않아.”
“그럼 뭘 하시는데?”
“먼저 말을 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봐.”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
음악원 교수라면 당연히 악보를 펼치고 음정이나 활 쓰는 방법부터 가르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유럽의 음악교육은 냉정하고 엄격할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도 있었다.
그런데 뻬뜨라 교수님은 아이에게 첼로보다 먼저 마음을 물었다.
그 사실이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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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복도 끝의 레슨실
재림이가 처음 뻬뜨라 교수님의 레슨실 문 앞에 섰던 날의 이야기는 훗날 여러 번 들었다.
프라하 음악원의 복도는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다고 했다. 높은 천장 아래로 희미한 햇빛이 들어오고, 닳은 바닥에서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벼운 소리가 났다.
복도 저편에서는 누군가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있었고, 닫힌 문 안에서는 피아노 반주가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수많은 학생이 악기를 들고 그 복도를 지나갔을 것이다. 누군가는 꿈을 이루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의 한계 앞에서 좌절했을 것이다.
그날 재림이는 첼로를 메고 복도 끝까지 걸어갔다.
문에는 교수님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아이는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낯선 나라에서 외국인 교수에게 처음 레슨을 받는 일은 전혀 다른 긴장으로 다가왔다.
체코어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고, 연주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두려웠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에서 스스로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어린 마음을 더 무겁게 했을 것이다.
재림이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넓은 창으로 오후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고 했다. 방 안에는 피아노와 악보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오래된 연주회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뻬뜨라 교수님이 아이를 바라보며 먼저 웃어 주었다.
그 미소 하나가 아이의 긴장을 조금 풀어 주었던 모양이다.
교수님은 곧바로 연주를 시키지 않았다.
어디에서 왔는지, 프라하 생활은 어떤지, 가족은 한국에서 잘 지내는지 천천히 물었다.
아이는 서툰 체코어와 영어를 섞어 대답했다.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한참 머뭇거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교수님은 말을 재촉하지 않았다.
아이의 짧은 문장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재림이는 그때 처음 알았다고 했다.
기다려 주는 것도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https://minhee.cellistlibrary.com/2026/06/farewell-to-switzerland-after-spending.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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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편하게 연주해 보게”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교수님은 첼로를 꺼내 보라고 했다.
“자네가 좋아하는 곡을 마음 편하게 연주해 보게.”
마음 편하게 연주하라는 말이 오히려 아이를 더 긴장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평가받는 자리에서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유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재림이에게는 한 음 한 음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시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아이는 활을 들었다.
처음 몇 마디는 조심스러웠고,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곡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자신의 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연습했던 곡이었고, 낯선 방 안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손에 익은 첼로뿐이었다.
연주가 끝난 뒤 교수님은 곧바로 잘했다거나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짧은 침묵이 재림이에게는 아주 길게 느껴졌다고 했다.
교수님은 악보를 덮고 조용히 물었다.
“이 곡에서 자네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재림이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어느 부분에서 활을 많이 써야 하는지, 어떤 음정을 조심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악보에 충실하고, 선생님이 지적한 부분을 고치고, 틀리지 않게 연주하는 것이 좋은 연주라고 배워 왔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말은 낯설었다.
아이는 한참 동안 첼로의 줄만 내려다보았다고 했다.
교수님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알지 못해도 괜찮네. 그러나 앞으로는 음을 연주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보게. 이 음악을 왜 연주하는지,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은지 말이야.”
그날 재림이는 새로운 숙제를 하나 받아 왔다.
악보에는 적혀 있지 않은 숙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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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에게 들려준 첫 수업
수업을 마친 뒤 아이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한국은 이미 저녁이었고, 프라하는 아직 오후였다.
수화기 너머로 트램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재림이는 음악원을 나와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첫 수업은 어땠니?”
내가 묻자 아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좀 이상했어.”
“뭐가 이상해?”
“교수님이 계속 질문을 해.”
“무슨 질문?”
“왜 그렇게 연주했는지, 이 곡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대답하면 되지.”
“그게 생각보다 어려워.”
아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진지했다.
그제야 나는 그 질문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는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성실하게 따라가는 학생이었다. 연습하라고 하면 연습했고, 고치라고 하면 고쳤다. 자신의 판단보다 선생님의 지시를 먼저 믿었다.
그런 아이에게 왜 그렇게 연주했는지를 묻는 것은 음악뿐 아니라 삶의 태도까지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교수님 같구나.”
내 말에 재림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응. 나를 혼내려고 묻는 건 아닌 것 같아. 내가 생각하게 하려고 묻는 것 같아.”
전화를 끊고도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때의 나는 그저 아이가 좋은 스승을 만난 것 같아 안심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면, 뻬뜨라 교수님이 던진 질문들은 아이의 연주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질문들은 재림이가 자신의 생각을 가진 음악가로 성장하도록 이끌었고, 훗날 삶의 여러 갈림길 앞에서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아이는 첼로를 배우기 위해 프라하로 갔다.
하지만 뻬뜨라 교수님은 그 아이에게 음을 연주하는 법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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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으로 시작되는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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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재림이가 가장 자주 들려준 이야기는 교수님의 질문이었다.
