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인 메모 잘하는 법

회의가 끝난 뒤 내 말로 다시 적는 메모만 남았습니다

by김도경 dkkim

안녕하세요 (꾸벅)
일요일 점심 잘 보내고 계신가요? 비가 내리면서 공기가 꽤 차가워져서 이제 긴팔을 꺼내 입게 되네요.


오늘은 '메모'에 대해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저는 일을 하면서 수첩이든 노션이든 무언가를 끊임없이 적어 두는 편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적어 둔 것 중에 정말 제 것이 된 메모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혹시 온라인 게임인 메모 잘하는 법을 찾다가 이 글에 들어오셨다면,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1. 들은 말을 받아 적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의 상황과 내가 할 일을 함께 적는 것
2. 그날 안에 내 말로 다시 적어 보고(복기), 대상 하나당 한곳에 모아 두는 것


우리는 일을 할 때 늘 잘해내고 싶어 합니다. 어떻게 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들은 것을 놓치지 않고,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까. 그 답이 궁금해서 자기계발서를 꾸준히 읽어 보았습니다. 바카라마다 표현은 달랐지만 결국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적어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거인의 노트> 같은 바카라은 거의 바카라 한 권이 메모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참 열심히 적었습니다. 회의에서 들은 말을 받아 적고, 바카라에서 좋은 문장을 옮겨 적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하다가 그 메모를 다시 열어 보면, 글자는 다 있는데 그때 무슨 뜻으로 적었는지 저조차 모르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수첩에는 글자가 가득한데, 정작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옆자리 분께 다시 물어봐야 했습니다. 그때는 적는 것 자체가 메모라고 잘못 이해하곤 했습니다.


적어 두는 양은 늘어나는데 쓸 수 있는 메모는 늘지 않아서, 무엇이 문제인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메모 방법을 다룬 바카라도 여러 권 읽어 보고, 수첩과 노션과 메일함 사이를 오가며 도구도 몇 번 바꿔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도달한 결론은 메모는 다시 적어 보는 순간에 완성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바카라에서 배운 것과 현장에서 틀린 것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제가 온라인카지노를 쓰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고민하며 알게 된 것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질문은 적고, 대답 칸은 비워 둡니다


첫 번째로 알게 된 건 메모가 저를 도와주기도 하지만 제 눈을 가리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몇 년 전 작은 사업을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식당 사장님들을 인터뷰하러 가기 전에 메모장에 질문을 적어 두었습니다. 가게에 브랜드 제품을 두고 싶어 하실지 확인하겠다는 질문이었는데, 그 옆에 제가 미리 답을 적어 두었더라구요. 있으면 무조건 좋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묻기도 전에 제가 듣고 싶은 답을 정해 둔 셈이었습니다.


그 뒤로 사장님들을 만날 때마다 그 질문을 제대로 여쭌 기억이 없습니다. 이미 답이 적혀 있으니 물어볼 이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죠. 그때는 예상은 예상일 뿐이고 현장에서 확인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메모장 어디에도 사장님들의 진짜 목소리는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켠 메모장이 제 눈을 가리는 가림막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 사업은 결국 몇 번의 피벗을 거치다 접게 되었고, 사장님들이 정말 원하셨는지 그 답은 끝내 듣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그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모르는 요리사 100명에게 무작정 메시지를 보내고 그중 50명을 직접 만나 불편한 점을 하나하나 받아 적었던 사람이 저였다는 점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물었으면서 매일 보는 분들에게는 묻지 않았던 것이죠. 익숙해서 묻지 않은 셈입니다. 가까운 사이니까 속마음쯤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자만했던 것 같습니다.


