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아직 남아 있는 것

남겨둔 문장

by수련

이제는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보다, 무엇을 꼭 해보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된다.

한때 삶을 마감하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어보는 ‘버킷리스트’가 유행처럼 번졌다. 나도 하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꿈을 하나씩 적어보곤 했다. 그러나 막상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니 계획한 대로 산 날보다 주어진 자리에서 그날그날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날이 더 많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은퇴 후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바카라장을 천천히 거닐고 마음에 드는 바카라을 골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부터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렇게 온라인카지노를 두드렸다.

온라인카지노 작가로 승인되었다는 메일을 받은 지도 어느덧 1년 6개월이 되었다. 처음에는 뭐라도 된 듯 잠시 마음이 들떴다. 작가라는 이름이 낯설었지만, 그 축하 메시지 하나만으로도 내 안에 새로운 문이 열린 듯 행복했다.


매주 수요일 한 편의 수필을 발행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키며 꾸준히 써왔다. 평범하게 흘러가던 일상의 생각을 건져 올려 문장으로 옮기는 일은 처음에는 즐거웠다. 별것 아닌 일도 문장으로 옮기려 바라보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지나쳤던 장면에 의미가 생기고, 무심코 흘려보낸 말 한마디가 글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쓰는 일은 점점 버거워졌다. 무엇보다 내가 쓰는 글이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았다. 매주 한 편을 써야 한다는 약속은 어느 순간부터 즐거움보다 부담으로 다가왔다. 바카라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독서는 일상의 다른 일들에 밀려났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은 커지는데 실력은 좀처럼 따라오지 않았다. 그럴수록 갈증은 오히려 깊어졌다. 변화가 필요했다. 지난해 정윤 작가의 글방에서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라는 온라인 수업을 한다는 글을 보았다. 수필 한 편을 완성하기도 쉽지 않은데 소설은 아직 먼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만 그곳으로 눈길이 갔다. 결국 소설 기초반에 입문했다.


처음에는 에세이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신청했다. 다른 수강생들의 글을 읽으며 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사람마다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놀라웠다. 소설은 수필과는 또 다른 세계의 작업이라는 것을 새삼 알았다.


과제 가운데 ‘나는 누구인가’를 쓰는 시간이 있었다. 오랜만에 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온라인카지노 작가 승인을 받던 날의 설렘도 떠올랐고, 처음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도 다시 생각났다. 어느새 나는 글을 잘 쓰고 있는가를 걱정하느라, 왜 쓰고 싶었는지는 잊고 있었다.


12주 수업을 마치고, 글을 대하는 눈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잘 쓰는 법만 배운 것이 아니라, 글을 다르게 보는 법을 배웠다. 예전에는 바카라을 읽을 때 줄거리를 따라가기에 바빴다. 이제는 문장을 오래 바라본다. 무엇을 말하는가 보다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눈이 간다. 묘사가 살아 있는 대목에서는 쉽게 바카라장을 넘기지 못한다.

‘왜 이 문장이 마음에 남을까.’

‘작가는 어떻게 이 장면을 내 눈앞에 가져다 놓았을까.’

한 문장을 붙잡고 오래 머무는 시간이 생겼다. 소설 쓰는 방법을 배우면서 바카라을 읽는 방향도 달라진 것이다. 언젠가는 단편소설 한 편을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꿈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내가 무슨 소설을 쓰겠어’라고 먼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는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가 있다. 인도에 다시 가는 일이다.

10년 전 불교대학 졸업여행으로 인도를 다녀왔다.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를 시작으로 15일 동안 성지를 순례했다. 17명이 함께 움직였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 장소를 이동했다. 다양한 인종, 종교와 생활 풍습은 독특하고 곳곳에서 특별함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제대로 보지 못한 것들이 더 많았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오래 바라볼 여유도, 그곳에서 떠오른 생각을 붙잡을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가보고 싶다.

인도를 좋아해 겨울마다 여러 번 다녀온 친구와 가고 싶다. 정해진 일정표 없이 천천히 걷고 싶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사람들의 표정도 바라보고, 낯선 풍경 앞에서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도 느껴보고 싶다. 갠지스강의 계단에 앉아 그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삶을 바라보고 싶다.


예전에 잠깐 들렀던 보드가야에도 다시 가고 싶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지는 마하보디 사원을 찾아가 보리수나무 아래에 오래 앉아 있고 싶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려고 한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인도에 다시 가고 싶은 이유는 여행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갠지스강 주변에서 잠시 멈추어 바라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KakaoTalk_20260902_155058038.jpg이미지 AI 생성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는 수필집을 몇 권 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를 있게 해 준 따뜻한 사람들과의 인연, 평범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생각,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달라진 마음을 글로 남기고 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고, 지나간 일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른 얼굴로 다가올 때도 있다. 상처라고 생각했던 일이 어느 날 삶을 바라보는 눈이 되기도 한다.


글은 사라지는 시간을 붙잡아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흘러가 버린 사람과 순간을 다시 불러내어 한 줄의 문장으로 세상에 남겨두는 일이다. 삶의 조각을 모아 내가 지나온 시간의 묶음이 누군가의 마음에 온기로 남아 힘이 되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바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고, 다시 인도를 찾아 천천히 걸어보고, 지나온 삶을 몇 권의 바카라으로 남기는 일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 천천히 살아보고 싶다는 것. 지나온 날들을 잘 바라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고, 쓰지 않은 문장이 남아 있고, 가보고 싶은 길이 남아 있다. 오늘도 나는 눈에 담은 문장을 꾹꾹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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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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