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가 주제인 소설 - 온다리쿠의 <스프링>
오랜만에 소설바카라을 읽었다. 바로 "발레가 주제인 소설". 온다 리쿠라는 일본인 소설가가 쓴 바카라이다. 평소 문학과 거리가 먼 탓에 내겐 저자의 이름이 생소했는데, 알고보니 아주 유명한 소설가이셨다. 연극이 주제인 <초콜릿 코스모스>, 클래식 음악이 주제인 <꿀벌과 천둥>으로 문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온다 리쿠가 이어서 발표한 발레가 주제인 소설 <스프링>은 주인공 하루가 발레 무용수로서, 안무가로서 예술 그 자체가 되어가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적지 않은 분량의 이 소설은 총 4챕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번째 챕터는 하루에게 예술적으로 첫 영감을 안겨주었던 후카쓰 준이 친구이자 존경하는 동료로써 바라본 하루의 모습, 두번째 챕터는 하루의 외삼촌인 미노루 씨가 바라본 하루가 무용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 세번째 챕터는 한때 함께 발레를 배웠던 동료이자 현재는 작곡가로 변신한 나나세가 하루와 협업을 하는 과정에서 바라본 하루의 모습, 네번째 챕터는 하루 자신이 진솔하게 드러낸 자신의 내면세계를 통해 춤 그 자체가 되어버린 하루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만춘', '만개의 봄'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하루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선생님들한테도, 심지어 부모님과 미노루 삼촌에게도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아이 그 자체이다. 그 신비로운 아이 하루는 신체적인 재능, 단번에 시선을 확 사로잡는 춤실력, 세상을 관찰한 것을 내면세계를 통해 통찰한 것을 안무로 표현해내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친구들 사이에서도 범접하기 힘든 매우 압도적인 존재이다. 당연히 시기, 질투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역시 일본 소설답게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게, 때론 만화스럽게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밀착 취재한 듯한 저자의 내공과 필력에 읽는 내내 나 자신도 모르게 소설 속에 동화되었다. 마치 내가 발레를 전공하는 학생인 것처럼, 무대 위에 오르는 무용수가 되어서 하루와 협업하는 동료가 된 것처럼 함께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 발레 작품의 구상에서 완성되기까지의 구슬땀 흘려가며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그 모든 무대 뒤의 현장들을 생생하게 바라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 소설은 언뜻보면 하루의 성장소설처럼 보이지만 문학적인 어휘로 발레의 세계를 그린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듯 싶다.
연극, 음악처럼 또다른 시간 예술인 발레. 한순간에 화려하게 빛을 내면서 순식간에 덧없이 허공에 흩어지는 찰나의 예술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갈아넣어 헌신하는 발레의 세계를 정말 이토록 섬세하게 조망했다.
"타인이 보는 세계와 내가 보는 세계가 같을까? 나의 세계를 전할 수 있을까? 이 세계를 이해해줄 사람이 있을까?"라고 자신의 내면에 근원직인 질문을 던진 하루의 내면세계는 발레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분야에 해당되는 질문이다.
온다 리쿠는 '봄'을 '죽음'과 연관지어 묘사했다. 그러면서 한낱 꿈꾸었던 아름다운 봄꿈처럼 덧없는 예술 발레를 여기에 비유한다. 그럼에도 주인공 하루는 언젠가는 자신도 사라질 존재이지만 아직은 만나지 못한 수많은 계절을 위해 춤을 추겠다고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 역시 하루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여운이 된 소설을 덮으며 '예술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예술 행위를 할까?', '인간은 왜 춤을 추는가?', '나는 어째서 여전히 발레를 붙잡고 있는가?'에 대해 또다시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스프링> - 가슴 뛰게 만드는 또는 스며들었던 문장들
1.뛰어오르다
그나저나 전설이 된 무용수는 그 무용수를 상징하는 포즈가 이미지로 남는 법이다. 니진스키라면 가지런히 모은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고 선 <목신의 오후> 속 그 포즈. 호르헤 돈이라면 무릎을 굴신하듯이 넉넉하게 구부린 <볼레로>의 그 포즈. 실비 기옘이라면 '여섯 시 포즈'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p.31)
외모도 훌륭하고 테크닉도 충분한데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반대로 대단한 테크닉도 없고 외모가 결코 뛰어나지도 않은데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어째서일까. 춤의 무엇이 사람을 매료시키고 눈길을 잡아끄는 것일까. (p. 37)
시선을 받는 것도 좋다. 내가 시선을 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 던져지는 시선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 나를 둘러싼 세계가 반전되고 나의 내장이 휙 뒤집혀 세상을 감싸는 듯한 감각에 잠기는 순간이 좋다. (p.38)
안무가는 자신이 출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는 작품은 만들지 못한다고들 한다.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의 안무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용수로서도 상당한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p.54)
한편으로는 발레의 기초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춤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엄청나게 어렵다. 템포가 느려서 포즈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 (p.83)
2.싹트다
발레의 파(pas)는 음표 하나하나, 또는 단어 하나하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빈틈없이 엄격하게 규정된 파를 보면 여태까지 같은 포즈를 취해온 무수한 무용수들의 궤적이 보이는 듯할 때가 있다. (p.167)
발레는 기초가 생명이다. 파가 춤을 만드는 하나의 벽돌이라면 그 벽돌은 사이즈가 정확한 규격품이어야 한다. 벽돌 하나하나의 길이가 다르거나 모양이 찌그러져 있으면 쌓아올릴 수 없다.(p.189~190)
"생각해봤자 별수 없어.내가 할 일은 하나뿐인걸. 오직 춤추는 것."
