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 온라인 게임에서 제대로 사과하는 법

사정 설명은 뒤로 미루고, 다시 되게 만들어 놓고 말합니다

by김도경 dkkim

안녕하세요 (꾸벅)

금요일 저녁, 한 주 잘 마무리하셨나요? 이번 주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퇴근길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사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마음에 남는 문장들을 정리하다가 셰익스피어의 말 하나를 옮겨 적었습니다. "실수를 변명하면 실수를 돋보이게 할 뿐이다." 살면서 실수를 전혀 안 할 수는 없으니, 앞으로도 실수는 종종 하겠지요. 그럴 때마다 변명하기보다 그냥 죄송하다고, 제 잘못이라고 말하려 한다고 그 옆에 적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적고 나서 돌아보니, 저는 원래 사과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기 전에 사정부터 설명했고,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그 자리를 넘기려 한 적도 많았습니다. 사과에 대해서는 그동안 군대 이야기, 약속 이야기, 후배 이야기를 하면서 여기저기 조금씩 적어 왔습니다. 흩어져 있던 장면들을 오늘 한 편으로 모아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사정 설명은 접고, 잘못했다는 말부터 합니다


사과하는 법을 처음 배운 곳은 군대였습니다. 윗사람이 화가 나 있을 때 사실대로 이유를 말하면, 사과는 안 하고 꼬투리를 잡혀 더 혼이 났습니다. 그래서 화를 낼 때는 일단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하고, 나중에 화가 풀리면 "사실은 그랬습니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때는 그저 버티기 위한 요령인 줄 알았습니다.


슬롯생활을 하면서 보니 그 요령이 꽤 쓸모가 있었습니다. 상대가 화를 낼 때 바로 대답하면,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변명이 됩니다. 같은 말이라도 화가 가라앉은 뒤에 하면 오해를 푸는 설명이 되고요. 말의 내용은 그대로인데, 꺼내는 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렸습니다.


그 뒤로 사과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사과의 핵심은 상대의 감정을 풀어 주며 용서를 구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제 사정을 이해시키려 드는 순간, 그 말은 사과보다는 설득에 가까워집니다. 사정을 늘어놓을수록 말은 길어지고, 정작 하려던 사과는 자꾸 뒤로 밀렸습니다.


자기 실수 앞에서는 단호하게 인정하는 편이 불필요한 오해를 줄였습니다. "내가 미처 상의를 못 했다, 미안하다." 이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예전에 감정을 잘 다루는 분들이 하는 말을 모아 본 적이 있는데, 그중 하나도 아주 짧았습니다. "내가 실수했어. 진심으로 미안해." 이유를 붙이지 않아서 오히려 마음이 잘 보이는 말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미안해요"라는 말이 빠르게 나오는 사람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정과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고 봅니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 화가 나 있으면 사정 설명은 뒤로 미루고, "제 잘못입니다"라는 말부터 꺼내려고 합니다. 사실은 이랬다는 이야기는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됐을 때 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2. 죄송하다는 말 앞에, 다시 되게 만들 방법을 붙입니다


그렇다고 잘못했다는 말만으로 끝나는 건 아니었습니다. 일이 잘못됐을 때 저한테서 제일 빨리 나오던 말이 "죄송합니다"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분이 이렇게 되물은 적이 있습니다. "죄송한 건 알겠고, 그래서 이걸 어떻게 되게 만들 거예요?" 그날 저는 아무 대답도 못 했습니다. 사과는 준비했는데, 해결은 준비하지 않았던 겁니다.


죄송하다고 말하면 상황이 일단 정리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공기가 부드러워지고, 더 추궁받지 않고, 그 자리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은 그대로 멈춰 있었습니다. 편해진 건 저 하나였죠. 예전에 적어 둔 글에 이렇게 남긴 적이 있습니다. 바카라임을 진다는 것은 일이 다시 되게 만들어 놓는 것이고, 내 행동에 대한 죄송은 그 이후에 말하는 게 맞다고요. 죄송하다는 말만 하고 끝내는 건 회피에 가깝다고도 적었습니다.


