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인계 - 일을 넘기고 받는 법

끝난 일보다, 아직 안 끝난 일을 먼저 넘깁니다

by김도경 dkkim

안녕하세요 (꾸벅)

토요일 오후, 여유롭게 보내고 계신가요? 주말에는 일 생각은 잠깐 내려놓고 푹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해가 지면 금방 쌀쌀해지니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인수인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인수인계라고 하면 다들 두꺼운 문서부터 떠올리시잖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인수인계는 두꺼운 문서를 넘기는 일인 줄 알았는데요. 넘겨받는 쪽도, 넘겨주는 쪽도 여러 번 해 보고 나서야 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 연재에서 한 번, 메모 이야기를 하면서 또 한 번 꺼냈었습니다. 일을 다른 분들께 넘기던 날의 이야기도 다른 글 끝에 조금 적었었고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장면들을 오늘 한 편으로 모아 적어 봅니다.


1. 넘겨받을 땐, 받은 일을 제 입으로 다시 세어 봅니다


예전에 교육회사에서 일할 때, 다른 분이 맡던 교육 과정 일을 제가 넘겨받던 날이 있었습니다. 저는 기록 도구를 켜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쭉 말씀해 주시면 이 도구가 알아서 정리해 줄 테니, 제가 해야 하는 것만 말씀해 주시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인수인계가 기록을 보니 6분 만에 끝났더라구요.


넘겨받은 일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날 잡혀 있던 시작 회의에 들어가기, 수강생 등록 요청하기, 온라인 강의 세팅하기, 소개 페이지 고치기. 여기에 다음 달에 시작하는 과정 세 개의 개강 준비와 강사님, 실습 코치 섭외까지 있었습니다. 양만 보면 6분에 다 못 넘길 일입니다. 그런데 기록을 다시 보면 끝부분에서 제가 크게 보면 세 가지라고 말하다가, 아니 네 가지라고 고치고 있더라구요. 넘겨주는 분이 말한 걸 제 입으로 다시 세어 보다가 하나 빠뜨린 걸 그 자리에서 알아챈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그날 제일 잘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적는 건 도구가 해 주니, 저는 듣고 되묻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고요.


받아 적은 메모에는 빠진 게 안 보였는데, 제 말로 다시 세어 보니 그 자리에서 보였습니다. 그 뒤로는 무언가를 넘겨받거나 회의가 끝나면, 그날 안에 들은 것을 세 줄로 다시 적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 한 줄, 제가 할 일 한 줄, 아직 모르는 것 한 줄. 이 세 줄이 안 적히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보고 다음 날 다시 여쭤봅니다. 다시 묻는 게 좀 민폐 같아 망설이던 때도 있었는데, 세 줄을 들고 가서 이렇게 이해했는데 맞는지 여쭤보면 오히려 고마워하시는 분이 더 많았습니다.


그보다 한 달쯤 전에도 새 과정 하나를 넘겨받았습니다. 먼저 운영해 본 분이 이것저것 알려 주셨는데, 나중까지 쓸모 있었던 건 순서표보다 "지난번엔 이렇게 했는데 이래서 바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지난 기수에서는 온라인 강의를 날짜별 필수로 정해 뒀는데, 중간에 프로젝트 팀과 멘토 배치가 바뀌는 일이 생겨서 이번엔 권장으로 두자고 하셨습니다. 함께 일할 아르바이트 분과는 날을 잡고 한 번 면담해 보라고, 일이 없는 시간에도 연락은 계속 확인해야 한다고도 하셨고요. 지난번에 그분이 못 나와서 급하게 전화를 돌린 적이 있었대요. 이런 건 어느 문서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넘겨받을 때 순서보다 "지난번엔 왜 이렇게 바꾸셨어요?"를 꼭 여쭤보려고 합니다. 순서는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는 해 본 사람 머릿속에만 있더라구요. 그걸 못 들으면 저는 똑같은 실수를 한 번 더 하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2. 넘겨줄 땐, 못 한 일을 먼저 적습니다


