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 크라솝스카야의 저서 <러시아 발레의 역사>의 첫 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러시아 발레는 7세기 후반에 발생했다." 첫장부터 역사왜곡이 나왔다. 러시아 발레가 위대하긴 하지만 이건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 시기에 러시아에서 원시적인 제의를 위한 노래와 춤이 처음 시작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이다. 표트르 1세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러시아 곳곳에서 성행했던 민속춤과 노래가 다방면으로 발전을 해서 전승된 것이 훗날 러시아가 고전발레의 형식을 만들면서 발레 작품 속의 캐릭터 댄스나 디베르티스망 등에 흡수되었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발레 음악 <봄의 제전>을 창작하는 데에 영감을 주었다고 하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다.
"표트르 1세 이전의 러시아에는 발레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 1689년 표트르가 권력을 잡기 전까지 이 나라가 정확히 얼마나 고립되고 문화적으로 빈곤했는지는 상기해볼 가치가 있다. 러시아 예술과 음악은 거의 전적으로 이콘(러시아 정교회의 예배용 성화)과 성가에 한정되어 있었다. 악기는 죄가 된다고 간주되었고 춤은 농민들이나 추는 것이었다. 궁정 발레는 존재하지 않았다." - <아폴로의 천사들 : 발레의 역사> 중에서, p.301 -
저자가 표트르 1세 이전의 러시아의 문화적인 빈곤을 교묘하게 감추면서 기술했다. "1673년 2월 8일 모스크바 근교의 프레오브라젠스키라는 마을에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 대한 발레>가 상연되었다. 이 러시아 최초의 발레는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황제의 명령에 의해 7일 만에 준비되었다. 황제는 무대 앞에 마련된 안락의자에 앉아 발레를 관람했다. (p.11)
똑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한지영 무용 평론가는 <발레, 미술관에 가다>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춤을 죄악시하던 땅은 어떻게 무용의 제국이 되었는가? 누가 무대 위 질서를 만들었고, 어떤 손이 러시아인의 몸을 유럽인처럼 훈련시켰는가? 그 시작은 한 화아제의 카브리올이었다. 그리고 두 여제가 만든 무용학교였다. 러시아 무대의 첫 장은 1673년 2월, 모스크바 근교의 어느 작은 마을 프레오브라젠스코예에서 열렸다. 그날, 독일 무용단이 공연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러시아 발레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남아 있다. 황제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의 명으로 7일간 계속된 이 공연은 발레가 처음 러시아 땅을 밟은 순간이었다." (p.119)
"비록 계몽운동이 지주들과 농노제 옹호자들의 손에 의해 멋대로 잔인하게 심어졌지만 말이다."(p.46)와 같이 굳이 없어도 되는 문장들이 있어서 이런 부분들은 다 걸러서 읽고 특히 앞부분의 내용들은 큰 틀에서만 내용 정리했다.
어쨌든 러시아의 문화적인 빈곤은 표트르 1세로 인해 탈출하게 되었고, 서구화 정바카라의 일환으로 발레를 수입했다. 러시아에 입성한 발레는 처음에는 예술이 아닌 예법으로 들어왔다. 과거 프랑스 절대 왕정 시절에 귀족 자제들이 펜싱, 승마와 함께 꼭 갖춰야 할 예절 덕목으로 '발레'를 배웠던 것처럼 표트르 1세도 러시아 귀족 자제들이 예절로서 '발레'를 필수로 배우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발레 교육의 틀을 만들어 제도화 한 이는 안나 이바노브나 여제로 러시아에 발레를 본격적으로 이식한 인물이다. 1738년에 제국발레학교 설립을 허가했고 오늘날 바가노바 발레학교의 기원이 되었다. 군사 훈련의 목적도 가지고 있었기에 독일과 프랑스 기관들을 모델링하여 군대식 훈련과 조직화로 러시아 무용수들을 훈련시켰다. 바가노바 발레학교의 엄격한 통제 시스템, 학년별로 세분화된 교육 체계, 선후배 관계와 사제 관계에 존재하는 서열 중심의 구조 등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러시아 발레를 예법과 군사 훈련을 넘어선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은 예카테리나 2세이다. 예카테리나 2세는 1766년에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 곳의 국립 극장을 공식 설립했다. 그 중 하나가 훗날 마린스키 극장으로 이어지는 기관이 되었다.(소련 시절에는 키로프 극장으로 개명했다가 다시 마린스키로 복원되었다.) 1773년에는 모스크바에도 발레 교육과 극장을 도입했고 이 기관들이 훗날 볼쇼이 발레학교와 볼쇼이 극장의 모태가 되었다.
