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고 말하기 - 온라인 게임에서 모른다고 말하는 법

아는 척 대신, 언제까지 알아볼지를 붙입니다

by김도경 dkkim

안녕하세요 (꾸벅)

금요일 오후, 한 주 잘 마무리하고 계신가요? 이번 주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말을 앞두고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모른다고 말하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일할 때 AI에게 지시문을 적어 두고 쓰는데요. 처음엔 한 줄로 시작했던 지시문이 지금은 스무 줄쯤 됐습니다. 그 맨 위에는 "모르면 지어내지 말고 모른다고 한다"가 적혀 있습니다. AI가 제일 많이 틀렸던 자리라 제일 위로 올라갔습니다. 써 보니 "지어내지 마"보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가 훨씬 잘 통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줄을 적다가 좀 뜨끔했습니다. AI에게는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고 해 놓고, 정작 저는 회사에서 그 말을 잘 못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 연재에서 한 번, 보고와 답장 이야기를 하면서 또 몇 번 꺼냈었는데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장면들을 오늘 한 편으로 모아 적어 봅니다.


1. 알아듣는 척을 접고, 그 자리에서 묻습니다


슬롯에 나와 처음 일을 배울 때, 저는 회의에서 모르는 말이 나오면 고개부터 끄덕였습니다. 모른다고 하면 준비 안 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알아듣는 척을 하며 대화를 따라갔습니다. "네, 네" 하면서 아는 얼굴을 하고, 끝나고 몰래 찾아보는 쪽이었죠. 그렇게 끝난 회의에서 제 것이 된 건 거의 없었습니다.


끄덕이고 나온 날은 순서가 늘 비슷했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검색창을 엽니다. 단어의 뜻은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그 자리에서 왜 나왔는지는 검색이 알려 주지 않습니다. 맥락 없이 찾으니 제 것이 되지 않았고, 다음 회의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 또 끄덕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번 물었으면 끝났을 일을, 저는 몇 번이고 돌아서 갔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모른다는 말은 인정받는 길과 반대편에 있는 말 같았습니다.


몇 해 전 기획안 하나를 맡았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 보자는 제안서였는데, 윗분이 맡기시면서 "분명히 이런저런 질문이 나올 거야. 받을 질문을 미리 생각해 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했고, 정말로 알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윗분께 올리기 전에 선배 한 분께 보여 드린 자리에서, "그래서 이게 되면, 우리가 얻는 게 뭐예요?"라는 질문 하나에 한참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막히는 곳이 있었는데 묻지 않고 "알겠습니다"부터 했던 겁니다. 막힌 채로 한 "알겠습니다"는 결국 다음 질문에서 들통이 나더라구요. 그 뒤로는 막히는 곳이 하나라도 있으면 전부 묻습니다. 윗분에게도, 선배에게도, 요즘은 AI에게도 묻습니다.


반대 자리에 서 보니 이게 더 잘 보였습니다. 강의를 하거나 누군가에게 일을 넘길 때, "질문 있으세요?" 하고 물었는데 조용하면 그게 다 알아들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며칠 뒤 다른 자리에서 같은 질문이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누가 한 명만 "저는 여기서부터 모르겠어요"라고 해 줬어도, 그날 바로 다시 설명할 수 있었을 겁니다. 다 안다는 얼굴로 끄덕이는 분 앞에서는 제 설명이 제대로 닿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모르는 말이 나오면 끄덕이기 전에, 그 자리에서 "여기서부터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제가 고개를 끄덕이면 상대는 설명을 거기서 멈춥니다. 상대가 다 안다는데 더 이야기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제 끄덕임 하나가 상대가 꺼내려던 이야기를 닫을 수도 있었습니다.


2. 있어 보이는 단어로 모르는 걸 덮지 않습니다


모르는 걸 감추는 방법이 끄덕임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저는 말을 길게 해서 감추기도 했습니다. 처음 일을 배울 때 저는 영리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아는 것보다 조금 장황하게 부연 설명을 했고, 쉬운 말 대신 그럴듯한 말을 끼워 넣었습니다.


