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가 첼리스트가 되기까지

프라하, 그리움이 머무는 곳

by박민희


제3화

그 아이가 첼리스트가 되기까지


■ 취미로 시작한 첼로

재림이가 처음 첼로를 배운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처음부터 전공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아이가 음악을 가까이하며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취미였다. 피아노보다 몸집이 큰 첼로를 작은 아이가 품에 안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귀엽고 대견했다.

아이를 처음 가르쳐 주신 분은 나의 은사님이기도 한 첼로 교수님이었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이 아이, 전공을 시켜 보면 어떻겠어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교수님. 전공은 절대 안 됩니다. 취미로만 시키려고요.”

교수님은 아이가 첼로를 하기에 좋은 신체 조건을 가졌고 음악적인 감각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단호했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그 길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연습만 많이 한다고 되는 길도 아니었다. 재능과 노력, 경제적인 뒷받침, 좋은 스승과 기회가 모두 필요했다. 그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끝까지 음악가로 살아남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재림이는 공부도 곧잘 했다. 나는 아이가 음악보다는 조금 더 안정적인 길을 걷기를 바랐다. 의대나 공대에 진학해 평범한 온라인 게임인의 삶을 살면서 첼로는 좋은 취미로 오래 간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재림이는 정말 취미로만 첼로를 배웠다. 스즈키 교본과 좋아하는 소품을 연주했고, 내 제자들이 일 년에 한 번 문화회관 무대에 오를 때면 그 사이에 끼어 함께 연주했다.

그런데 해마다 무대에 서는 경험이 쌓이면서 아이 안에도 작은 꿈이 자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재림이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평소에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무대에 올라가면 표정이 달라졌다. 첼로를 안고 연주할 때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에너지가 아이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그저 기특하게만 생각했다.

취미로 하는 아이가 무대를 즐기니 참 다행이라고.

아이가 그 무대 위에서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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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왜 나만 안 된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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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재림이는 예술고등학교에 가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잠시 생긴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바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이의 태도는 단호했다.

“엄마, 나 첼로 전공할래.”

나는 즉시 반대했다.

“너무 늦었어. 다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전공 준비를 했어. 지금 시작해서 어떻게 따라가려고 그래?”

“그래도 해 보고 싶어.”

“첼로는 취미로 해도 되잖아.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첼로는 평생 즐기면서 하면 되지.”

내가 말을 할수록 아이의 얼굴은 굳어졌다.

재림이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는 음악을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면서 왜 자기에게만 안 된다고 하느냐고 따졌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의 꿈은 응원하면서도 정작 내 아들의 꿈 앞에서는 현실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인 나는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믿었고, 음악가인 나는 그 길의 고단함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남자가 음악을 전공하면 얼마나 힘든지 알아?”

“엄마가 그 길을 아니까 더 말리는 거야.”

“아빠처럼 평범하게 온라인 게임 생활하면서 안정적으로 사는 게 나을 수도 있어.”

그러나 내 말은 아이에게 걱정이 아니라 거절로 들렸던 것 같다.

우리의 대치는 거의 일 년 가까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고집을 꺾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재림이는 점점 말을 하지 않았고,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평소 반에서 1, 2등을 하던 아이가 공부를 놓아 버렸다. 성적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학원을 보내도 소용이 없었다. 으름장을 놓아도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재림이가 시험지를 백지로 냈다는 것이었다.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참았던 감정을 쏟아냈다.

“왜 이러는 거야?”

“첼로를 못 하게 한다고 공부까지 안 할 거야?”

“도대체 왜 꼭 첼로여야 하는데?”

나는 화가 나 있었고, 아이도 오랫동안 쌓아 둔 감정을 더는 숨기지 못했다.

“엄마는 다른 애들한테는 다 하라고 하잖아.”

“왜 나만 안 된다고 해?”

“나는 정말 첼로를 하고 싶은데 엄마는 한 번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잖아.”

나는 다시 현실을 말했다.

지금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음악가의 삶은 생각처럼 아름답지 않다고, 의대나 공대에 진학한 뒤 취미로 연주하면 되지 않느냐고 아이를 몰아붙였다.

그때는 그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 최선이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아이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이를 설득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었다.

https://minhee.cellistlibrary.com/2026/06/songs-of-alps-2-frankfurt-beginning-of.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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