이건 회사에서 일할 때도 똑같이 생기는 문제였습니다.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상대가 무엇을 걱정할지 미리 적어 두는 건 분명 좋은 준비입니다. 그런데 상대가 가격을 부담스러워할 것 같다고 적어 두면, 그 뒤로는 모든 말이 그렇게 들립니다. 검토해 보겠다는 말도 가격 때문인 것 같고, 팀과 상의해 보겠다는 말도 비싸서 거절하는 것처럼 해석하게 됩니다. 정작 상대는 전혀 다른 것을 걱정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요즘은 메모장에 질문은 적되, 대답 칸은 비워 두고 들어갑니다. 그 칸은 상대를 만나 직접 들은 다음에만 채우는 것으로 저 자신과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들은 말 옆에는 그 말을 할 때 상대의 상황이 어땠는지를 한 줄 덧붙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가 옆에 있으면, 나중에 다시 읽을 때 그 뜻이 훨씬 잘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검토해 보겠다는 말 옆에 그날 상대가 다른 일로 바빠 보였다는 한 줄이 있으면, 나중에 그 말을 거절로 읽을지 기다려 볼지 판단하는 데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2. 그날 안에 내 말로 다시 적어 봅니다


두 번째는 메모가 완성되는 때가 적는 순간보다 다시 적어 보는 순간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한때 바카라을 읽으면 좋은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좋아하는 바카라은 다섯 번을 필사한 적도 있는데요. 그런데 필사한 노트를 몇 달 뒤에 다시 펴 보면 저자의 문장만 빽빽하고 제 생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글자는 다 옮겼으면서 그 문장이 저한테 왜 좋았는지는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것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손만 바빴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카라 읽는 방법부터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바카라을 읽으면 임팩트 있는 구절 하나만 고릅니다. 열 쪽에서 한 문장만 남기는 연습입니다. 그다음 그 문장을 저자의 단어를 하나도 쓰지 않고 제 말로 다시 적어 봅니다. 안 적히면 아직 이해한 게 아니었습니다. 바둑 기사가 대국이 끝난 뒤 바둑알을 처음부터 다시 놓아 보는 것을 복기라고 합니다. 바카라을 덮고 구조대로 다시 적을 수 없으면 그저 글자를 구경한 것이었습니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은 안개 같아서, 적어서 눈에 보이게 만들지 않으면 제 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걸 계속 하다 보니 바카라에 이어 사람 말도 세 줄로 다시 적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시간짜리 회의도 결국 상대가 하고 싶은 말은 한두 가지였고, 그걸 제 말로 바꿔 적을 수 있으면 나머지는 다시 들춰 볼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반대로 세 줄이 안 나오는 회의는 제가 집중을 못 했거나, 회의 자체가 정리가 안 된 자리였습니다.


일에서도 똑같았습니다. 전 온라인 게임에서 다른 분이 맡던 교육 과정을 넘겨받던 날, 저는 기록 도구를 켜 두고 듣고 되묻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나중에 기록을 다시 보니 끝부분에서 제가 크게 보면 세 가지라고 말하다가, 아니 네 가지라고 고치고 있더라구요. 넘겨주는 분이 말한 걸 제 입으로 다시 세어 보다가 하나 빠뜨린 걸 그 자리에서 알아챈 것입니다. 받아 적은 메모에는 빠진 게 안 보였는데, 제 말로 다시 세어 보니 그 자리에서 보였습니다. 그 뒤로 회의나 미팅이 끝나면 그날 안에 들은 것을 세 줄로 다시 적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 한 줄, 내가 할 일 한 줄, 아직 모르는 것 한 줄. 받아 적은 수첩은 그대로 두고, 노션에 새로 적습니다. 이 세 줄이 안 적히면 저는 그 회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보고, 다음 날 다시 묻습니다. 다시 묻는 게 좀 민폐 같아 망설이던 때도 있었는데, 세 줄을 들고 가서 이렇게 이해했는데 맞는지 확인하면 오히려 상대가 고마워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3. 대상 하나당 한곳에 모아 두고, 날짜를 적습니다


