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컷헤어를 유지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해 주셨던 고객님과의 만남은 늘 유쾌하고 새로웠다. 꽤나 털털한 성격에 해외로 유학 보낸 고등학생 따님이 있었던 그분을 보며, 나도 저런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늘 생각하고는 했다. 몇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우리는 늘 함께했다. 방학의 끝자락에 따님은 항상 우리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출국했고, 그 분주한 개학준비 과정에 내가 속해있는 것 같아 괜히 우쭐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고객님의 연락이 뜸해진다. 예고 없는 만남과 헤어짐은 우리 직업의 숙명이라지만 여전히 적응하기가 어렵다.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긴 고객님들은 일하다가도 문득 생각이 난다. 그날 따님의 앞머리길이 때문에 의견분쟁이 있었던 탓일까, 머리가 마음에 안 들었을까 행여나 서운한 점이 있었을까? 그러다가 또다시 반복되는 일상의 굴레에 갇혀 생각은 점점 흐릿해져 간다.
정신없는 나날들로 수개월이 흘렀다. 다시 돌아온 방학시즌에 반가운 연락이었다. 따님의 머리를 예약하기 위해 다시 연락을 주신 고객님께 반가운 마음을 연신 숨길 수가 없다. 오시면 온 마음을 다해 맞이해 드려야지.
예약 당일에 따님과 함께 방문해 주신 고객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씩씩하고 밝은 모습이다. 추운 날씨에 얼굴보다 훨씬 큰 털모자를 쓰고 오신 고객님은 역시나 개성 있고 아름다웠다.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고 따님의 머리를 웨이브지게 진행하기로한다. 풍겨오는 아우라만큼이나 긴 머리를 소유하고 있는 그녀의 따님은 숱이 많고 머리가 긴 탓에 머리 하는데만 앞으로 3시간 이상이 걸릴 예정이다.
오랜 시간 혼자 대기석에서 기다리고 계실 어머님을 바라본다.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이를 어쩌나...
모자 쓰신 거 보니 머리 안 감으신 것 같아서요.”
기다리시는 동안 예쁘게 드라이라도 해드리겠다고 당차게 말했으나 극구 거부하셔서 말았다. 그럼 뭘 해드리지, 모발케어라도 해드릴까 몇 번이나 권유드렸지만 다 괜찮다고 하신다.
지루했을 3시간이 금방 지났다. 따님의 머리가 다 끝나고 다음번 헤어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나에게 보여줄 헤어 사진이 있다고 한다. 얼굴을 맞대고 핸드폰 앨범을 둘러보는 따님의 손가락 사이로 선명하게 드리우는 사진 몇 장이 나의 뇌리에 깊게 박힌다. 빠르게 지나갔지만 슬로모션처럼 정확하고 선명한 여러 장의 사진들.
대학병원 환자복을 입고, 병동침대위에 누워 온갖 선들이 즐비한 기계를 연결하고 누워계시는 삭발한 어머니의 투병 사진이었다. 지금 저 쪽에서 큰 모자를 쓰고 따님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계신 소중한 나의 고객님이다.
아차...
나만 빼고 모두가 배려 깊은 세상이다. 좁디좁은 바늘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던 나를 자각하게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아프다. 내 기준에서 왜? 를 외치며 내가 해준다니까요? 하고 우기지 말 것을.. 가만히나 있을 것을 그랬다.
"잘 지내셨어요?"
예전에는 그저 인사치레로, 습관처럼 건넸던 말들이 이제는 쉽게 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으로 남는다. 어쩌면 하지 않느니만 못한 인사도 있고, 상대의 마음에 공감한다는 이유로 무심코 선을 넘어버리는 리액션도 있다.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상대가 지키고 싶었던 마음의 경계를 침범한 건 아닐까. 내 마음 편하자고 일방적으로 건넸던 말들,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무심코 넘었던 마음의 경계들. 결국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말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말을 아끼는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불혹을 앞둔 이제야, 나는 그런 어른이 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