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러 나왔다가

배우는 삶

by이현지



한 여자의 소식을 오랜만에 듣게 되었다.



그녀는 입구 앞에서 문을 열고 들어갈까 말까를 수십 번이나 망설였다고 한다. 문 앞을 서성이다 끝내 돌아서야 했던 그 발걸음에 얼마나 아픈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

반복되는 일상이 무료하다고 쉽게 단정 짓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던 날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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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째 출근하고 있는 미용실, 여백로더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품어 주는 곳이다. 많은 사람과 연결되고 연대하겠다는 큰 꿈을 안고 처음 발을 들였지만, 7년이라는 시간은 설렘마저 익숙함으로 물들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나는 가장 먼저 PC 모니터를 확인한다. 오랜 시간 동안 단골손님들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보니 성함만 봐도 얼굴이 다 떠오르는 경지에 이르렀다. 예약목록 사이로 반가운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약 2년 만에 다시 예약을 주신 반가운 고객님이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세월이 이렇게나 흘러버렸다는 것을 이제야 인지하게 된다. 미용실을 운영하다 보면 실제로 몇 년 동안 단골이었던 고객님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찾아오지 않게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럴 때마다 정말로 무슨 일이라도 생기셨는지 걱정이 되어 안부를 여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용기가 부족하다.


‘이번 달에는 왜 안 오시지? 오실 때가 되었는데….’

별일 없이 잘 지내고 계신 걸까 걱정되는 마음이 가장 크지만, 연락 한 번 하지 못하는 나는 영락없는 겁쟁이가 분명했다. '그래, 바쁘신데 내가 연락하면 미용실 옮겼냐고 타박하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우실 테지.'라고 생각하며 자기 합리화를 해 보지만, 결국 나는 어떠한 이유로든 내게 실망해서 떠난 그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2년 만에 다시 돌아오신 고객님이 매장 입구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온다. 원래도 내가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라 반갑고 기뻐 날뛸 지경이다. 오랜만에 만난 고객님은 스타일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언제나 턱선을 넘지 못해 단정하고 짧았던 머리가 이제는 어깨에 닿을 만큼 제법 길어 있었고, 늘 고수했던 생머리도 이제는 굽슬한 게 펌을 하신 모양이다. 활짝 웃는 얼굴, 상대방을 배려하는 몸에 밴 제스처. 모든 게 그대로인 고객님과의 재회는 성공적이었다. 원래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던 분이었기에, 오늘 하루는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으로 남게 될 것만 같았다.


고객님의 머리를 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나는 늘 똑같은 하루하루를 지내며 일만 했고, 매장 귀신이라 집이랑 여기만 왔다 갔다 하고 있어서 정말 재미없어 보이지 않느냐의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아이스 브레이킹을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매일이 똑같았다고 투덜대듯 말하는 나와는 반대로, 이 사람의 지난 2년은 나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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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고객님께서 마지막으로 우리 매장을 찾아주셨던 날이 기억난다. 나에게는 그저 반복되는 일상 중 하루였던 그날이, 고객님께는 암 판정을 앞둔 가슴 아픈 날이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판정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미용실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결과를 예감하고 계셨기에, 우리 공간에서만큼은 기분 좋은 마지막 선물을 받고 싶으셨다고 했다.


항암 치료로 인해 모자를 벗을 수 없었던 나날들에도, 일상이 너무 그리운 나머지 남편 혼자 커트하러 보낸 후 기다리는 차 안에서 많이 우셨다는 이야기. 그 누구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숨어 지내던 힘들었던 시간들... 그리고 머리를 길러 냈지만, 전과는 다르게 볼품없어진 내 모습이 도저히 창피하여 얼마 전 다른 곳에서 펌까지 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처음 나를 찾아오신 게 바로 지금이라는 이야기….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일상을, 나는 무료한 하루로 칭하며 무미건조하게 살아냈을 나날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 온다. 그리고 지난 2년의 시간을 의심과 자기 합리화로 외면해 버렸던 나의 미개함에 치가 떨린다. 이렇게 선하고 귀한 한 사람을, ‘아니면 말고’라고 생각했던 옹졸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고객님은 늘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가끔씩 머리 하러 이곳에 오셨던 지난날들도, 나를 칭찬해 주러 일부러 시간 내어 오셨나 싶을 만큼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고 가셨다. 일부러 그런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태어날 때부터 맑은 영혼을 가지고 이곳에 오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닮아 무척이나 예쁘장했던 어린 따님도, 소아암 환우들을 위해 머리카락을 기증하겠다며 우리 미용실에 같이 온 적이 있다. 나는 평생을 살면서 그런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철없는 내가 열댓 번은 우려내야 드러나는 진국 같은 그 작은 아이의 긴 머리를 잘라주었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녀는 그런 아이의 엄마이자 다정하고 사려 깊은 여자였다. 또한 청량한 목소리와 더불어 표정을 담아 대화를 주도하는 몇 안 되는 보물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힘들다 힘들다 하시면서도, 하시는 사업이 그렇게 승승장구 잘되지 싶었으니까.


도대체 세상은 이런 선한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지켜 주고 있는 걸까? 타인을 위해 선한 영향력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토록 고귀한 사람들을 지켜 줄 방법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훨씬 오래전에 병들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세상은 여전히 존재하고, 나름의 모습으로 잘 굴러가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 세상은 이미 충분히 따뜻한 곳이라고 줄곧 믿어 왔다. 그러면서 문득 깨닫는다. 세상은 이런 선한 사람들을 홀로 두지 않는구나. 그들 곁에 좋은 사람들을 보내 주고, 비슷한 마음의 결을 지닌 인연들을 이어 주며, 서로를 통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해 주는구나. 어쩌면 세상이 선한 사람들을 지키는 방법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온기를 지닌 사람들이 서로의 곁을 내어 주고, 그렇게 서로를 지켜 주며 살아가는 것.



그러면서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군가는 내게 그렇게 깊이 생각하며 살면 피곤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다 보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다 보면 숨 쉬고 살아가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없이 배우게 된다. 한때는 야박할 만큼 정확하고, 똑 부러지고, 계산적으로 살아온 젊은 날들이 있었을지라도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의 마음을 배워 가는 미용사의 눈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돈 벌러 나왔다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간다.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깨닫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경험할수록 내 앞에 마주한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다시 용기를 내어 이 넓은 미용실의 문을 열고 찾아와 주신 그녀를 존경한다. 그런 고귀한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들과 비슷한 마음의 결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게 주어진 하루에 무한히 감사하려 노력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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