러시아 황실 주도하에 황실에서 지원하는 발레 훈련 기관과 극장들이 설립되어 빈곤한 고아들을 끌어들여 전문 무용수들을 훈련시키면서 국가의 품격을 상징시키는 예술로 격상시키는 사이 부유한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농노 극단'을 만들어 궁정 극장을 흉내낸 발레와 오페라 공연을 올렸다. 농노 극단들도 뛰어난 기량과 예술성으로 주목받았으나 19세기 중반 경제난에 시달린 귀족들이 헐값에 극단을 매각하거나 해산시켜 해체되었다. 해체된 농노 극단의 일부 무용수들은 제국 극장의 무용수가 되기도 했다. 한동안 러시아 제국 발레단의 대다수의 무용수들은 농노, 고아, 하층민들이었으며 이들은 국가의 보호 아래에 교육을 받으면서 유럽식 세련미를 체화했다.
이후에도 한동안 러시아 발레는 여전히 외국인 발레 마스터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1801년에는 프랑스 출신의 발레 마스터 샤를 루이 디델로가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단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디델로는 최초의 무용 이론가이자 프랑스 출신의 안무가였던 장 조르주 노베르의 제자답게 스승에게 배웠던 '발레 닥시옹'을 실천했다. 디델로는 발레 테크닉에 치중하기보다는 무대 장치로 극적인 효과, 드라마틱한 연극적인 표현들을 이식했다. 또한 디델로는 주연급은 외국인 무용수, 코르 드 발레는 러시아 무용수들을 배출했던 당시의 풍토를 뒤집고 아예 러시아인 스타를 만들겠다는 발상을 했다. 디델로의 주도로 발레 수업이 체계화되었다. 설령 디델로가 만든 발레 작품의 주제와 색채가 여전히 프랑스 스타일이었어도 이제 주연급은 러시아인들로 채워졌다. 따라서 러시아 발레에서 디델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 발레 닥시옹 : 장 조르주 노베르는 발레에 대해서 "단순히 춤을 추는 것이 아닌 춤 출 수 있는 드라마"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러시아 제국에서 반 제국주의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새로 즉위한 차르 니콜라스 1세는 그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이처럼 러시아가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동안 러시아 발레는 퇴화되기 시작했다. 다시 외국인 발레 종사자들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뛰쳐나온 무용수들과 발레 마스터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화려한 극장 아래에서 새 둥지를 틀었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의 낭만주의 발레가 드디어 러시아에 상륙했다. 마리 탈리오니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극장에서 <라 실피드>를 무수히 많이 췄다. 이어 <지젤>도 극장의 레퍼토리에 포함되었다. 쥘 페로, 카를로타 그리지 등의 발레 마스터와 발레 무용수 뿐만 아니라 세자르 푸니, 루드비히 밍쿠스와 같은 발레 음악 작곡가들도 러시아에 속속들이 도착했다. 이제 러시아 발레를 패권의 중심부에 놓을 발레 마스터가 러시아 발레의 역사에 등장한다. 바로 프랑스 출신의 안무가로 러시아 황실의 비호를 받으면서 클래식 발레의 형식을 완성한 마리우스 프티파이다.
러시아 발레의 역사에서 19세기 후반은 마리우스 프티파의 시대이다. 56년이라는 재임기간 동안 <파라오의 딸>, <돈키호테>, <라 바야데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레이몬다>, <백조의 호수> 중 1막과 3막 등 오늘날까지도 세계 유수의 발레단들이 레퍼토리로 삼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또 <지젤>, <파키타>, <라 에스메랄다>, <코펠리아> 등 선임 안무가들의 발레작품들을 재안무하면서 더 풍성한 작품으로 보존했다. 프티파는 차이코프스키, 글라주노프와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을 발레 극장으로 끌어들여서 협업함으로써 러시아 발레를 위대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프티파가 역사에 남긴 공훈은 바로 발레를 교향악으로 전개한 것이었다. 이것은 천재 작곡가들인 차이코프스키와 글라주노프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차이코프스키가 "발레는 교향악과 같은 것이다."라고 확언한 것은 공연한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 발레의 안무가 더 다층적이고 대조적이고 대비되면서 풍부한 시적 형상들과 감성들을 구현하게 된 것은 마리우스 프티파를 보조했던 차석 안무가 레프 이바노프의 천재성 덕분이다. 프티파의 아카데믹한 스타일과 레프 이바노프의 춤으로 음악의 이미지를 구현한 스타일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작품의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호두까기 인형>에서 눈송이 왈츠, <백조의 호수>에서 2막과 4장의 안무는 이바노프가 안무한 것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창조했다.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더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공>에 나오는 '플로베츠인의 춤'도 초연 당시 이바노프가 안무했으나 정작 평론가들은 발레 안무가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훗날 미하일 포킨이 이바노프의 안무에서 더 발전시켜 자신만의 <플로베츠인의 춤>을 만들었다.