그 6분짜리 인계에서 넘겨주는 분은 틀만 짜 놓고 내용을 못 넣었다고 하셨습니다. 소개 페이지에 새 구역을 넣는 일이었는데 뼈대만 만들었다는 거였죠. 실습 코치도 여쭤보니 지금 남는 사람이 없다고 하셨고요. 듣는 순간엔 좀 막막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해 주시니 할 일이 분명해지더라구요. 틀은 있으니 내용만 채우면 되고, 코치는 처음부터 새로 찾아야 하는 거니까요. 만약 거의 다 됐다고 넘겨받았으면 저는 한참 뒤에야 비어 있는 걸 발견했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넘겨줄 때도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운영 일을 다른 분께 넘기면서, 강사님이 바뀌는 바람에 등록 절차가 아직 안 끝났다는 걸 따로 적어서 같이 넘겼습니다. 끝난 일보다 아직 안 끝난 일이 받는 사람에게는 더 급한 정보더라구요.


인계를 하나도 못 받고 시작한 과정도 있었습니다. 맡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넘어왔는데, 따로 넘겨받은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강생들에게 나가는 공지를 제가 거의 다 직접 썼는데요. 쓰다 보니 공지가 곧 기록이 되더라구요. 언제 뭘 안내했고 어떤 순서로 진행됐는지가 전부 공지에 남아 있으니까요. 나중에 그 과정을 다른 분께 넘길 때는 공지 흐름만 따라가시면 인계 내용이 다 이해되게 해 뒀다고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막막함을 아니까, 인계를 못 받아 본 사람이 오히려 인계를 제대로 남기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새로 오신 분의 첫 적응을 맡았을 때는 두 가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는 제가 모아 둔 업무 링크 전부였습니다. 그분 개인 노트에 통째로 복사해 드리고, 앞으로 하는 일도 거기에 적어 달라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가 혼자 만들어 쓰던 업무 정리 문서였습니다. 과정 운영 일을 아무도 정리해 두지 않아서, 개강 전부터 개강 후까지 할 일을 순서대로 적어 둔 문서였는데요. 정리해 두고 나니 다른 분들도 쓰고 있더라구요.


3. 넘기고 나서도, 첫 주는 같이 들어갑니다


문서만 넘기고 끝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도 한 주 동안은 그분이 막히는 곳마다 옆에서 같이 열어 봤습니다. 문서는 혼자서도 읽을 수 있지만, 어디서 막히는지는 옆에서 봐야 보이더라구요.


비슷한 장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수강생을 모으려고 매주 여는 온라인 설명회를 새로 만들었는데,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 과정 담당자분들께 직접 운영을 넘기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바쁜 분들께 새 방식을 넘기면서 준비 부담까지 얹어 드리면 일이 하나 더 느는 것이라서, 발표용 장표는 제가 만들어 들고 갔습니다. 각자 바꿀 것은 담당자 이름과 등록 QR코드, 딱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내용도 시간 배분도 편하게 고쳐서 쓰시라고 덧붙였고요.


회의를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쭤봤습니다. "혹시 진행하면서 걱정되는 거 없으세요?" "없습니다." "진짜 없어요?" "네, 진짜 없습니다." 말은 없다고 하셨지만, 이 방식을 주도적으로 해 본 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걱정하시는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일정만 겹치지 않으면 첫 주에 열리는 설명회에 제가 패널로 같이 들어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마감 전까지 딱 세 번만 거르지 말고 열어 보자는 규칙 하나만 정했고요. 등록률이 낮아 괜히 미안한 표정을 짓던 분께는 "죄송해할 거 전혀 없습니다. 일단 같이 해 봅시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넘겨받은 분이 혼자 처음 해 보는 날에, 옆에 있어 드리는 게 제일 필요하더라구요. 돌아보면 인수인계는 다음 사람이 첫날 바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꺼운 문서보다 안 끝난 일 하나, 바꾼 이유 하나가 더 쓸모 있었고요.


그래서 다음 주에는 제가 들고 있는 일들 중에, 내일 당장 누군가에게 넘긴다면 안 끝난 일로 뭘 먼저 적어야 할지 한 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다들 일을 넘겨받으실 때 꼭 여쭤보시는 게 있으신가요? 저도 알고 싶습니다 :)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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