그러다 한 고객사 담당자분께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포장은 괜찮으니까, 그래서 뭘 하시겠다는 건지 분명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 자리에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포장을 벗기고 나니,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생각보다 적었거든요. 그때는 서운했지만, 돌아보면 일하면서 들은 말 중에 손꼽히게 고마운 말입니다.


한때는 어려운 바카라을 읽고 남들이 모르는 용어를 섞어 쓰는 게 대단한 실력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러운 잘난 척이었죠. 공부를 이어 가려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제가 아는 척했던 것들이 밑천을 드러낼까 봐 겁이 났습니다. 그래도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부터가 진짜 공부의 시작이더라구요. 그때 저는 잘난 척하며 마침표를 찍기보다, 부족함을 인정하며 말줄임표를 찍는 마음으로 입학을 기다리겠다고 적었습니다.


있어 보이는 단어가 튀어나오던 날을 돌아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일을 왜 하는지, 제가 한 줄로 말하지 못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 단어를 꺼내 들던 날은 대개 모르는 걸 감추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보고를 올리기 전에 문서에서 제일 있어 보이는 단어를 하나 고릅니다. 그리고 그 단어를 처음 듣는 사람에게 설명하듯, 한 줄로 풀어 봅니다. 풀리면 둡니다. 안 풀리면 그 단어는 아직 제 말이 아닙니다. 그럴 때는 단어를 빼고 실제로 하려는 일을 동작으로 적습니다. "고객 경험을 고도화한다" 대신 "문의에 하루 안에 답한다"처럼요. 문장은 덜 멋있어집니다. 대신 읽는 사람이 되묻는 일은 줄었습니다. 풀어 쓰다가 설명이 자꾸 길어지면, 그건 제가 아직 잘 모른다는 신호로 봅니다.


3. 모른다는 말에 언제까지를 붙입니다


그렇다고 "모릅니다"에서 말을 멈추면 일도 같이 멈춥니다. 제일 어려웠던 건 누가 물어 왔는데 답을 아직 모를 때였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앞에 설명을 길게 붙였습니다. "모릅니다"라는 말을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어서였습니다.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나 봅니다. 보고 중에 답을 모르는 질문이 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은 모르면 모른다고 첫 줄에 있는 그대로 씁니다. "아직 모릅니다. 내일 오전까지 확인해서 알려 드릴게요." 이렇게 보냈을 때 오히려 "네, 내일 봐요" 하고 대화가 제일 깔끔하게 끝났습니다. 언제까지 알아볼지만 붙이면, 모른다는 말도 충분히 답이 됩니다.


모른다고 말한 질문은 흘려보내지 않고 적어 둡니다. 그 기획안 이후로 생긴 버릇인데요. 막힌 질문을 적어 두면, 그 질문이 다음번 예상 질문의 맨 윗줄이 됩니다. "그래서 왜?" "안 되면?" "되면 뭐가 좋아져?" 같은 질문을 뽑아 두고, 답은 제 손으로 적어 봅니다. 문장이 안 되면 키워드라도 적습니다. 남이 써 준 답을 외워 가면 질문이 조금만 비틀려도 막혔고, 제가 적은 답을 조금씩 고쳐 가면 예상치 못한 질문에도 제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일을 조금 해 본 뒤에 이 말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처음엔 모르는 게 당연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사람이 됐다고 스스로 생각하니까요. 지금도 모른다는 말을 꺼내기 전에는 한 박자 망설입니다. 특히 상대가 저를 처음 보는 자리라면 더 그렇습니다.


돌아보면 모르는 걸 감추는 데 드는 품이, 모른다고 말하는 데 드는 품보다 훨씬 컸습니다. 아는 척을 하면 그 자리의 체면은 지킵니다. 대신 그 자리에서 배울 수 있던 게 날아갑니다. 지난 연재에서 저는 이걸 "일의 격"이라고 불렀는데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해도 무너지지 않는 것. 일의 격은 연차나 직함이 만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 한마디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내일은 이번 주에 "알겠습니다" 하고 넘긴 일들을 다시 적어 보면서, 사실은 모르는 채로 끄덕인 건 없었는지 하나씩 짚어 보려고 합니다.


다들 회사에서 모른다고 말하실 때 꼭 같이 붙이시는 한마디가 있으신가요? 저도 알고 싶습니다 :)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오후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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