프티파에게 영감을 준 발레리나들은 모두 이탈리아 출신으로 카를로타 브리안차, 피에리나 레냐니라는 무용수들이다. 이 중에서 레냐니는 발레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특별히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의 프리마 발레리나였던 레냐니는 눈부신 테크닉으로 팬심을 사로잡았던 당대의 스타였는데, 러시아에서도 신드롬을 일으켰다. 레냐니가 프티파의 <신데렐라>에서 32바퀴의 푸에테를 돌면서 러시아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본 프티파가 <백조의 호수>를 안무하면서 흑조 파드 되에 32번의 푸에테를 집어넣었다. 오데트와 오딜 역을 동시에 해낸 것도 그녀가 처음으로 그 뒤 안무가가 만들어낸 상반된 두 캐릭터를 무용수 한 사람이 소화해내는 1인 2역으로 굳어졌다.
프티파 시대의 대표적인 발레리노 역시 이탈리아 출신의 엔리코 체케티이다. 체케티는 무용수로서 뿐만 아니라 캐릭터에 대한 해석과 연기력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1889년에 프티파는 체케티를 위해 드리고의 <탈리스만>에서 우라간의 분량을 만들었고 1년 후에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파랑새의 분량을 만들었다. 사실 체케티는 교육자로서 아주 유명하다. 그에게 발레를 배우겠다는 무용수들은 넘쳐났고, 언제나 제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다녔다. 체케티의 제자들 중에 역사상 내노라하는 발레 무용수들이 많다. 그의 제자 중에는 바슬라프 니진스키, 안나 파블로바도 있었다.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었던 체케티는 러시아, 영국, 미국, 이탈리아를 오가며 발레를 가르쳤다. 훗날 그는 디아길레프와 협업하면서 발레 뤼스의 작품에 참여하기도 했다. 영국의 지식인들이 모여 발레 불모지였던 영국에 발레를 뿌리내리는 데에도 체케티의 발레 교육법의 영향이 컸다.
지금까지 프랑스인 프티파가 발레 작품을 안무하고, 작품의 주연은 이탈리아 무용수들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러시아인들이 채웠던 러시아 발레는 순수 러시아 출신이었던 레프 이바노프를 시작으로 점차 토종 러시아의 것으로 만들어나갔다. 러시아의 차세대 무용수들은 위대한 발레 스타들을 대거 탄생시켰다. 안나 파블로바, 타마라 카르사비나, 바슬라프 니진스키, 미하일 포킨이 있었고, 바가노바 메소드를 만든 아그리피나 바가노바도 있었다.
1909~1929년까지 약 20년이라는 기간동안 전유럽을 뒤흔든 발레 뤼스는 전통을 답습하는 러시아 황실 발레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해 모던 발레의 토대를 이룬 발레의 역사를 바꾼 발레단이다. 러시아 발레단이라는 뜻을 지닌 발레 뤼스는 발레리나들의 공기같은 움직임과 우아한 발레 포즈에 경도되어 있던 파리의 관객들을 충격에 몰아넣은 그러나 정작 러시아에서는 단한번도 공연을 하지 않은 발레단이었다.
발레뤼스의 무용수들은 신체 조건도 러시아 황실 발레단의 무용수들과 달랐다. 안나 파블로바, 타마라 카르사비나, 미하일 포킨, 바슬라프 니진스키 등 디아길레프 호에 탑승한 발레 무용수들은 길고 고르게 발달된 근육과 은은한 관능성을 지녔다. 이는 당시 러시아 황실 발레단을 장악했던 마틸다 크셰신스카의 풍만하고 요염한 매력과는 정반대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발레 훈련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했다. 이미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미래의 디아길레프 무용수들의 대부분을 가르쳤던 엔리코 체케티는 이후에도 발레 뤼스와 함께 유럽을 누볐다. 그들은 체케티의 지도하에 더 나긋나긋하면서 유연해졌고 더 이상 묘기처럼 발레를 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가진 기술적인 능력을 스스로의 신체에 조각하는 한편 유려한 움직임들을 계발하는 데에 사용했다. 카르사비나의 교양과 품위를 겸비한 관능적인 매력, 파블로바의 물결치는 듯이 빛나는 날카로운 연약함, 니진스키의 동물적인 움직임은 미하일 포킨의 혁신적인 안무에서 숨겨진 매력과 에너지를 불러냈으며 쇠퇴해갔던 유럽 발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모리스 라벨, 에릭 사티,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장 콕토, 가브리엘 샤넬 등 당대의 내노라하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발레 뤼스에 열광했으며 실제로 작품을 창작하는데에 참여했다. 이전의 발레 작품들은 수장격인 안무가가 대부분의 춤을 만들고 차석 안무가가 보조를 했다면 발레 뤼스의 창작 과정은 처음부터 집단 지성인들이 모여 토론하고 협의해서 만든 최초의 집단이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포킨의 <불새>, <페트루슈카>는 발레 뤼스의 대표작이 되었으며 니진스키의 <목신의 오후>, <봄의 제전>은 비록 초연 당시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오늘날에는 시대를 앞서나간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발레 뤼스의 발레 작품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은 점점 더 국제적으로 변해가면서 20세기의 음악, 미술, 발레 의상 등 다양한 분야로 그 영향력이 뻗어나갔다.