세 번째는 메모를 어디에 두느냐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올해 여름 흩어져 있던 제 자료를 한번 크게 정리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가장 불편했던 것이 날짜별로 파일을 계속 새로 만들던 습관이었습니다. 어떤 일 하나와 있었던 과정을 이해하려면 날짜가 다른 파일을 서너 개나 열어 봐야 했습니다. 적을 때는 편했는데 꺼낼 때는 매번 시간이 걸렸던 것이죠. 그래서 그 뒤로는 대상 하나당 파일 하나로 합쳤습니다. 맨 위에 한 줄 요약, 그 아래 지금 상태, 그 아래로 시간 순서대로 새 소식이 쌓이는 구조입니다. 메신저 대화방 모양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이렇게 두고 나니 어떤 일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물으면 파일 하나만 열면 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배운 것은 메모도 늙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정리하다 보니 누가 누구를 소개했는지가 반대로 적혀 있는 메모도 있었고, 이미 끝난 일인데 진행 중이라고 적혀 있는 메모도 있었습니다. 한 번 적어 두고 끝나는 게 메모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 계속 들여다보고 틀린 것을 고쳐 줘야 쓸 수 있는 것이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은 새 소식을 적을 때 맨 위의 한 줄 요약과 지금 상태도 같이 고칩니다. 그 두 줄만 맞아 있으면 아래가 아무리 길어도 다시 읽는 데 부담이 없었습니다. 노션을 쓰시든 수첩을 쓰시든 도구는 크게 상관이 없었고, 한 대상에 대한 메모가 한곳에 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날짜도 꼭 같이 적습니다. 예전에 일이 몰릴 때 할 일 목록을 적어 두고도 전부 중요해 보여서 줄이 안 세워진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일 이름 옆에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날짜를 하나씩 적어 보니 무엇을 먼저 할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메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제 들은 말인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 일인지가 옆에 없으면 다시 읽을 때 그 메모가 지금도 유효한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무엇을 맡았는지 같은 것은 제 기억보다 메모를 먼저 열어 봅니다. 몇 번이나 함께 이야기한 일이라 당연히 기억한다고 생각했다가, 적어 둔 기록을 열어 보니 다른 분이 맡은 일이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그거 누가 했었지 싶을 때, 기억으로 답하고 싶을 때일수록 메모를 먼저 엽니다. 메모 한 줄이면 대부분 확인이 끝나는데, 그 한 줄을 건너뛰면 엉뚱한 분께 연락하는 일이 생기더라구요.


이렇게 하고 나서 달라진 건 회의 다음 날 아침입니다. 예전에는 전날 받아 적은 메모를 다시 읽으며 이게 무슨 말이었는지 한참 떠올려야 했는데, 지금은 전날 밤에 제 말로 적어 둔 세 줄을 열면 그날 할 일이 바로 보입니다. 상대의 상황이 한 줄 옆에 붙어 있어서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도 같이 보입니다. 함께 일하는 분들께 정리한 내용을 공유할 때도 제 말로 다시 적은 것을 드리니, 다시 묻는 일이 꽤 줄었습니다. 메모의 양은 예전보다 줄었는데 쓰는 횟수는 훨씬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 달 전에 적어 둔 메모를 열어도 그때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바로 읽히니, 같은 고민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 일이 줄었습니다. 적어 둔 것을 믿을 수 있게 되니 머릿속에 들고 다니는 일도 가벼워졌습니다.


제가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점이 있다고 한다면, 메모는 적어 둔 그날 안에 내 말로 다시 적어 봐야 비로소 제 것이 된다는 점입니다. 적는 것은 누구나 하는데, 다시 적어 보는 것은 생각보다 아무도 안 하더라구요. 그래서 앞으로도 1) 미팅 전 메모에는 질문만 적고 대답 칸은 비워 두기 2) 회의가 끝나면 그날 안에 상대가 원하는 것, 내가 할 일, 아직 모르는 것을 세 줄로 다시 적기 3) 대상 하나당 한곳에 날짜와 함께 모아 두기, 이 세 가지를 지켜 보려고 합니다. 다들 회의가 끝난 뒤 메모는 어떻게 하시나요? 댓글로 알려 주시면 저도 배우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일요일도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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