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생태계에서 영상 생태계로의 이사

온라인카지노 1년 120명, 유튜브 하루 100명

by십억공무원

온라인카지노스토리 작가로 선정된 후, 약 1년 동안 100개가 넘는 글을 발행했다. 밀도 높은 활자의 숲에서 한 땀 한 땀 문장을 짓고, 내 생각의 파편들을 정성껏 다듬어 온라인카지노라는 공간에 띄워 보냈다. 그렇게 사계절을 꼬박 지나며 모은 귀한 독자가 120명 남짓. 더디지만 확실하게 내 글을 기다려주는 이들이 생겼다는 사실은, 활자가 주는 묵직함이자 아날로그적인 성취감이었다.


하지만 바카라을 출간하고 내 서사를 더 넓은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유명 경제 유튜버들의 이메일 주소를 수집해 출연 제안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허공에 돌멩이를 던지는 심정으로 보낸 수많은 메일 중, 부유한 바카라방 채널과 김성일 작가 님이 응해주셨고 출연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원원 - 파이어 준비생 채널에서 단순히 스튜디오 인터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방 소도시의 고즈넉한 여유와 인프라를 직접 영상에 담고 싶다며 영주까지 흔쾌히 내려와 주신 것이다.


함께 영주 시내를 돌아보고, 카메라 앞에서 88년생 지방직 공무원이 어떻게 자산을 일구었는지 썰을 푸는 시간은 상상 이상으로 유쾌하고 즐거웠다. 정제된 활자로만 존재하던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목소리와 표정이라는 입체적인 옷을 입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https://youtu.be/vjthOPj5kZU


그렇게 유튜브 나들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또다시 남은 유튜버들에게 제안 메일을 보내며 답장을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메일함을 새로고침하며 초조해하던 내 모습에 현타가 왔다.


'언제까지 이렇게 남의 무대에 올려달라고 메일을 보내야 하지?'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만 마이크를 쥘 수 있다면, 차라리 내 손으로 직접 무대를 뚝딱뚝딱 지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내가 직접 채널을 파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다 떠들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내친김에 판을 벌려버렸다. '10억 공무원'이라는 다소 노골적이고 유쾌한 이름으로 채널을 개설했다. 화려한 영상 기교나 스튜디오 조명은 없었다. 그저 웹캠 하나 세워두고, PPT를 띄워놓은 채 썰을 푸는 스타일의 유튜버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첫 영상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대담하게 순자산 10억을 인증하는 영상을 올리기로 했다.


그렇게 첫 영상은 '일단 업로드하는 것' 자체에 방점을 두었다. 편집도, 자막도 없이 10분 동안 쉬지 않고 떠든 날것의 영상을 그대로 올렸다. 녹화 프로그램 설정도 서툴러 화질마저 720p로 녹화된 참 소박한 데뷔작이었다.


https://youtu.be/T2_Tm8O0Xtk


그리고 다음 날, 믿기 힘든 광경을 목도했다.


온라인카지노에서 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켜켜이 쌓아 올린 구독자가 120명. 그런데 유튜브 생태계에 내 무대를 짓고 첫 영상을 올린 지 단 하루 만에 구독자 110명이 모였다.


조회수의 격차는 더욱 비현실적이었다. 온라인카지노에서는 정성 들여 쓴 글 하나에 조회수 100을 넘기는 것도 버거웠고, 가끔은 누군가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기계적으로 누르고 가는 '라이킷' 알림에 헛헛함을 느끼기도 했다. 반면 유튜브에 올린 첫 영상은 단 하루 만에 1,000회가 넘는 조회수를 훌쩍 넘겨버렸다. 허탈함보다는, 자본주의 알고리즘이 가진 압도적인 위력에 대한 경이로움이 앞섰다. 활자의 세계에서는 독자가 나를 찾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영상의 세계에서는 알고리즘이 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코앞까지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고 있었다.


누군가는 묻는다. 적당히 눈치 보며 연금이나 기다리면 될 공무원이, 굳이 얼굴까지 들이밀고 유튜브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론 자본주의 슬롯에서 부수적인 파이프라인이 열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진짜 대답은 늘 같다. 남들이 정해놓은 안전지대를 벗어나, 예측 불가능한 시장에 나를 온전히 던져보는 것.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나만의 무대를 스스로 설계하고, 그 위에서 한계를 깨부수는 나를 발견하는 짜릿함. 누군가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하나다.


"그게 재미지!"


돌이켜보면 온라인카지노에서의 시간은 결코 헛된 삽질이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단련된 생각의 근육과 정돈된 문장들이 없었다면, 카메라 앞에서의 나는 텅 빈 깡통처럼 소리만 요란했을 것이다. 활자의 숲에서 모은 단단한 장작들이 이제 유튜브라는 화로를 만나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남의 무대를 기웃거리는 대신, 내 무대 위에서 나만의 낭만적인 롤러코스터를 운전하려 한다. 내일 아침에 확인 할 조회수와 구독자가 얼마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속도감 넘치는 생태계가 제법 마음에 든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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