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

골프 클럽

by진화정


봄여름가을겨울

(골프 클럽)


나는 2학년을 마치고 일 년 간 휴학하기로 결심했다. 뭔가 변화를 위한 계기가 필요했다.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 정도로 학점이 나올 리 없었다. 그래서 넉넉지 않은 형편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부모님의 간곡한 만류에도 나는 휴학을 강행했고, 소정의 교육을 받아 김포씨사이드 컨츄리클럽에서 일하게 되었다. 산과 바다와 어우러진 18홀을 가진 아름다운 클럽이었다. 빨간 마이를 입은 무서운 마스터님이 우리를 가르쳐 주셨다. 그녀는 매우 엄격했지만, 동시에 은근히 따뜻했다.


나는 신입교육생들과 함께 골프에 대한 규칙과 상식에 대해 공부했고, 새벽부터 백대기를 했고, 그린을 돌면서 디보트를 하고 공을 주웠다. 카트를 타고 돌면서 홀과 그린,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골퍼들이 즐겁게 라운딩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드디어 실전에 투입되어 골퍼들과 라운딩을 했는데, 바람의 방향과 세기, 공의 위치와 그린과의 거리, 홀의 위치와 특성, 그린의 상태와 라이 등을 숙지해야 했기에 만만치 않았다. 교육을 받으면서 나는 틈틈이 클럽의 아름다운 경치를 두 눈에 담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라운딩은 계속되었고, 여름에는 하루에 두세 번 라운딩을 해야 했다. 필드엔 이글이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분홍 유니폼은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얼굴엔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고 여전히 친절하게 응대하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라운딩은 계속 됐다. 그땐 솔직히 화도 났는데, 함께 라운딩 했던 분이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이 나에게 비에 젖어 미끌미끌한 골프채를 쥐어주며 한 번 휘둘러보라고 했다. 라운딩이 끝나고 무거워진 유니폼을 세탁기에 돌리고 숙소에 와서 드러눕던 이층침대가 생각난다. 불 꺼진 어두운 방, 혼자 스탠드를 켜고 천장 가까이에 엎드려 누워 일기를 쓰곤 했다.


그렇게 봄과 여름이 거의 지날 무렵, 우리 컨츄리클럽에서 골프대회가 열렸다. 운 좋게 나도 프로 골퍼분과 함께 라운딩 할 수 있게 되었다. 가까이에서 직접 경기에 참여하고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좋았고, 비록 힘들었지만 보람되고 즐거웠다. 골퍼분이 돈을 넉넉히 챙겨서 봉투에 넣어주셨는데, 그 봉투를 잃어버려서 당황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밤꽃 향기가 아슬하게 퍼지던 가을이 왔고, 짓궂은 골퍼분의 농담에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모두 재밌다고 웃는데, 나만 슬며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고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되었고, 눈이 많이 쌓여서 아침부터 제설작업에 투입되었다. 팀을 정하고 9홀씩 나눠서 18홀을 깨끗이 정리하고 눈밭에 뒹굴었다. 눈이 왔어도 라운딩은 계속되었다. 칼바람 때문에 생각보다 공이 훨씬 더 멀리 가기도 했고, 바로 앞에서 뚝 떨어지기도 했다. 호수가 꽁꽁 얼어서 공이 얼음을 맞고 통통 사방으로 튀었다. 공이 어디로 튀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공을 회수했는데, 어떨 때는 도저히 못 찾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보내고 나는 다시 그리운 대학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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