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번호판에서 숫자 3을 찾습니다

회사에서 덜 지치려고 하나씩 붙여 온 작은 습관들

by김도경 dkkim

아침에 출근할 때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지나가는 차 번호판에서 숫자 3을 찾습니다.

찾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왜 하필 3이냐고 물으시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앞차 번호판에 3이 세 개 있었고, 그날 일이 잘 풀렸습니다. 그 뒤로 그냥 찾습니다.

회사 일은 대부분 제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메일 답장은 늦게 오고, 회의는 길어지고, 잘될 줄 알았던 일이 갑자기 멈춥니다. 그런 날이 쌓이면 출근길부터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제 마음대로 되는 작은 일을 하나씩 만들어 두기 시작했습니다.

번호판의 3도 그중 하나입니다. 찾으면 이기고, 못 찾아도 지는 건 없습니다. 하루를 이긴 채로 시작하는 겁니다.

오늘은 그렇게 붙여 온 습관들을 적어 보려고 합니다. 대단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 말끝에 ^^를 붙입니다.

업무 메시지는 짧게 쓰다 보면 차갑게 읽힙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받는 쪽에서는 혹시 화가 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끝에 ^^를 붙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같은 부탁인데 답장이 조금 빨리 옵니다. 제 느낌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붙입니다.


둘. 늦게까지 남아 있으면 샌드위치 핑계를 댑니다.

야근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듣습니다.

"늦게까지 정말 열심히 하시네요."

예전에는 이 말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것도 어색했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답합니다.

"샌드위치 먹느라 좀 늦었습니다."

대부분 웃으십니다. 가끔 안 웃으시면 한 번 더 묻습니다. "이게 왜 안 웃긴가요?"

그러면 그때는 웃으십니다. ㅎㅎ

멋있어 보이려고 애쓰는 것보다, 가끔 조금 망가지는 쪽이 오히려 편했습니다. 저도 상대도요.

셋. 질문을 받으면 1~3초 뒤에 답합니다.

저는 원래 질문을 받으면 바로 대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빨리 답해야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바로 나간 대답은 자주 틀렸습니다. 질문을 끝까지 안 듣고 대답부터 한 거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속으로 하나, 둘을 셉니다.

그 1~3초 사이에 질문을 한 번 더 듣습니다. 이분이 진짜 궁금한 게 뭔지.

그랬더니 그 몇 초 때문에 답이 짧아졌습니다. 묻지 않은 것까지 길게 말하는 일이 줄었습니다.


넷. 부탁받은 것에 하나를 더 얹습니다.

자료 하나를 부탁받으면, 하나를 더 붙여서 드립니다.

크게 붙이는 건 아닙니다. 표를 부탁받았으면 맨 위에 세 줄 요약을 붙이는 정도. 회의 시간을 잡아 달라고 하시면 회의실 예약까지 해 두는 정도입니다.

받는 분이 "어? 이것까지요?" 하시는 순간이 좋습니다.

그 순간이 쌓이면, 다음 부탁이 올 때 조금 더 믿고 맡겨 주십니다.


다섯. 그래도 안 되는 날은 그냥 나가서 걷습니다.

다 해도 안 풀리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일단 나갑니다. 걷다가 조금 괜찮아지면 뛰어 봅니다.

100미터. 할 만합니다.

500미터. 괜찮습니다.

1킬로미터. 이쯤 되면 무슨 일로 답답했는지 반쯤 잊어버립니다.

돌아와서 자리에 앉으면, 아까보다는 조금 할 만해져 있습니다.


적어 놓고 보니 정말 별것 없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오래 버티는 힘은 이런 별것 없는 것들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큰 결심은 사흘을 못 가는데, 작은 습관은 몇 년을 가더라고요.

오늘 퇴근길에 하나만 만들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찾으면 기분 좋아지는 숫자 같은 거요.

여러분은 회사에서 덜 지치려고 하는 작은 습관이 있으신가요? 댓글로 알려 주시면 저도 하나 훔쳐 가겠습니다 ㅎㅎ

ps. 오늘 아침에는 3을 네 개 찾았습니다. (주말인데 왜 밖에 있었는지는 묻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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