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낭만 VS 집필 노동
전업작가로 먹고사는 게 꿈인 사람들이 있다. 바카라 읽고 글만 쓰고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한때 그런 작가들의 인터뷰, 수상 소감, '작가의 글' 등을 일부러 찾아 읽었다. 글 써서 먹고사는 노하우가 적혀 있을까 해서. 언젠가 소설 쓰는 전성태 작가의 인터뷰를 보니,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글 쓰는 거 말고는 하는 일 없는 네가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그걸로 생활비를 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고.
마거릿 올리펀트라는 작가가 있다. 온라인카지노 돌아다니다 만난 마봉 작가가 소개해 줘서(응?) 알게 됐다.
1828년에서 1897년까지 살다 간 스코틀랜드 출신 여성 소설가다.
올리펀트의 삶은 고딕소설보다 더 처절했는데 남편과 아이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비극 속에서도 남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평생 120권이 넘는 바카라을 써 내려갔다.
마봉 작가의 소개 글을 보고 궁금해서 찾아봤다. 어떻게 살았길래 처절하다는 건가. 결혼 7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먼저 떠났다. 결핵이었다. 첫 번째 이별은 아니었다. 아이 넷을 어릴 때 잃었으니까. 이쯤 되면 시절이 잔혹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러면 남은 가족의 생계랄 게 있나? 아이 둘이 더 있었다 돌봐야 할 조카도 셋이 있었다. 대가족이다. 과연 글쓰기로 먹여 살릴 수 있을까. 다시 마봉 작가의 글을 보면, 다행히 글발도 있고 이름도 있는 작가였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대에는 월터 스코트나 찰스 디킨스에 비견될 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빅토리아 여왕이 그녀의 바카라을 즐겨 읽었을 정도였고, 비평가들은 그녀의 유령 소설들을 두고 영문학 역사상 가장 우아하고 설득력 있는 초자연적 이야기라고 극찬했다.
그런데 그 덕에 평생을 죽어라 글만 썼으니 이게 진짜 다행인 건지는 모르겠다. 그는 만 69세까지 살았다. 소설, 평론, 전기, 역사서 등 12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그중 소설이 90편 정도라고. 참고로 찰스 디킨스는 15편 정도 썼다. 올리펀트가 첫 소설을 쓴 건 스물한 살 때였다. 집필 기간 약 50년을 작품 수로 나누면? 그의 노동량이 대략 보인다. 장편소설을 1년에 2~3편 썼단다. 다작의 이유는 누가 봐도 생계유지. 누군가는 한 매체에 소설도 쓰고 평론도 써서 돈 받아가는 그를 두고 흉을 보기도 했겠지. 아래는 그가 조지 엘리엇의 전기를 읽은 뒤 자서전에 적은 내용이다. 조지 엘리엇은 출판사 협상이나 악평 차단 면에서 같이 살던 평론가의 전적인 지원을 받았다.
나는 그녀를 조금 부러워하는 걸까? […] 살면서 얼마나 불리한 조건이었나! 그녀처럼 정신적 온실 속에서 보살핌을 받았다면 나는 더 잘했을까?
그렇게 애를 쓰고 인정도 받았으면 좀 누리고 행복했다면 좋으련만. 그의 두 아이는 삼십 대에 세상을 떴다. 자서전에 그는 "이제 나는 혼자다. 더 이상 쓸 수가 없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도 몸에 밴 노동의 습관 때문에 죽기 직전까지 펜을 쥐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둘째 아들이 떠난 지 3년 뒤인 1897년, 그녀 역시 병으로 세상을 떴다.
나는 출판 일을 하니까 글쓰기가 노동이라는 데에 당연히 동의한다. 그 노동에서 예술과의 접점을 보여주는 작가들을 내심 존경한다. 거기에 더해 그것으로 삶을 살아낸 작가들은 경외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다. 먹고살 정도로 쓴다는 것 그건 대체 어떤 경지일까.
이 글의 시작은 마봉 작가다. 이름에 붙은 링크는 그가 연재하는 번역 소설로 이어진다.
온라인카지노에 소설을 번역해서 올린다고? 고딕소설을?
아래는 그가 소개한 글의 일부다. (복사는 안 되지만 캡처는 되지요)
읽어보고 아니면 그만두면 될 것을, 나는 드라마도 영화도 바카라도 되게 고민하고 고른다.
이것도 읽을까 말까 고민되는데 아마 읽을 듯.
* 제목은 김소월 시인 [초혼]의 시구를 패러디했습니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