전 온라인 게임인 교육 회사에서 과정 등록이 영 오르지 않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옆 팀에 상담을 더 해 달라는 말만 반복했는데, 알고 보니 전화를 걸 사람이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부족해서 결과가 나빴다고 보고하고 손을 털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자주 나오는 질문은 카드뉴스로 만들어 미리 보내고, 한 명씩 걸던 전화 대신 매주 설명회를 여는 쪽으로 방식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설명회를 과정 담당자들에게 넘기는 자리에서 이 말부터 꺼냈습니다. "그동안 등록률이 안 올라 답답하셨을 겁니다. 미처 몰랐는데, 우리가 사람이 참 많이 모자랐던 것 같습니다." 발표 장표는 제가 만들어 들고 갔고, 각자 바꿀 건 담당자 이름과 등록 QR코드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등록률이 낮아 괜히 미안한 표정을 짓던 한 분에게는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죄송해할 거 전혀 없습니다. 일단 같이 해봅시다." 돌아보면 그날 미안하다는 말이 무겁게 들리지 않았던 건, 다시 되게 만들 방법이 같이 놓여 있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일이 틀어지면 "죄송합니다" 앞에 "이렇게 복구하겠습니다"를 붙여서 말합니다. 순서만 바꿔도 대화가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사과할 일을 줄이는 방법도 하나 있었습니다. 잘 모르는 일을 묻지 않고 진행하다가, 결과가 벌어진 뒤에야 관리자에게 가서 해결해 줄 수 있는지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순서가 한참 잘못된 거죠. 물어보고 진행하면 잘못 가고 있을 때 미리 바로잡을 수 있고, 잘하고 있을 때는 상황을 잘 공유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자존심 문제로 볼 일도 아니었습니다. 일하는 기본적인 태도 중 하나라고 봅니다.


3. 늦어질 사과는 기한 전에, 미뤄 둔 사과는 늦게라도 합니다


사과에도 때가 있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회의 끝에 "이번 주 안에 다 해 올게요"를 자주 말하던 사람이었는데요. 그렇게 말하면 분위기가 좋아지고, 저도 든든한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이 되면 반쯤 된 파일을 앞에 두고 사과 메시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월요일 오전까지 드리겠습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면서 '이번 주에 잘한 것도 많은데, 기억에 남는 건 죄송하다는 이거 하나겠구나' 싶었습니다. 실제로 제때 끝낸 다섯 번보다 늦어진 한 번이 훨씬 오래 기억되더라구요.


기한 당일 저녁에 사과하면 상대는 손쓸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못 지킬 것 같으면 기한이 오기 전에 말합니다. "금요일이 어렵고 월요일 오전이 될 것 같아요. 대신 목요일에 중간본을 보내 드릴게요." 미리 말하면 상대에게 계획을 바꿀 시간이 생깁니다. 같은 늦음인데 받아들이는 쪽 표정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반대로 너무 늦게 한 사과도 있습니다. 예전 회사에서 처음으로 부사수 후배가 생겼을 때입니다. 후배가 보내온 설명회 안내문 초안을 출력해서, 빨간 펜을 들고 30분 동안 문장마다 줄을 그었습니다. 그 뒤로 후배는 초안을 마감 직전에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뒤 점심을 먹다가 그때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됐는데, 그 빨간 종이를 아직 서랍에 넣어 두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고칠 곳이 너무 많아서 다시 꺼내 볼 엄두가 안 났다고요.


후배가 그 종이를 몇 달 동안 붙들고 있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제대로 사과를 했습니다. 그 뒤로 후배는 초안을 다시 일찍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사과는 빠를수록 좋지만, 늦었다고 그냥 넘겼다면 그 종이는 지금도 서랍 속에 있었을 겁니다.


모아 놓고 보니, 제 사과는 "죄송합니다" 한마디에서 조금씩 길어져 온 것 같습니다. 그 뒤에 무엇을 다시 되게 할지가 붙었고, 언제 말할지가 붙었습니다. 바카라임은 죄송하다는 말로 끝나지 않고, 일이 다시 되게 만드는 데서 마무리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내일은 이번 주에 보낸 메시지 중 "죄송합니다"가 들어간 것들을 다시 열어 보면서, 그 옆에 복구할 방법이 같이 적혀 있었는지 짚어 보려고 합니다.


다들 온라인 게임에서 들었던 사과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마디가 있으신가요? 저도 알고 싶습니다 :)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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