"오늘은 연습을 얼마나 했나?"가 아니라,
"오늘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이 곡을 연주했나?"
그 질문이 먼저였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이도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음악원에 들어오기까지 수없이 많은 레슨을 받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묻는 선생님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대부분은 음정이 맞았는지, 활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사용했는지, 프레이징이 적절했는지를 살폈다.
물론 그것도 음악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뻬뜨라 교수님은 그보다 먼저 학생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했다.
"왜 그렇게 연주했지?"
"그 부분에서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나?"
"이 곡을 처음 들은 사람이 무엇을 느끼길 바라나?"
재림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질문들을 계속 떠올렸다고 했다.
정답은 없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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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보에는 없는 것
어느 날 교수님은 연주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셨다고 한다.
창밖에는 늦가을의 프라하가 펼쳐져 있었다.
붉은 지붕 위로 햇살이 내려앉고, 멀리 프라하성의 첨탑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잠시 풍경을 바라보던 교수님이 물었다.
"프라하를 좋아하나?"
재림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교수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하게 될 걸세."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도시를 많이 걸어보게."
재림이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걷는 것이 연주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러나 교수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블타바 강도 걷고, 까렐교도 건너 보고, 이름 없는 골목도 천천히 걸어보게.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를 듣고, 저녁 종소리도 들어보게.
그 모든 것이 자네의 음악이 될 걸세."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 생각했다.
좋은 연주자는 연습실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교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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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재림이의 전화는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에는 연습이 힘들다는 이야기나 학교생활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프라하의 계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엄마, 오늘은 블타바 강에 안개가 정말 예뻤어."
"학교에서 집까지 일부러 걸어왔어."
"까렐교에는 관광객이 많았는데 다리를 건너는 동안 첼로 선율이 계속 들리는 것 같았어."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아이가 조금씩 프라하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낯선 도시가 더 이상 견뎌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살아가는 공간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뻬뜨라 교수님은 첼로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프라하를 가르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프라하는 그렇게 조금씩 재림이의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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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때를 자주 떠올린다.
좋은 스승은 학생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재림이는 프라하에서 그런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그 만남은, 머지않아 또 하나의 큰 선택 앞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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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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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의 시간이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재림이는 또 하나의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병역의 의무였다.
유학을 떠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막상 그 시간이 가까워지자 아이의 마음은 무거워졌다고 했다.
겨우 낯선 도시에 적응했고, 학교생활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뻬뜨라 교수님과의 수업이 이제야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는데, 모든 것을 멈추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재림이는 조심스럽게 교수님께 그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잠시 말없이 듣고 계시던 교수님은 아이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피해야 할 일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나야 하는 시간일세."
재림이는 교수님께서 어떻게든 학교에 남을 방법을 찾아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교수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다.
"좋은 음악가는 자신의 삶을 피하지 않는다."
그 한마디는 재림이의 마음을 오히려 편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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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은 학생의 인생까지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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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을 앞둔 마지막 수업에서 교수님은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처럼 연주를 듣고,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함께 악보를 들여다보았다.
수업이 끝날 무렵 교수님은 재림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씀하셨다.
"다녀오게.
프라하는 없어지지 않네.
음악도 자네를 기다릴 걸세."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아이에게 긴 위로가 되었다.
살아가다 보면 잠시 멈추어야 하는 시간이 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가는 길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라는 사실을 교수님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나는 훗날 재림이에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 생각했다.
좋은 스승은 학생을 붙잡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믿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https://minhee.cellistlibrary.com/2026/07/a-bowl-of-ramen-under-night-sea-life-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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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가 남겨 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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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어느덧 많이 흘렀다.
그때의 학생은 이제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후배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삶을 음악으로 이어 가고 있다.
나는 가끔 재림이와 프라하 이야기를 나눈다.
블타바 강의 바람도, 까렐교의 새벽도, 프라하성의 노을도 이야기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장 오래 이어지는 이야기는 늘 사람 이야기다.
"엄마, 뻬뜨라 교수님 기억나?"
그 한마디가 나오면 우리는 한동안 그분의 이야기를 한다.
교수님의 수업 방식, 따뜻한 미소, 학생을 끝까지 믿어 주던 눈빛….
도시는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변한다.
골목도 바뀌고, 가게도 바뀌고, 사람들도 떠난다.
하지만 사람에게 받은 따뜻함은 오래 남는다.
그래서 지금도 프라하를 떠올리면 아름다운 풍경보다 먼저 한 사람의 얼굴이 생각난다.
재림이에게 뻬뜨라 교수님은 음악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믿어 준 스승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을 따뜻하게 품어 주었던 또 한 사람의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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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프라하로 보내던 날, 나는 좋은 연주자가 되어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프라하는 내 아들에게 음악보다 더 귀한 선물을 안겨 주었다.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
스스로 생각하는 힘.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한 사람의 스승.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재림이는 프라하에서 또 하나의 인연을 마음에 품게 되었고, 그 인연은 세월이 흘러도 그의 음악 속에, 그리고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노을이 가장 아름답게 내려앉던 **프라하성**으로 다시 걸음을 옮겨 본다.
**제5화 「해 질 녘의 프라하성」**
https://youtu.be/Od91S-xK9Jg?si=FjhIIjbvcmqUO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