하지만 디아길레프가 꼭 지켰던 원칙이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안무가만큼은 반드시 러시아 출신이어야 했다. 디아길레프는 절대 유럽 출신의 발레 마스터들과 작업하지 않았다. 포킨과 니진스키가 사라지자 그는 러시아 출신인 레오니드 마신을 고용했으며 1925년에는 조지 발란신이 유럽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내기도 했다.
디아길레프가 발레사에 남긴 유산은 엄청나다. 러시아 출신이었던 그는 러시아 무용수들을 유럽으로 데려와 아방가르드 무용의 물꼬를 터서 모더니즘의 서막을 열었다. 또한 포킨, 니진스키, 마신, 발란신 등 유능한 안무가들이 동시대 작곡가들과 협업하도록 했으며 당대의 유명한 미술가, 패션 디자이너들도 끌어들여 장르를 넘나드는 새로운 예술세계를 그려나갔다. 디아길레프의 유산은 영국 발레의 초석을 세운 영국의 지식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영국의 엘리트들은 영국 발레를 만드는데에 발레 뤼스에서도 실마리를 얻었다.
<러시아 발레의 역사> 후기
확실히 요즘 발레 붐인가보다. 어느 순간부터 발레 티케팅이 치열해졌으며 특히 전민철 발레리노가 출연하는 공연 티켓은 암표로도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발레 용품 가격이 올랐는데도 취미 발레인들은 발레 장비 구입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발레의 '발'자만 붙어도 치솟는 인플레이션. 발레 서적도 마찬가지다.
600페이지가 넘는 베라 크라솝스카야의 <러시아 발레의 역사> 역시 정가가 거의 6만원이다. 아무리 벽돌바카라이라지만 너무한 가격이다. 물론 어려운 러시아어를 번역한 번역가의 노고가 있었겠지만 이런 벽돌바카라은 페이퍼 표지가 아니라 하드 커버로 제작했었어야 했다. 게다가 비싼 가격에 비해 바카라의 제본도 별로다.
무엇보다도 이 바카라의 번역도 별로다. 물론 번역가의 실력은 뛰어나겠지만 예술바카라을 매끄럽게 번역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번역가의 예술적 소양이 이런 예술 분야의 바카라을 번역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무용과 교수님들한테 검수라도 받았어야 했다.
전반적인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상태에서 입말이 매끄럽지 못하게 번역된 이 바카라은 읽기가 불편해서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그래도 내가 누구인가! 대한민국 아줌마이다. 본전 생각이 절실해서 스팀 오르는 머리 뚜껑 억지로 닫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끝까지 다 읽었다. 혹시나 내가 모르는 러시아 발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기대도 하면서 말이다.
물론 이 바카라에는 내가 몰랐던 러시아 발레의 역사가 정말 많이 나왔다. 큰 틀에서 볼 때에 굳이 몰라도 되는 초기 러시아 음악 작곡가와 발레 안무가들, 발레 무용수들이 정말 많이 나왔다. 이쯤되니 '나는 바가노바 발레학교 학생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외국인 발레 안무가들과 무용수들의 기여와 헌신은 은근히 디스하는 식의 역사 왜곡에 심기가 불편해지기도 했다. 굳이 몰라도 되는 러시아 발레계의 인사들을 부풀리는 국뽕에 가스라이팅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마리우스 프티파는 차마 디스하지 못했던데.
프티파 시대부터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까지의 내용은 이미 다른 바카라들에서 충분히 잘 나와있다. 그냥 레프 이바노프가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르 공> 중에서 "플로베츠인의 춤"을 안무한 적이 있었고 훗날 미하일 포킨이 발레 뤼스의 안무가로 활동하면서 이 작품을 안무했다는 사실만 이 바카라에서 건진 내용이었다. 또한 이 바카라을 보며 러시아 발레의 역사를 요약하자니 요약하기 애매한 문장들로 뒤덮여 있는데다 생각보다 알맹이가 없는 내용들이 많아서 결국엔 내가 소장하고 있는 발레바카라들을 보며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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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및 인용한 문헌 **
<아폴로의 천사들 : 발레의 역사>, 제니퍼 호먼스 지음, p.301~351
<발레, 미술관에 가다>, 한지영 지음, p.119~
<천상의 언어, 그 탄생에서 오늘까지 - 발레 이야기>, 이은경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