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비싸다"는 말이 비싸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by김도경 dk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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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안 하는 진짜 이유를 잘 말하지 않습니다.

제일 말하기 편한 걸 대신 말합니다. 저는 그걸 영업을 하면서 배웠습니다.

"가격이 좀 세네요. 조금 안 될까요?"

영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저는 이 말을 들으면 심장이 뛰었습니다. 드디어 살 마음이 생기셨구나 싶었거든요. 여태 돌려 말씀하시던 분이 처음으로 숫자를 꺼내신 거니까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대답했습니다. "제가 위에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팀장님을 붙잡고 사정을 했습니다. 이 정도는 맞춰 드려야 계약이 됩니다, 지금 거의 다 왔습니다, 하고요. 어렵게 승인을 받아서 다음 날 아침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원장님, 말씀하신 대로 맞춰 드리기로 했습니다."

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아, 네. 제가 좀 더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그해에 그렇게 깎아 드린 곳이 열몇 곳쯤 됩니다. 그중에 계약까지 간 곳은 세 곳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덜 깎아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다음번엔 처음부터 더 내려서 들어갔습니다.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팀장님이 한 번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깎아 줬는데 왜 안 돼?" 저도 그게 궁금했습니다.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깎아 드린 그 숫자가 애초에 걸림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가격 이야기가 나올 때 두 가지가 섞여 있었습니다.

하나는 정말로 예산이 거기까지인 경우입니다. 이건 숫자를 맞추면 계약이 됩니다.

다른 하나는 아직 확신이 안 서서 제일 말하기 편한 걸 꺼내신 경우입니다. "이게 우리한테 정말 필요한가"는 꺼내기 어려운 말입니다. 앞에 앉은 사람한테 하기에는 매정하고, 스스로도 아직 답이 안 나온 질문이니까요. 그런데 "좀 비싸네요"는 아무 때나 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기분 상하지 않고, 대화도 안 끊깁니다.

저는 혼자 이걸 가짜 걸림돌이라고 부릅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똑같이 합니다. 가기 싫은 모임에 "그날 일이 좀 있어서"라고 하지, "별로 가고 싶지 않아서"라고는 안 합니다. 거절할 때 진짜 이유를 그대로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게 예의라고 배웠으니까요.


그러니까 상대가 꺼낸 첫 번째 이유는 대체로 진짜 이유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게 그 자리에서 꺼내기 제일 편한 말이라서 그렇습니다.

문제는 둘이 똑같이 들린다는 겁니다. 말투도 같고, 표정도 같고, 다음에 이어지는 침묵도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는 구분을 못 합니다.

가짜 걸림돌에 숫자로 대답하면 상대는 확신이 없는 상태 그대로 남는 것 같습니다. 깎아 드렸는데도 "생각해 보겠다"가 돌아왔던 게 그래서였나 싶습니다. 제 쪽에서는 큰일을 해낸 건데, 상대 쪽에서는 처음 자리에서 한 발도 안 움직인 거니까요.

저는 그걸 열몇 번 겪고 나서야 눈치챘습니다.


언제 나왔는지로도 조금은 갈리더라고요.

설명을 다 듣고,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한참 있다가 마지막에 나오는 가격 이야기는 대개 진짜였습니다. 머릿속에서 이미 한 바퀴 돌려 보신 거죠. 쓸지 말지는 정해졌고 남은 게 숫자인 겁니다.

앉자마자 십 분 만에 나오는 가격 이야기는 대체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직 뭘 사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니까요.

물론 이것도 자주 틀립니다.

그래서 그냥 여쭤보게 됐습니다.


요즘은 깎아 달라는 말을 들어도 숫자 이야기를 바로 안 하려고 합니다. 대신 이렇게 여쭤봅니다.

"원장님, 가격이 맞는다고 치면 그다음엔 뭐가 걸리실까요?"

"아니 뭐, 가격만 맞으면 하죠." 이렇게 대답이 짧게 끊기면 저는 그때 회사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꺼냅니다. 얼마를 맞춰 달라는 게 아니라 얼마면 도장을 찍으신다더라는 이야기가 되니까, 저도 말을 꺼내기가 한결 낫습니다.

"음... 사실 저희가 이걸 다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다른 게 나오면 가격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때 나온 그 문장이 제가 풀어야 할 숙제였습니다. 가격을 깎는 게 아니라 그 걱정을 덜어 드리면 되는 일이었던 거죠.

이 질문에서 나온 대답들은 대개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데스크에 사람이 없다, 원장님이 직접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지금 쓰는 것도 절반은 안 쓰고 있다. 제가 견적서를 다시 뽑아서 풀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곳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번에 비슷한 거 넣었다가 한 달 만에 접었어요."

그날은 그냥 그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왜 접으셨는지, 뭐가 제일 번거로우셨는지. 삼십 분이 그렇게 갔습니다. 계약은 그다음 달에 됐고, 가격은 처음 드린 그대로였습니다.

반대로 진짜 예산 문제였던 곳도 있습니다. 그때는 숫자를 맞춰 드렸고 그달에 계약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열 곳 전부에 대고 깎았는데, 지금은 몇 곳에만 깎습니다.

나머지에는 다른 걸 해 봅니다. 그게 달라진 전부입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이건 한참을 손해 보고 배웠습니다.

깎아 드릴 때 저는 조건을 같이 걸지 않았습니다. 깎아 드리면 고마워하실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는 그 자리에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고, 그게 전부였습니다.

다음 미팅은 깎아 드린 가격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가격이 원래 가격이 돼 있더라고요.

재계약 때 한 번 더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내려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계약 기간이든 시작 시점이든 결제 방식이든, 상대가 받아들이실 만한 걸로 하나만 같이 말씀드립니다. 대단한 걸 거는 게 아니라 그냥 한 문장 붙이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다음에 이야기가 다시 나오면 제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더라고요.


지금도 미팅에서 "가격이 좀..." 하고 말끝을 흐리시면 여전히 심장이 뜁니다.

다만 예전처럼 바로 회사에 전화하지는 않습니다. 한 번 더 여쭤보고 나서 정합니다.

이게 영업에서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팀원이 "시간이 없어서 못 했어요"라고 할 때, 친구가 "요즘 좀 바빠서"라고 할 때도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그 말을 그대로 받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알게 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다음에 뭐가 걸리냐고 한 번 더 물어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저는 그걸 배우는 데 몇 해가 걸렸습니다.


ps. 물론 이렇게 해도 대부분은 안 됩니다. 그래도 왜 안 됐는지는 알게 됩니다. (그게 어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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