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결국 돌아갈 곳.
영미문학을 연구하는 친구와 함께 메가박스에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를 보았다.
평일 오후 1시 상영이라 극장이 한산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객석은 가득 차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유명한 감독이 만든 대작 영화라는 생각이 컸는데, 놀런 감독과 맷 데이먼이 유퀴즈 방송에서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맷 데이먼)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와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를 만나려 한다. 그러나 귀환길은 순탄하지 않다.
신들의 분노와 저주로 인해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은 거대한 폭풍과 낯선 섬, 괴물과 신비로운 존재들을 차례로 마주한다. 특히 키클롭스와의 대결, 세이렌의 유혹 등은 오디세우스의 지혜와 의지를 시험한다. 한편, 고향 이타카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왕좌를 노리는 구혼자 108명이 페넬로페를 압박하고, 텔레마코스 역시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성장해 나간다.
젊었을 때였다면 오디세우스의 모험과 영웅적인 모습에 더 마음이 끌렸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중간쯤을 돌아보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이유가 가족과 함께 잘 살기 위해서였는데, 정작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오디세이》에서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평범한 목표를 거대한 인간의 모험으로 확장했다. 오디세우스는 강한 전사이지만 모든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전략가로 지혜를 사용하고, 때로는 유혹을 이겨내며,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를 감당한다. 그래서 영화 속 여정은 단순한 액션이나 판타지가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삶과 가족을 되찾아가는 과정이다.
놀런 감독은 고대의 신화적인 이야기를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로 재현하면서도 가족, 바카라임, 귀환, 인간의 의지라는 현대적인 주제를 강조한다. 영화는 IMAX 필름으로 촬영된 대작으로, 신화 속 세계를 압도적인 영상미와 웅장한 스케일로 표현한다. 172분이란 상영시간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삶을 생각한다. 우리도 나름대로 많은 전쟁을 치르며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우리 역시 각자의 바다를 건너온 셈이다. 거대한 괴물과 싸운 것은 아니지만 삶의 무게와 싸웠고, 거친 비바람을 맞으며 어려움 앞에서 흔들리며 살아간다.
영화에서 나는 오디세우스보다 오히려 페넬로페가 더 마음에 남는다. 20년 동안 남편을 기다린 그녀의 모습은 단순히 신화 속 한 여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낮에는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밤이면 푸는 일을 반복하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묵묵히 지켜온 우리의 모습과도 닮았다. 특히 우리 어머니 세대는 가족을 위해 참 많은 것을 헌신하며 본인을 내려놓고 살아왔다.
젊을 때는 성공이란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슬롯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성공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외로운 삶일 것이다. 반대로 큰 부자가 아니어도 따뜻한 가족이 있고,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있고, 하루의 끝에 편안하게 돌아갈 집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인생 아닐까.
오디세우스에게 중요한 것은 전쟁 영웅이 아니었고, 미모의 여신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삶보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에게 이타카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도 돌고 돌아 결국 찾아가는 각자의 이타카가 있다. 어릴 적 부모님과 살던 고향일 수도 있고, 나의 길을 찾아가는 마음의 좌표일 수도 있겠다.
인간은 삶의 여정에서 수많은 어려움과 유혹을 만나지만, 결국엔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 가족을 찾아간다. 《오디세이》라는 수천 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왜 계속 읽히고 영화로 만들어지는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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