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 온라인 게임인 업무 회고하는 법

일이 하나 끝나면 다음에 바꿀 행동 한 줄만 적어 둡니다

by김도경 dkkim

안녕하세요 (꾸벅)

목요일 저녁, 퇴근길은 괜찮으셨나요? 해가 많이 짧아져서 회사를 나서면 벌써 깜깜하네요. 이번 주도 하루만 더 버티면 됩니다.


오늘은 '회고'에 대해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회고는 쉽게 말해 끝난 일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일인데요. 말로 하면 간단한데, 막상 일을 하다 보면 끝난 일을 다시 꺼내 볼 시간이 잘 안 납니다. 하나가 끝나면 바로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저도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예전에 작은 사업을 할 때 사업계획서를 열아홉 번 고친 적이 있습니다. 고칠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긴 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무엇을 왜 고쳤는지는 어디에도 적어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쓴 사업계획서를 다시 쓰라고 하면, 아마 같은 자리에서 또 한참 고민할 것 같습니다. 고치는 것과 돌아보는 것은 좀 다른 일이었던 거죠.


생각해 보면 시험 공부를 할 때는 이걸 당연하게 했습니다. 기출문제를 풀고 나면 틀린 문제를 오답 노트에 옮겨 적었고, 왜 틀렸는지 옆에 한 줄씩 붙여 두었습니다. 시험 전날에는 새 문제를 푸는 대신 그 노트를 다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그 노트가 사라졌습니다. 틀린 건 고쳐서 넘기면 끝이었고, 왜 틀렸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으니 저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일에도 오답 노트를 다시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몇 번 못 가서 그만두기도 했고, 이것저것 바꿔 보다가 지금은 꽤 단순한 모양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늘은 그 과정에서 남은 것들을 차근차근 적어 보겠습니다.


회고라고 하면 팀원들이 다 같이 모여 화이트보드에 붙임쪽지를 붙이는 장면을 먼저 떠올리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회고도 있지만,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는 건 그보다 훨씬 작은 회고입니다. 혼자서, 10분 안쪽으로, 일이 하나 끝날 때마다 하는 회고입니다. 회의실을 잡을 필요도 없고 양식이 거창할 필요도 없습니다.


1. 일이 끝난 그날 적습니다


저는 일이 끝난 그날, 늦어도 다음 날 아침에 합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모아서 해 보려고 했는데, 한 달 전 일은 무엇이 아쉬웠는지보다 결과만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어디서 막혔는지, 그때 어떤 판단을 했는지는 생각보다 빨리 흐려지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큰일이 하나 끝나면 그날 퇴근 전에 10분 정도를 따로 떼어 둡니다. 큰일이 없는 주에는 금요일 오후에 그 주에 한 일을 한꺼번에 돌아봅니다.


영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걸 했었습니다. 미팅이 끝나고 나오면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누가 무슨 말을 먼저 꺼냈는지, 상대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았는지를 다시 적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회고라는 생각도 없이 그냥 잊어버릴까 봐 적었는데, 쌓이고 보니 다음 미팅을 준비할 때 제일 먼저 꺼내 보는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분을 두 번째 만나러 가기 전에 그 기록을 읽으면, 지난번에 그분이 무엇을 궁금해하셨는지, 제가 어디서 대답을 머뭇거렸는지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 대답부터 준비해서 갈 수 있었습니다.


2. 세 가지만 묻습니다


처음에는 잘된 점, 아쉬운 점, 느낀 점을 칸을 나눠 길게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적으면 느낀 점 칸이 제일 길어지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는 흐릿하게 남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세 가지만 묻습니다.


1) 처음에 예상한 것과 실제로 된 것은 무엇이 달랐나. 예상보다 오래 걸렸는지, 생각보다 반응이 없었는지, 처음 정한 방향이 중간에 바뀌었는지를 적습니다. 예상을 적어 두지 않으면 차이도 보이지 않아서, 저는 일을 시작할 때 "이 정도면 될 것 같다"는 예상을 한 줄 미리 적어 두기 시작했습니다.

2) 그 차이는 왜 생겼나. 여기서 저는 누구 때문이었는지는 잠시 미뤄 두고 순서와 방법부터 봅니다. 누가 늦어서 그랬다고 적으면 거기서 생각이 멈추는데, 제가 언제 부탁드렸는지, 무엇을 빠뜨리고 넘겼는지를 보면 다음에 바꿀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3) 다음에 바꿀 행동 하나는 뭘까. 꼭 하나만 적습니다. 세 개, 다섯 개를 적으면 다음에 하나도 기억이 안 나더라구요. 그리고 "더 꼼꼼하게" 같은 다짐보다 "보고서 첫 장을 쓰기 전에 결론 한 줄을 먼저 보여 드린다"처럼 누가 봐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있는 행동으로 적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 자료를 하나 만들어 발표까지 마친 날이라면, 제 회고는 대략 이런 모양이 됩니다.


- 예상: 자료는 사흘이면 만들고, 발표는 30분 안에 끝날 것 같았다.

- 실제: 자료는 닷새가 걸렸고, 발표는 질문이 길어져 50분이 걸렸다.

- 차이의 이유: 자료 방향을 혼자 정하고 다 만든 뒤에 처음 보여 드려서, 중간에 앞부분을 다시 만들었다. 질문은 대부분 같은 장에서 나왔는데, 그 장에 예시가 하나도 없었다.

- 다음에 바꿀 행동: 자료를 만들기 시작한 첫날, 목차만 먼저 보여 드리고 방향을 확인받는다.


이 정도는 5분이면 적습니다. 중요한 건 마지막 줄 하나입니다. 질문이 많이 나온 장에 예시를 넣는 것도 바꿀 거리이긴 한데, 둘 다 적으면 다음에 둘 다 잊어버리기 쉬워서 더 크게 걸렸던 쪽 하나만 남깁니다. 다른 하나는 메모처럼 아래에 적어 두기만 합니다.


