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디세이 리뷰. 신화는 죽고 죄바카라감만 살아남았다

2부. 신화는 죄바카라감이 되었다

by슈퍼T

2부. 신화는 죽고 죄바카라감만 살아남았다


신화가 심리학이 될 때 – 놀란은 무엇을 잃었는가

키클롭스 장면을 보며 나는 영화 전체의 방향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이후 세이렌, 키르케, 칼립소, 아테나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맞아떨어졌다.

원작에서 각각의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 모든 질문이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전쟁은 인간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가?"

이것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동시에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영화 속 세이렌은 '노래'가 아니라 '환영'이 되었다. 원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세이렌 에피소드다.

많은 사람들이 세이렌을 단순히 아름다운 여인이 노래로 선원을 유혹하는 괴물 정도로 기억한다.

하지만 호메로스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세이렌이 유혹하는 것은 육체가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이리 와요. 오디세우스. 우리는 트로이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알고 있으며,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어요."


놀랍게도 세이렌의 유혹은 지식이다.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그 노래를 듣고 싶어 한다.

그는 멍청해서가 아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약함도 알고 있다.

그래서 선원들에게 귀를 밀랍으로 막게 하고, 자신은 돛대에 단단히 묶어 달라고 명령한다.

"내가 풀어 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절대 풀어주지 마라."

이 장면은 고전학뿐 아니라 현대 행동경제학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인간은 욕망을 없앨 수 없다.

하지만 욕망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는 만들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폰을 치우고 공부하거나, 충동구매를 막기 위해 카드 한도를 낮추는 것과 같은 원리다.


세이렌은 욕망의 이야기이고, 돛대는 자기 절제의 상징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세이렌은 거의 배경처럼 지나간다.


또한 영화에서는 세이렌의 모습을 끝내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는다.

노랫소리 역시 관객들에게 들려주지 않는다.

그 결과 원작의 철학은 사라지고, 오디세우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또 하나의 장면만 남는다.


키르케와 칼립소는 가장 안타까웠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키르케와 칼립소였다. 호메로스가 만들어낸 여성 캐릭터 가운데 가장 입체적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키르케.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단순히 사람을 돼지로 만드는 마녀로 기억한다. 하지만 호메로스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마법이 아니다. 선원들이 돼지가 되는 이유는 단순히 마법에 걸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쾌락만을 좇다가 인간다운 이성을 잃는다. 반면 오디세우스는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키르케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인간 안에 존재하는 본능과 이성을 시험하는 존재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관계가 적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디세우스는 그녀와 무려 1년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떠날 때 키르케는 저승으로 가는 길과 앞으로의 운명을 알려주는 현자가 된다. 악당으로 시작해 조력자가 되는 이 복합적인 관계야말로 호메로스가 인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키르케는 그런 입체성이 거의 사라진다. 그녀는 오디세우스의 죄바카라감을 드러내는 심리적 장치처럼 기능한다.


칼립소는 더욱 아쉬웠다. 호메로스가 던지는 가장 아름다운 철학적 질문이 바로 칼립소에게 있기 때문이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집착하고 사랑한다. 그녀는 단순히 그를 붙잡는 악녀가 아니다. 심지어 말한다.

"나와 함께 있으면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을 것이에요."

이것은 인간이 신이 될 기회다.

그런데도 오디세우스는 거절한다.

왜일까?

그는 불멸보다 유한한 삶을 선택한다.

영원한 젊음보다 늙어가는 아내 페넬로페를 선택한다.


호메로스는 여기서 아주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왜 죽음을 알면서도 인간으로 살아가려 하는가?

나는 이 장면이 '오디세이아'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질문이 완전히 사라진다.

영화 속 칼립소 역시 오디세우스를 붙잡는 존재이지만, 불멸과 인간성의 상징이라기보다 그의 기억과 죄바카라감을 비추는 인물로 기능한다.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뛰어난 배우를 캐스팅해 놓고도 그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은 특히 아쉬웠다.


그리고 영화 속 아테나는 신이 아니라 양심이 되었다.

영화를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아테나였다.

사실 처음 등장했을 때 나는 그녀가 아테나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원작에서 아테나는 사실상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오디세우스를 보호하고, 텔레마코스를 성장시키며, 페넬로페를 돕고, 마지막에는 복수의 악순환까지 끝낸다.

그녀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존재다.


그런데 영화 속 아테나는 다르다.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격려하고 꾸짖지만, 정말 신인지,

아니면 오디세우스의 내면에서 만들어진 환영인지 끝내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나는 그녀를 보며 오디세우스의 양심을 떠올렸다. 혹은 죄바카라감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목소리.

이것은 매우 놀란다운 해석이다.


하지만 동시에 호메로스의 세계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변화이기도 하다.

호메로스의 세계는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 우주다.

놀란의 세계는 신을 인간의 심리로 번역한 우주다.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는 결국 모든 길은 죄바카라감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를 보며 가장 많이 떠오른 작품은 의외로 놀란의 또 다른 영화 '오펜하이머'였다.

'오펜하이머'에서 놀란은 한 인간이 자신의 업적이 남긴 결과를 평생 짊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오디세이아'에서도 그는 거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영웅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죄바카라감을 안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그 결과 영화 속 모든 인물은 오디세우스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키클롭스도, 세이렌도, 키르케도, 칼립소도, 심지어 아테나까지도.

이것이야말로 놀란 영화의 가장 강력한 개성이자, 동시에 호메로스의 다채로운 신화가 하나의 심리극으로 재편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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