(p.215)
3. 솟아나다
단, 녹음한 음원으로 무용수가 춤을 추면 무용수로서의 역량 차이가 드러난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음원을 듣고 거기에 맞추는 무용수는 어떻게 해도 춤이 미묘하게 무거워져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굼떠진다. 듣고 나서 추면 늦어진다. 일류 무용수는 음원이 자기 안에서 울리게 만든다. (p.239)
안무가마다 작품을 만드는 스타일은 천차만별이다. 안무를 완벽하게 다 만든 다음에 무용수에게 전달하는 사람, 워크숍을 하며 무용수와 함께 만들어나가는 사람,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완성시켜나가는 사람, 망설임없이 정확히 스케줄대로 만들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작곡가에게 먼저 곡을 달라는 사람, 춤을 보고 곡을 붙여달라는 사람, 캐치볼 하듯이 함께 달려나가는 사람 등 각자 스타일에 맞춰 대응 방식을 바꿔야 한다. (p.249)
전막 발레 작곡가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무척 길다. 물론 그 점은 안무가도 마찬가지다. 전막 발레는 단막 발레와는 차원이 다르게 많은 비용이 든다.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여도 흥행 여부는 알 수 없다. 일종의 도박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쉽사리 맡겨주지 않는다. 하물며 인기 작품이 되어 여러 차례 무대에 오르고 스탠더드로 남는 것은 얼마나 될까. (p.267~268)
천천히 추는 것은 어렵다. 코어 근육이 단단하고 음악을 몸 안에 확실하게 붙들어 큼직하게 출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춤은 엉망이 된다. (p.273)
발레곡을 작업하며 발레 피아니스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그들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 특히 신작의 경우 피아니스트에게도 어지간한 작곡 센스가 필요하다. 모든 이름난 발레단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의 테크닉과 음악적 지식을 겸비한 발레 피아니스트가 있으며 작곡가와 안무가도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는다. (p.274~275)
발레의 어휘. 그것은 무용수에게도 안무가에게도 몹시 중요하다. 물론 어휘가 많다고 만사형통인 것도 아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상투어, 오래 써서 낡은 표현, 스타일이라는 이름의 자기 모방. 서서 것, 도는 것, 아름다운 미소, 근사한 비율을 과시하는 완벽한 아라베스크, 그저 그뿐이 된다. 이는 무용수나 안무가 뿐만 아니라 모든 창작자가 빠지는 함정이다. (p.295)
이야기성이 강한 작품, 클래식 발레의 기법으로 만드는 작품에는 어느 정도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백조의 호수, 로미오와 줄리엣, 페트루슈카. 모든 관객과 무용수의 머릿속에는 이미 춤과 분리할 수 없는 아름다운 멜로디, 강렬하고 대중적인 멜로디가 각인되어 있다. (p.301)
포장해서 무대에 올리면 그걸로 끝이야. 무대란 근사한 만찬 같은 거잖아? 전부 한 번 뿐이야. 손님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야. 하지만 레시피는 남아. (p.315)
두 주역의 불안은 군무를 추는 무용수들에게도 전이되었다. (p.339)
4. 봄이 되다
장은 "지금은 춤을 추렴"하고 종종 나를 타일렀다. 무용수로서 끝까지 밀어붙이라고 거듭 말했다. 무용수에게는 매 성장 과정마다 일시적인 꽃이 있으니 그것을 마땅한 시기에 제대로 체험하지 않으면 결코 성숙할 수 없고, 장차 안무를 만들 때 다른 무용수의 일시적인 꽃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했다. (p. 363)
안무를 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무용수는 몸 자체가 웅변적이어서, 그곳에 존재하기만 해도 몸이 주위에 말을 거는 듯한 타입이 많다. 반면 언뜻 보기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흡인력이 있어서 무의식중에 빨려드는 무용수에게도 이끌린다. 요컨대 그 자태만으로도 공간을 만들고 여백을 메울 수 있는 무용수다. (p. 372)
내가 생각하기로 무용수의 매력에는 몇 가지 타입이 있는 것 같다. 먼저 고도의 기술력과 날카로운 움직임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타입. 다음으로 개성적인 움직임과 분위기로 시선을 사로잡는 타입(이는 자칫하면 '습관이 있다', '지나치게 독특하다'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한계선에서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무용수가 상당히 드물다). 마지막으로 타고난 아름다운 팔다리와 근육의 형태 자체로 시선을 사로잡는 타입. 물론 각각의 타입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무 자르듯 나누기 어렵고 무용수마다 그 비율도 다르다.
탁월한 음악가 혹은 무용수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점은 하나의 음, 하나의 동작에 담긴 압도적인 정보량이다. 그들의 소리와 동작에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그 예술가가 품고 있는 철학과 우주가 응축되어 있다. (p.372)
존재한다. 그저 존재한다. 공간을 차지하며 존재한다. 이제 나는 그 무엇도 아닌 춤 자체가 되어 있다. 춤추고 있다는 자각조차 사라지고, 몸의 윤곽만 남은 상태로 에너지가 자유자재로 오간다(이것이 완전한 쌍방향인가). 나의 의식도 내 안에 존재하는 동시에 내 바깥의 사방팔방, 드넓은 세계에 두루 퍼져 있다. (p.453)
나는 세계를 전율케 하고 있는가? 그건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수많은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어떤 형태로든 계속 춤을 출 것이다.(p.458)
https://youtu.be/YXF1ygkPdgI?si=kF2IILuZQugU2U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