처음에는 회고를 쓰다가 자꾸 길어져서 그만둔 적도 있습니다. 쓰다 보면 그때 서운했던 일, 억울했던 일까지 줄줄이 나오는데요. 그런 이야기는 쓰는 동안은 속이 좀 풀리지만, 나중에 다시 읽어 보면 다음에 무엇을 할지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위의 세 가지 질문에 답하는 줄만 남기고, 감정은 딱 한 줄만 적습니다. 그 한 줄은 지우지 않고 남겨 둡니다. 그때 제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나중에 보면 꽤 쓸모 있는 기록이더라구요.


잘된 일도 같은 방식으로 돌아봅니다. 예전에는 잘 끝난 일은 굳이 돌아보지 않았는데요. 잘된 일이야말로 왜 잘됐는지 적어 두지 않으면 다음에 다시 하기가 어렵더라구요. 운이 좋았던 건지, 제가 한 무언가가 통했던 건지를 나눠 보면, 통했던 쪽은 다음에도 그대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할 때 팝업 식당을 세 번 열었는데, 그때도 잘된 이유를 그때그때 적어 뒀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3. 한곳에 모아 두고 다시 꺼내 읽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회고를 그때그때 아무 데나 적었습니다. 수첩에도 적고, 메모 앱에도 적고, 보고서 파일 맨 끝에도 적었습니다. 그러니 정작 필요할 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회고는 다음에 비슷한 일을 시작할 때 꺼내 읽어야 쓸모가 생기는데, 찾을 수가 없으니 적어 두기는 했는데 결국 안 적은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요즘은 회고를 한곳에 모아 두고, 비슷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지난번 회고부터 꺼내 읽습니다. 보고서를 쓰기 전에는 지난 보고서 회고를, 행사를 준비하기 전에는 지난 행사 회고를 먼저 엽니다. 읽는 데는 몇 분이면 충분합니다. 지난번에 바꾸기로 한 행동 한 줄을 다시 보고 시작하면, 적어도 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헤매는 일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꺼내 읽을 때 하나 더 하는 게 있습니다. 지난번에 바꾸기로 한 행동을 이번에 정말 했는지 표시하는 것입니다. 했으면 옆에 동그라미를 치고, 못 했으면 왜 못 했는지 한 줄을 붙입니다. 이렇게 몇 번 해 보니 바꾸기로 해 놓고 못 지킨 행동이 생각보다 많더라구요. 적어 두기만 하고 다음 일이 시작되면 예전 습관대로 돌아가 있었던 거죠. 좀 부끄러웠습니다. 동그라미가 하나씩 늘어나는 걸 보면서 회고가 정말 다음 일을 바꾸고 있는지를 그때 처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행동에 세 번 연속 동그라미가 쳐지면, 그건 이제 습관이 됐다고 보고 목록에서 뺍니다.


그리고 석 달에 한 번쯤은 쌓인 회고를 처음부터 쭉 읽어 보려고 합니다. 일은 매번 달라도 차이가 생긴 이유는 몇 가지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한 편씩 볼 때는 그때그때 운이 나빴던 것처럼 보이는데, 모아서 보면 운보다는 제 습관이었다는 게 보이기도 합니다. 회고를 한 편씩만 읽어서는 잘 안 보이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회고를 윗분께 보여 드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큰일이 끝나고 어떻게 됐는지 정리해서 말씀드리는 자리인데요. 예전에는 이런 자리에서 잘된 것만 골라서 말씀드렸습니다. 아쉬운 걸 꺼내면 일을 못 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아쉬운 걸 빼고 말씀드리면, 윗분은 다음에 비슷한 일을 맡기실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모르신 채로 맡기시게 됩니다. 지금은 아쉬웠던 점을 한 줄 넣되, 바로 뒤에 다음에 무엇을 바꿀지를 붙여서 말씀드립니다. "자료 방향을 늦게 확인받아서 이틀이 늦었습니다. 다음에는 첫날 목차부터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대부분 다음 일을 맡기실 때 그 부분을 같이 챙겨 주셨습니다.


여럿이 함께 회고를 할 때도 있습니다. 같이 한 일이 끝나고 팀원들과 돌아보는 자리인데요. 이럴 때 저는 제 쪽에서 아쉬웠던 것을 먼저 꺼냅니다. 누군가 먼저 자기 이야기를 하면 다른 분들도 편하게 말하기 시작하는데, 반대로 남의 아쉬운 점부터 나오면 자리가 금방 조용해집니다. 그리고 회고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누가 잘못했는지로 정리하지 않고, 다음에 무엇을 바꿀지로만 정리합니다. 그래야 다음 회고 자리에도 다들 편하게 들어오시더라구요.


회고를 하다 보니 달라진 것도 하나 있습니다. 일이 잘 안 풀렸을 때 예전보다 좀 덜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일이 틀어지면 그날 기분이 하루 종일 가라앉았는데, 지금은 '이건 회고에 적을 거리가 하나 생겼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틀어진 일도 적어 두면 다음 일의 재료가 되니까요. 시험 공부를 할 때 틀린 문제가 많은 날일수록 오답 노트가 두꺼워졌던 것처럼요.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고 속상한 마음이 다 사라지지는 않지만, 다음에 무엇을 할지가 보이면 마음이 조금은 빨리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퇴근하면 이번 주에 끝낸 일 하나를 골라 세 줄만 적어 보려고 합니다. 예상과 달랐던 것, 그 이유, 다음에 바꿀 행동 하나요. 다들 일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돌아보고 계신가요? 저도 알고 싶습니다 :)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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